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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 슈퍼
리치

리카싱

李嘉誠

한 손에 『논어』를, 다른 한 손에 주판을 든 거상

요약 테이블
출생 1928년
리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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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길이가 6,300킬로미터에 달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창장(長江)'. 이 강 이름을 광둥어로 읽으면 '청콩'이 된다. 홍콩 최대 부호이자 동아시아 최대 갑부, 「포브스」 기준 세계 아홉 번째 부자인 리카싱(李嘉誠, 1928년~ )이 자신의 기업 이름을 '청콩실업'으로 지은 것은 모든 지류를 수용하는 큰 강과 같은 기업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 줄의 기사에서 돈맥을 발견한 청년 사업가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1940년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으나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뜨자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열다섯 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화학제품 공장에 취직했다. 이 때 익힌 기술과 공장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청콩실업이라는 화학업체를 창업했다.

홍콩의 300여 개 화학 공장 중 중간 정도 규모의 회사에 불과했던 청콩실업이 대 성공을 거둔 것은 '조화(造花)'를 만들면서였다. 어느 날 청년 리카싱은 영문판 화학 전문지에서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한 화학회사가 플라스틱 조화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조화를 대량생산하여 유럽과 미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리카싱은 조화가 대히트할 것이라는 점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생명력이 없는 조화의 인기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까지 예상했다. 이 경우 처음에 크게 벌고 재빨리 빠지는 전술이 중요하다.

리카싱은 곧장 이탈리아로 날아가 직접 조화 생산 과정과 시장을 돌아봤다. 바이어로 위장해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제조 비법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아예 그 회사의 공장에 일용직 직원으로 취직했다. 또 휴일이면 공장 친구들을 초대해서 시내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며 기술 노하우를 얻어냈다.

얼마 후 리카싱은 홍콩으로 돌아와 곧바로 조화를 개발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조화를 내놓았다. 동시에 '치고 빠지기' 전술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업사원을 최대한 많이 모집해 홍콩의 유명 백화점과 꽃가게, 길거리 리어카에까지 조화를 진열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꽃을 좋아하는 홍콩 사람들이 가족에게 조화를 선물하는 일은 유행이 되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다

이를 통해 청콩실업은 아시아에서 조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화학 업체가 되었다. 그러나 청콩실업이 실제로 크게 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부동산 투자였다.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에 영향을 받은 1967년 봉기각주1)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떠났고, 토지와 집값이 급락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정치적 혼란이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저가에 부동산을 매입했다. 이번에도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청콩실업은 지속적으로 부동산 투자와 개발사업을 벌여 1972년 홍콩 증시에 1번 기업으로 상장하게 된다.

리카싱은 1979년 영국계 항만 물류기업인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하면서 세계적인 갑부로 발돋움한다. 허치슨 왐포아는 1828년 닥터 왓슨(Dr. Thomas Boswell Watson)이 중국 광저우에 설립한 조그만 조제약국이 기원이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왓슨'이라는 드럭스토어(화장품과 기초 의약품 등을 판매하는 약국 겸 편의점)의 '원조'인 셈이다. 1960년대 영국계 허치슨 인터내셔널은 항만회사 왐포아독과 왓슨을 인수하고 부동산 개발사업에까지 진출했으나 경영난을 겪게 되었다. 대주주였던 홍콩은행은 추가 지분을 인수하고 허치슨 인터내셔널을 1978년 왐포아독과 합병했다. 리카싱은 이듬해 홍콩은행으로부터 허치슨 왐포아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털어낸 허치슨 왐포아는 승승장구한다. 홍콩항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항만회사에서 유럽, 중앙아메리카, 아시아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항만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허치슨 왐포아는 전 세계 컨테이너항 업계 점유율 13%를 차지하고 있다.

리카싱이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할 당시 영국계 자본의 대기업을 식민지의 화교기업인이 처음으로 인수했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로도 리카싱은 영국계 기업을 여럿 인수했으며, 최근에는 영국의 전기, 수도, 가스 등 기간산업에까지 인수 기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11년 8월 리카싱은 자신이 보유한 청콩기건(CKI)을 통해 24억 1,000만 파운드(약 4조 1,524억 원)를 주고 영국 최대 규모의 상하수도 회사 중 하나인 노덤브리언 워터를 인수하기로 합의하는 등 1년 반 동안 영국 기간산업에 세 건의 묵직한 투자를 단행했다. 영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소유를 허용했다. 여기에 리카싱이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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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는 리카싱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리카싱의 사업은 홍콩 내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 침투해 있다. 열다섯 살의 고교 중퇴생은 부동산 개발, 호텔, 증권 투자, 항만컨테이너, 에너지, 인프라 건설 등 54개국에서 500개의 기업을 이끄는 슈퍼 리치로 우뚝 섰다.

'의롭지 못한 채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이후 오랫동안 갑부들의 검약과 기부가 미덕이 되어 온 미국과 달리, 아시아의 갑부들은 본인과 가족들은 사치스럽게 살면서도 자선사업이나 기부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리카싱은 아시아 갑부로서는 드물게 검소하게 살 뿐 아니라, 자선사업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소탈한 이미지의 리카싱은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며, 값싼 시계를 차고 다닌다. 홍콩 사람들은 이런 리카싱을 단순한 갑부로 여기지 않고 '초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좌우명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의롭지 못한 채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는 구절이다. 1980년 리카싱기금회를 세워 지금까지 다양한 곳에 우리 돈으로 1조 6,00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2006년에는 살아 있는 동안 전 재산의 3분의 1을 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리카싱은 스스로 리카싱기금회를 셋째 아들이라고 부른다. 하루 열 시간의 업무 중 여섯 시간은 청콩 그룹 일에, 나머지 네 시간은 기금회 활동에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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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교육과 의료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관둬야 했지만 항상 책을 읽으며 독학해 온 그는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특히 1981년 고향에 설립한 산토우대학에 쏟는 열정은 대단하다. 매년 운영자금의 70%를 대고 있으며 대학 운영위원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다. 결핵으로 숨진 아버지 때문인지 의학이나 약학 분야에 대한 기부도 많다. 이 분야에서 좋은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라면 홍콩이나 중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의 학교에도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수신(修身)에는 성공했으나 제가(齊家)에는 실패

그러나 근면과 검소함, 자선으로 명망을 누리는 리카싱에게도 이면은 있다. 그는 홍콩의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1960년대에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산혁명을 겪고 중국 본토를 탈출했던 화교 부호들의 공통점 중 하나다.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결과다.

2012년 3월에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지원요청을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부주석은 베이징에서 리카싱을 만나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한 렁춘잉(梁振英) 후보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리카싱은 헨리 탕(唐英年) 후보에 대한 지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중국 정부도 헨리 탕을 지지했다. 그러나 헨리 탕이 대저택 지하에 일본식 사우나, 고급 와인셀러, 극장 등 호화시설을 불법으로 지은 것이 발각되는 등 부패 스캔들이 터지자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렁춘잉에게로 돌아섰다. 하지만 리카싱은 재계와 좋은 관계였던 헨리 탕을 끝까지 지지했다. 결과는 렁춘잉의 당선이었다. 고결한 인품으로 칭송 받는 그가 부패한 관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리카싱은 중국 본토에 위치한 공장에서 '악덕 자본가'의 면모를 보여 비난을 산 적도 있다. 그가 소유한 충칭 시의 바이먀오 유한공사의 노동자 264명이 2011년 회사측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자, 회사측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당시 농성중인 한 노동자는 "한 달 꼬박 일해도 1,100~1,200위안(약 18만~20만 원) 밖에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아들과 관련해서도 구설수에 올랐다. 장남 빅터가 어렸을 때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아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아 온 반면, 차남 리처드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편애에 반발해 미디어사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했다. 리처드는 스탠퍼드대학 컴퓨터공학과를 3년 동안 다니다가 중퇴한 후 캐나다 투자은행인 고든캐피탈에서 일하기도 했다. 야심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의 리처드는 '홍콩의 슈퍼 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스타TV를 설립해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에게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인터넷·정보통신 기업 PCCW를 설립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2009년에는 세계 금융위기로 파산한 보험사 AIG의 자산운용 부문을 인수하기도 했다.

자기 힘으로 부를 일궈 존재감을 증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리처드는 다른 방면에서 가문의 명예에 금을 냈다. 리처드는 스물두 살 연하의 여배우 이사벨라 룽(梁洛施)과 사실혼 관계에서 세 자녀를 얻었다. 룽과의 교제를 강력히 반대했던 리카싱은 2009년 4월 룽이 첫 아들을 낳자 경호원, 보모, 영양사 등으로 십여 명을 고용할 정도로 돈을 아낌없이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쌍둥이를 낳고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던 두 사람은, 2011년 3월 전격 결별을 발표했다. 이후 '룽은 결혼을 원했지만 리처드가 끝까지 반대했다', '처음부터 아이를 얻기 위한 계약관계였다', '위자료가 40억 홍콩달러(5,800억 원)에 달한다' 등등. 두 사람의 결별을 놓고 확인되지 않는 루머가 양산되었다.

2세가 타블로이드 신문의 단골 주인공이 되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시아 갑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대체로 '수신'에는 성공하지만, '제가'에는 실패한다. 『논어』의 한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는 리카싱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리카싱의 슈퍼 리치 DNA! 향학(向學)

리카싱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중고교 과정을 혼자 공부했으며,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영어 뉴스를 듣는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지식은 가정교사를 초빙해 배우고, 잠자기 전에 30분간 책 읽는 일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지식을 향한 갈구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그는 영문판 화학 전문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줄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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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집필자 소개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중 7년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증권사를 비롯한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를 출입하면서 보냈다. IT와 미디어 분야에도 ..펼쳐보기

문향란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제부·경제부·산업부를 거치며 국내외 다양한 슈퍼 리치의 삶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보라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경제부를 거쳐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세계 슈퍼 리치
세계 슈퍼 리치 | 저자최진주 외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슈퍼 리치 40인의 삶과 성공 전략을 추적한다. 추진력, 배짱, 치밀함, 강박 등 40인의 슈퍼 리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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