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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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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미국의 주택시장 붕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한 대재앙이었지만, 한 남자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 남자는 주택시장이 붕괴한다는 데 거액을 베팅해 200억 달러(약 23조 원)의 투자 수익을 내며 '헤지펀드의 전설'로 등극한 존 폴슨(John Paulson, 1955년~ )이다.
그 해 그가 펀드 운용보수로 받은 돈은 월가 사상 최고액인 36억 달러(약 4조 원)에 이른다. 매일 110억 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29억 달러)도 제쳤다. 이름 없는 펀드매니저였던 그는 한 방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고, 2012년 기준 125억 달러의 재산으로 「포브스」 집계 세계 예순한 번째 부자에 올랐다.
거품을 찾는 안목과 배짱
펀드매니저 폴슨의 눈에 2005년 미국 시장은 거품투성이로 보였다. 그는 특히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는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미국 주택시장이 대호황을 누리던 당시, 사람들은 폴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전문가들 역시 그의 주택시장 붕괴 우려를 반박했다.
그럼에도 폴슨은 주택 거품이 꺼지면 돈을 벌 수 있는 신용부도스와프(CDS)를 2006년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CDS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 부도 가능성이 있는 채권에 대한 CDS를 싸게 샀다가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거래다.
폴슨은 부동산 호황기, 즉 서브프라임모기지에 대한 CDS가 쌀 때 CDS를 대량으로 사 놓았다가 주택시장이 폭락해 모기지에 대한 CDS 가격이 폭등하자 이를 처분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서브프라임모기지 90여 개를 묶어서 재구성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에 대한 CDS 투자로도 10억 달러 넘게 벌었다. CDO에 대한 CDS는 이전에 없던 상품이었으나, 주택시장 붕괴를 확신한 폴슨이 2006년 골드만삭스에 요청해서 만든 신종 파생상품이다. 폴슨은 주택시장 붕괴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차근차근 '대박'을 준비해 온 것이다.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을 통해 탁월한 분석력을 인정받은 폴슨은 2008년 '격'이 다른 펀드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소로스가 그를 불러 점심을 먹으며 투자법에 대해 묻는가 하면,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자신의 회사 폴슨앤코의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의 한 마디에 전 세계 언론이 촉각을 세우고 유망 투자 리스트가 들썩이는 건 물론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9년 말 폴슨의 성공이 투자자들에게 주는 교훈 여덟 가지를 소개했다. 그 첫 번째가 '전문가에게 의존하지 말 것'이었다. 폴슨은 고객들에게 "나는 무디스 등 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주식을 분석한다"며 "등급이나 소문만을 믿고 하는 투자는 뜨거운 맛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밀고 나가는 그의 배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밖에도 위기에 대비한 현금 확보, 새 투자 상품에 대한 공부, 보험 등 안전망을 확보하고 한 가지에 '올인'하지 말 것 등을 폴슨이 주는 교훈으로 꼽았다.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신출내기 투자자
집안 내력으로만 보자면 그는 타고난 투자자다. 외할아버지는 월가의 은행원이었고, 아버지는 대형 PR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그는 여섯 살 때 할아버지가 사준 봉지 사탕을 친구들에게 낱개로 팔아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여섯 살 때 껌과 콜라를 팔아 돈을 모았던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어릴 적부터 명석했던 폴슨은 1973년 뉴욕대학에 입학해 영화 제작과 철학 등을 배우지만 곧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만다. 이를 눈치 챈 아버지의 제안으로 폴슨은 삼촌이 있는 에콰도르 등 남미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소유한 채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삼촌의 모습을 보며 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남미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 돈이 떨어졌을 때, 질 좋은 아동복을 싸게 파는 상인을 만나 그에게 싸게 산 옷을 아버지에게 보내 뉴욕에서 되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한편, 폴슨은 학교를 떠나 여러 경험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1976년 뉴욕대학에 복학했고, 뉴욕대학 경영대와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다.
폴슨은 첫 직장인 보스턴 컨설팅그룹(BCG)에서 부동산 컨설팅업무를 하며 시장 매커니즘을 파악했고, 월가의 투자 고수 레온 레비(Leon Levy)가 창업한 투자회사 오디세이 파트너즈에서 일하며 투자 노하우를 배웠다. 그 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M&A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종자돈 200만 달러와 직원 한 명으로 자신의 회사 폴슨앤코(Paulson & Co.)를 창업했다. 그는 회사 설립 후 꾸준히 수익을 냈지만 시장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주택시장 붕괴로 그의 회사는 2012년 현재 운용규모 240억 달러의 세계 3대 헤지펀드 회사가 되었고, 그에게도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반짝 스타인가, 대부로 남을 것인가
하지만 폴슨이 헤지펀드계에서 오랫동안 '존경 받는' 전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먼저, 폴슨의 극적인 성공 뒤에는 찜찜한 의혹이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0년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제소했는데, 이 사건의 핵심에 폴슨이 있었다. SEC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가 90여 개의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묶어서 CDO를 만들 때 폴슨이 60개의 모기지를 추천해주는 등 상품 설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CDO가 떨어지는 만큼 돈을 버는 폴슨은 당연히 위험도가 높은 모기지를 넣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또 골드만삭스는 이 CDO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믿고 CDO를 산 유럽 은행들에게 폴슨앤코가 CDO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에 베팅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폴슨은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고, 이 소송은 골드만삭스가 SEC에 벌금 5억 5,000만 달러를 내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순수하게 시장 전망만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는지에 대한 의혹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폴슨은 2010년까지만 해도 금값 폭등 등에 힘입어 월가 역사상 최고인 50억 달러의 연봉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2011년 '굴욕'의 한 해를 보냈다.
2011년 8월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한 폴슨의 사무실로 투자자들이 몰려왔다. 항의하는 투자자들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폴슨은 2011년 초 미국 경제가 회복할 것으로 전망해 금융주에 대거 투자했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고 미국의 더블딥(double dip : 경기 회복 국면에서의 재침체) 우려로 금융주가 급락했다. 그의 대표펀드인 어드밴티지플러스는 2011년 -51%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 손실을 냈고, 그는 투자자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야 했다. 또 중국 벌목 업체 시노포레스트에 투자했다가 4억 7,000만 달러의 손실을 내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기업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2011년 한 해의 실수로 투자자들이 그에게 바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뛰어난 시장 분석력과 정정당당한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어야만 부뿐 아니라 명예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빅 루저의 '멍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인가, 월가 슈퍼스타의 '명예'를 다시 회복할 것인가? 폴슨은 지금 그의 인생에서 매우 특별하고 가장 중요한 지점에 서 있고, 세상은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존 폴슨의 슈퍼 리치 DNA! 뚝심
폴슨은 미국 주택 가격이 한창 오름세였던 2006년부터 주택 가격 약세와 서브프라임 부실을 예측한 베팅으로 경이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2006년 주택 가격과 모기지가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투자도 처음에는 손해를 봤다. 투자자들도 그의 판단을 비판했다. 그러나 폴슨은 점차 베팅을 늘렸다. 내로라하는 투자은행이 죽을 쑨 2007년 그는 월가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펀드매니저가 되었다. 대세와 다른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갈 뚝심이 동반될 때만이 가능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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