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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 슈퍼
리치

로만 아브라모비치

Roman Abramovich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성장한 신흥부자

요약 테이블
출생 1966년

존 테리(John Terry), 프랭크 램퍼드(Frank Lampard), 페르난도 토레스(Fernando Torres), 플로랑 말루다(Florent Malouda)…….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이 즐비하게 있는 팀. 한국 기업 삼성이 스폰서로 있는 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축구팀 첼시다.

첼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성적은 리그 중상위권에 8,000만 파운드(약 1,478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2003년 한 젊은 러시아 갑부가 인수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고, 팀은 2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축구의 종주국 영국에서 '자본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첼시의 구단주이자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 1966년~ ) 이야기다. 2012년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21억 달러(약 14조 원)로 러시아에서 아홉 번째, 세계에서 예순여덟 번째 갑부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 Getty Images/멀티비츠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노점상에서 러시아 최고 부자로

고아에 무일푼이었던 아브라모비치가 1990년대 중반 러시아의 개혁과 개방을 거치면서 최고 갑부로 떠오른 것은 한 편의 역전드라마에 가깝다.

러시아 남부 사라토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브라모비치는 네 살 때 고아가 되어 삼촌 손에서 자랐다. 자서전에는 2001년 모스크바 국립법률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되어있지만, 일부에서는 그가 이 대학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하는 등 그의 학력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끼니 때울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아브라모비치는 스물한 살에 첫 번째 부인 올가와 결혼해, 처가에서 받은 몇 푼의 장사밑천으로 거리에서 향수와 치약 등을 팔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듬해 세운 인형 공장은 대박을 터뜨렸다. 1990년대 초반까지 돼지 농장, 석유 중개업, 재생 타이어 사업에 이르기까지 20개가 넘는 회사를 차렸다 닫는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댔다.

그를 세계적 갑부로 만든 것은 1995년 러시아의 국영기업 민영화였다. 199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던 러시아 정부는 굵직한 국영기업을 경쟁을 통해 임대해 재정을 확충하는 '론스포셰어(Loans for share)' 정책을 폈다. 경매 방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당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국영기업을 하나씩 나눠 맡았고, 임대 방식이었지만 기업 운영권은 다시 국가로 환수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헐값에 국영기업을 파는 형식이었다.

아브라모비치는 동료 사업가였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oris Berezovsky)와 각각 1억 달러씩 투자해 국영석유회사 시브네프트를 인수했다. 시가가 당시 기준으로 27억 달러 상당이고, 매년 30억 달러어치의 기름을 생산하던 알짜 국영기업을 '헐값'에 사들인 것이다. 이후 알루미늄 산업까지 장악하는 데 성공하며 그는 단숨에 러시아 최대 재벌 반열에 올랐다.

성공을 위해서는 은인도 배신

무명의 아브라모비치가 옐친 대통령의 측근만 누렸던 공기업 헐값 매수의 특혜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업을 하다 알게 된 베레조프스키 덕분이었다. 옐친 대통령의 최측근 모임인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베레조프스키는 아브라모비치를 옐친 대통령에게 소개시켜줬고 그도 곧 패밀리의 멤버가 되었다. 그 후 1995년 국영기업 민영화 때 베레조프스키와 함께 시브네프트를 사들이며 러시아의 대표적인 신흥재벌, 올리가르히각주1) 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12년 현재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이 신흥재벌이 되도록 해준 '은인'인 베레조프스키와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올리가르히의 수장 베레조프스키는 옐친 대통령 시절 석유, 자동차, 방송 등 각종 국영기업을 장악해 정계와 재계를 주물렀다. 2000년 대통령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개혁 정책을 펴며 올리가르히 척결에 나서자 자신이 운영하는 TV 등을 동원해 푸틴 비판에 앞장섰다. 그러다 결국 이듬해 자신의 재산을 싼값에 팔고 영국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베레조프스키는 그 후 "당시 아브라모비치가 시브네프트의 주식을 싼값에 넘기지 않으면 푸틴 대통령에게 청탁해 주식을 빼앗겠다고 위협했다"며 아브라모비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아브라모비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범죄는 한 둘이 아니다. 1992년 석유 중개업을 할 당시 대량의 디젤유를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고, 각종 이권 수주과정에서 정부관료에게 수십억 달러의 뇌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루미늄 산업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치열한 싸움으로 대기업 간부, 언론인, 공무원 등 관련자 100여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알루미늄 전쟁'의 최후 승자 역시 아브라모비치였다. 하지만 수많은 혐의에도 불구하고 옐친 대통령이 그가 기소되는 것을 계속 막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옐친 대통령은 2007년 사망하고 베레조프스키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 '최고 실세' 푸틴 대통령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비유될 만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한때 함께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가까웠던 베레조프스키(오른쪽)와 아브라모비치(왼쪽)

두 사람은 영국 법정에서 재산 싸움을 벌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신구 올리가르히의 분쟁을 두고 "아브라모비치가 자신의 스승인 베레조프스키를 그가 부를 쌓은 수법 그대로 뒤통수 친 것은 아이러니"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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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돈을 쓴 두 곳

투명하지 못했던 부의 축적 과정 탓에 아브라모비치는 지금도 갖가지 의혹과 비난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언제나 '구원자'로 칭송하는 곳이 있다. 2000~2008년 그가 주지사를 지낸 러시아 시베리아의 자치구 추코트카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 지역에 집, 학교, 병원 등 인프라를 재건하고 기업투자를 유치하는 등 지역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지역 개선 사업에 쓴 자신의 돈만 해도 13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주지사를 그만둘 당시 그는 "너무 비싸서" 다시는 주지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의 노력에 2000년 165달러였던 이 지역 평균 월급은 2006년 826달러로 올랐고, 러시아 내에서도 출산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축구광인 그가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부은 곳은 역시 프로축구팀 첼시다. 2003년 팀 인수 이후 선수 영입 등으로 9년 동안 그가 쓴 돈은 무려 10억 파운드(약 1조 8,000억 원)다. 그는 선수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가면서 유능한 감독도 영입했다. 하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기대가 커 9년간 감독을 일곱 명이나 바꿨다. 1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조제 무리뉴(Jose Mourinho)와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단 두 명뿐이다. 첼시가 '감독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유다. 러시아 주지사로 재직할 때도 그는 늘 영국에 머물면서 첼시의 모든 경기를 관람했고, 팀이 패할 때는 눈물까지 흘리는 등 그의 축구 사랑은 유명하다.

2012년 5월 독일 뮌헨 알리안츠아레나에서 열린 2011~2012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가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우승컵을 손에 넣기 위해 9년간 10억 파운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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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것에는 축구에 대한 사랑 외에도 몇 가지 목적이 있다고 본다. 신흥재벌들이 '벼락부자'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예술계로 손을 뻗칠 때, 아브라모비치는 그 대상을 축구로 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사비를 털어 첼시를 명문구단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눈길이 따뜻해졌다. 또 신흥재벌들을 향해 있던 푸틴의 칼날을 피하고자 자신을 축구에나 빠져있는 야심 없는 졸부로 이미지 메이킹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아브라모비치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이룬 듯 보인다.

삶에서 '검소'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갑부

젊은 갑부답게 여성 편력도 화려하다. 아브라모비치는 조강지처 올가(Olga Yurevna lysova)와 1990년 이혼하고, 스튜어디스 출신의 이리나(Irina Vyacheslavovna Malandina)와 결혼해 다섯 아이를 두지만 역시 2007년 이혼했다. 당시 아브라모비치가 부담한 이혼 위자료만 3억 달러다.

이 후 러시아의 또 다른 석유재벌인 알렉산드로 주코프(Alexander Radkin Zhukov)의 딸인 다리아 주코바(Dasha Zhukova)와 연인으로 지냈으며, 주코바는 2009년 그의 아들을 낳기도 했다. 같은 해 영화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 역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 배우 엠마 왓슨(Emma Watson, 당시 열아홉 살)과 열애설이 터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브라모비치가 소유하고 있는 대형 요트 중 한 척

언론은 이 요트를 '아브라모비치의 해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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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도 그답다. 언론이 '아브라모비치의 해군'이라 부르는 대형 요트가 다섯 대, 전용 비행기와 헬리콥터는 물론 리무진도 예순 대 넘게 가지고 있다. 그를 경호하는 경호원만 해도 마흔 명에 달해 '사설 군대'라 불리기도 한다.

빈털터리 고아에서 최고의 갑부가 된 아브라모비치. 깨끗하지 못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사치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주지사 시절에는 약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재를 쏟아 붓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약자들을 돕는데 발 벗고 나서고, 축구 발전에 아무리 많은 공헌을 한다 해도 정경유착을 통한 불법적인 부 축적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만은 결코 깨끗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슈퍼 리치 DNA! 비굴함

아브라모비치의 처세술은 푸틴이 정권을 잡은 후 빛을 발했다. 시브네프트를 유코스와 합병해 최대 석유기업으로 만든 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매각하고, 알루미늄 회사와 자동차 공장도 외국에 팔았다. '크렘린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에도 권력과 맞서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만큼 공권력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베레조프스키 같은 신흥부자들이 재산을 잃고 도주하거나 수감될 때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화려한 여성 편력과 축구에 미친 졸부로 언론에 비춰지는 것 역시 그가 바라던 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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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집필자 소개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중 7년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증권사를 비롯한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를 출입하면서 보냈다. IT와 미디어 분야에도 ..펼쳐보기

문향란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제부·경제부·산업부를 거치며 국내외 다양한 슈퍼 리치의 삶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보라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경제부를 거쳐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세계 슈퍼 리치
세계 슈퍼 리치 | 저자최진주 외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슈퍼 리치 40인의 삶과 성공 전략을 추적한다. 추진력, 배짱, 치밀함, 강박 등 40인의 슈퍼 리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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