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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인류는 긴 역사를 거쳐 오면서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고정된 하루, 24시간이라는 그 틀 안에서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동물의 등에도 올라타고 바퀴 위에도 앉았다. 그러다 이를 넘어서 직접 가지 않고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급기야는 이동 중에도 지구 반대 편에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자고 있는 동안에도 컴퓨터는 최신 영화를 다운받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가속화의 과정을 거쳐온 역사.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해온 역사. 인류의 역사는 가히 시간 정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의 흐름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인간은 이제 새로운 시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상상을 시작했다. 평범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가능한 경험들을 거의 다 섭렵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혹은 너무나 꽉 차버린 평범한 시간의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을, 이제는 단순한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많은 종류의 시간을 정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은 평범한 시간의 흐름을 깨고, 이를 변형시켜 보려는 상상을 끊임없이 해왔다. 단순히 시간을 흐르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을 비디오를 보다가 리모컨으로 조정하는 것처럼 시간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의 압축과 연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이것은 하나의 과학적 이론일 뿐이며 그의 비유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가끔 느껴지는 느낌의 문제일 뿐, 시간의 상대성을 실질적으로 볼 수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 시간은 정말 볼 수 없는 것일까? 상대적 시간을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무한한 시간 상상력을 펼친다. 그리하여 시간을 압축하기도 하며 연장하기도 한다. 즉 너무 긴 시간을 좀 더 빠르게 보기도 하며, 너무 짧은 찰나의 순간을 좀 더 길게 보기도 한다.
너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처음으로 깨뜨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영화 〈마이크로 코스모스〉였다. 〈마이크로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아주 작은 세계는 너무 작거나 너무 빨라서 볼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느려서 볼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달팽이의 생식이나 한 송이 꽃이 활짝 만개하는 과정, 한 마리의 나비가 번데기에서 벗어나 첫 날갯짓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우리의 기존 시간 개념으로 지켜보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더디다. 그러나 그 같은 시간을 우리가 경험 가능한 시간으로 압축해놓음으로써 우리는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지켜보게 되었고, 그를 통해 신선하고 순수한 충격을 맛볼 수 있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곤충들의 시간을 압축시킴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시간을 벗어나 곤충과 다른 생물들의 시간까지도 상상할 수 있게 생각의 틀을 해체시켰다. 일기예보가 시작할 때, 하늘의 구름과 태양이 5초 만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거나, 숲이 10초 만에 청록에서 붉은색을 거쳐 새하얗게 변하는 모습들을 봐도 전혀 놀랄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세계의 탄생, 인간의 생로병사 등 수많은 내용을 시간의 압축을 통해 이야기했다. 압축된 시간에 대한 상상은, 그 이전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스케일 또는 관점의 세계를 열어준다.
이와 반대로 인간은 시간을 연장하는 상상을 시도했다. 스포츠에서 분석을 위해 슬로우 모션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 또한 시간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까. 뭔가 보고 싶은 장면을 천천히 보는 것 혹은 어느 쪽이 옳은지 알기 힘든 장면을 좀 더 확실하게 보는 것 역시 인간이 시간을 임의로 조정하는 상상력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 몸을 뒤로 젖히며 총알을 피하는 주인공 네오의 모습이나 공중에 떠올라 발차기를 하는 여주인공 트리니티의 모습 등은 전형적인 시간 상상의 산물이 아닐까. 특히나 공중에 날아오른 트리니티의 모습을 360도로 회전하며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시간의 연장에 부가하여 공간적인 시각의 관점까지 변형시킨 상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늘리다 못해 아예 정지시켜 버리는 건 어떨까. 수년 전 모 방송국의 지식 정보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한 영상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우유 방울이 만들어 내는 왕관 모양이나 풍선껌이 터지는 모양 등 다양한 소재들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하여 시청자들에게 흥미로운 장면들을 제공했다. 초고속 카메라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시작한 시청자들은 더욱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재들을 요구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 미국의 사진작가 마틴 와프는 떨어지는 물방울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눈이 분간할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순간의 움직임이나 장면들을 직접 보고 싶어했고, 그 결과 초고속 카메라가 등장했다.
초고속 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꿀벌의 날갯짓이나 떨어지는 물방울의 움직임은 인간의 시간 개념 안에 있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의 시간을 늘어뜨릴 수 있게 되자 인간의 시계(視界)가 확장되었고, 상상력의 공간도 확장되었다.
영화 〈맨 프럼 어스〉에서 주인공 존은 자신이 1만 4000년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시간은 사실 압축도 아니고 연장도 아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캐릭터, 주인공 존이라는 인물의 특이성에서 이는 모든 역사의 압축과 동시에 한 인간의 삶의 연장이라는 두 개념이 공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1만 4000년을 살아왔다는 존의 주장이 정말인지는 사실 등장인물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서도 전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부터 현대로까지 이어지는 그와 등장인물들 간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또한 하나의 압축적인 시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인간의 수명, 인간의 시간이 이처럼 무한대로 연장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그것도 단 한 사람만이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오직 대화로만 전개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전혀 상상적이지 않은, 현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한 인간의 시간을 연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대화가 모든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상상적인 영화가 된 것이다.
시간의 이동
미국의 사진작가 제이슨 포웰은 옛 사진자료와 현재의 공간을 같이 비교 해놓는 사진작업을 진행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진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 위에서 변해온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진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록 수단들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과거들을 저장하고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타임머신을 다룬 소설과 영화들은, 우리가 개인 앨범을 들추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그 바탕이 같다.
왜 인간은 영원한 시간여행자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에게 시간과 관련된 상상들 중 가장 익숙한 것은 바로 시간의 이동이다. 1895년 웰스가 《타임머신》이란 소설을 펴낸 이래, 시간 이동과 관련된 상상은 수도 없이 많은 작품들에서 등장하고 있다. 웰스의 타임머신이 단순히 인간을 미래로 이동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의 타임머신은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도구로 발전하면서, 많은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유명한 양친 살해 패러독스, 즉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가 양친을 살해하면 과연 자기는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평행우주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논란이 되어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적어도 현대의 과학 수준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기술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타임머신의 이론은 개인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세계의 시간을 이동시킨다는 관점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계의 시간은 보통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고 개인의 시간만이 다르게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상상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의 시간은 1918년부터 시작하여 정상적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주인공의 시간만 다르게 흐른다.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80세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해가 갈수록 오히려 신체적 나이가 어려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던 그는 60대에 데이지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그들은 마침내 둘의 나이가 비슷해지는 시점에서 만나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벤자민은 점점 더 어려지고, 반대로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이 영화에서 벤자민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은 정상과 다를 바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166분이 라는 시간으로 단축시켜놓은 일대기 영화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어떠한가. 단지 주인공의 신체 주기를 다른 사람과 반대로 설정해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양상과 감정 등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이 보는 늙어가는 연인 데이지의 모습. 그들이 느끼는 시간의 상상이란 측면에서, 이 영화는 단 한 가지 시간 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낸 것이다.
시간의 조작
영화 〈캐쉬백〉에서 주인공 벤은 슈퍼마켓 아르바이트 중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간을 멈추고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멈춘 시간을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사실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은 매우 일상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평범한 공간에 불과하지만, 시간을 멈추고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숨겨진 감정과 아름다움들이 발견된다. 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시도는 벤이 점점 그 자체의 재미에 빠지면서 그 과정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쏟아진다. 멈춰진 시간 속에, 수많은 눈송이들이 공중에 떠있는 밤 장면은 너무나도 낭만적이다. 눈이 다가와 내 위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다가가 눈송이에 부딪칠 때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아마도 그 기분은 벤과 그의 연인 샤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영화 〈클릭〉은 이러한 시간의 상상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여기서는 아예 세상을 리모컨으로 자유롭게 조종하기에 이른다. 시끄럽게 짖는 강아지의 소리를 줄이는 것은 애교 수준이고, 세상의 시간들이 리모컨의 조종에 따라 통제된다. 꽉 막힌 교통체증에 시달릴 때는 빨리감기로 회사에 도착하고, 첫 키스 때 흐르던 음악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토라지는 아내를 위해 되감기로 그날 입었던 옷까지 기억해낸다.
클릭 한 번으로 리모컨 소유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소유자의 인생 자체를 빨리 감았다 느리게 감았다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멈추게도 할 수 있다. 시간의 조종이라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는 상상력이지만, 그것이 조작의 대표적 아이콘인 리모컨과 결합되면서 상상력의 재미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상상력과 관련해서 웹툰 작가 강풀의 만화 〈타이밍〉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타이밍〉의 주인공들은 시간 능력자들이다.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총 4명인데, 이 중 핵심이 되는 인물인 박자기는 예지몽으로 참사를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장세윤은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10분 전에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의 능력은 더 흥미롭다. 앞의 두 명의 인물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 예지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시간을 조종할 수 있다. 타임스토퍼 김영탁은 아예 시간을 멈출 수 있으며, 타임와인더 강민혁은 10초의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 있다.
사실 시간의 조작이란 개념만 보자면, 강풀의 만화가 굳이 특이한 상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 시간을 멈추는 능력은 이미 앞의 영화들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두 명의 시간 조종자의 능력이 충돌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과연 시간을 멈추는 사람과 시간을 돌리는 사람의 능력이 동시에 발동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기존의 시간조작이 한 능력자에 한정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만화에서는 시간과 관련된 여러 명의 능력자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인간은 항상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어한다. 시간의 변형을 시도하는 상상력도 그러한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간을 변형시키는 방법이 다양한 것은 그들이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개념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조작하는 힘도 하나의 능력이다. 사실 벤의 경우, 정지된 시간을 상상하여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정지된 시간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 일지도 모른다.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 상상 능력은 일종의 생존방식이다.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을 꿈꿀 수 있는 특권이 없었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한 그는 끊임없이 시간을 비틀고 시간을 조작하여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항해할 수밖에 없다. 영원한 시간여행자. 여기에 호모이마기난스의 본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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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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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시간 비틀기와 시간 뒤집기 –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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