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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날개를 달고 태양까지 날아간 이카로스 이야기나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날아다닌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이런 신화 속 상상을 실현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신화 또한 강력한 현실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SF소설 속에 등장했던 상상적인 과학기술도 신화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실현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는 오늘날 도처에 깔려 있는 CCTV라고 할 수 있으며,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통해 예고했던 것처럼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한 인공생명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시대가 왔다. 이제 SF소설 속에 등장했던 기계와 인간의 결합, 인간과 똑같은 휴머노이드들의 개발이 멀지 않았으며, 사실 오늘날 대두되는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은 바로 이런 SF소설 속의 상상적 존재들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SF소설들이야말로 정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만 같다.
SF소설은 상상적인 테크놀로지를 소재로 하면서 그것을 '미래'로 설정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왜 인간의 상상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일까? 단순히 미래 세계에 대한 꿈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래소설들은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과 개혁의지 그리고 미래의 악재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디스토피아를 그린 수많은 미래소설들과 영화들이 그러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통해서 현실을 성찰하려는 인간의 의식은 생각 이상으로 보편적이다. 최초의 미래소설이 SF소설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탄생했다는 것은 그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700년대 말 프랑스 혁명을 앞둔 유럽사회에 팽배해 있었던 사상은 계몽주의였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개혁'과 '발전'이다. 기존의 틀을 개혁하고 발전시키지는 사상은 자연스럽게 역사성, 즉 '시간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계몽주의 시대의 상상력도 공간 유토피아에서 시간 유토피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1771년 상상력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메르시에가 쓴 최초의 미래소설 《서기 2440년》이었다.
메르시에의 미래소설 《서기 2440년》이 700년 미리 가본 파리의 모습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서술자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2440년 파리에서 깨어난다. 거기에서 그가 본 미래국가는 그가 꿈꾸던 계몽주의 이상들이 실현된 국가였다. 그곳은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져 있고 현덕한 군주가 다스리는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메르시에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국가를 먼 미래에 설정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동반한 상상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했지만, 대부분 주변국인 영국 등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거나 다른 곳에 있는 이상 세계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메르시에는 예외적으로 역사의 흐름과 함께 사회가 발전한다는 계몽주의적 상상력을 표현하고 있다. 즉 상상력의 시간화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700년 후의 미래 국가에 대한 상상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프랑스를 읽어낼 수 있다. 사실 메르시에는 그의 시간 상상을 통해서 먼 미래에 있을 국가가 아니라 개혁된 현재를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린 이상국가의 통치 체제는 세습군주제이면서 영국의 모범을 따른 입헌군주제이다.
오늘날 군주제가 완전히 사라진 프랑스를 생각해보면, 메르시에의 상상이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당시의 계몽주의 지성인들이 열망했던 국가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르시에는 개혁된 국가에 관한 허구를 미래의 '언젠가'에 위치시키면서 시간 상상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18세기의 동시대인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던 《서기 2440년》의 프랑스는, 25세기의 국민들에게도 결코 역사의 완성이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25세기의 국민들에게도 미래는 열려 있으며 그들 역시 시간상상을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사다리의 절반도 채 오르지 못했다"라는 구절은 바로 시간 상상의 항구성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군주제가 완전히 사라진 프랑스를 생각해보면, 메르시에의 상상이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당시의 계몽주의 지성인들이 열망했던 국가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르시에는 개혁된 국가에 관한 허구를 미래의 '언젠가'에 위치시키면서 시간 상상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18세기의 동시대인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던 《서기 2440년》의 프랑스는, 25세기의 국민들에게도 결코 역사의 완성이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25세기의 국민들에게도 미래는 열려 있으며 그들 역시 시간상상을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사다리의 절반도 채 오르지 못했다"라는 구절은 바로 시간 상상의 항구성을 말해주고 있다.
《서기 2440년》의 주인공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파리는 1771년의 파리와 겉보기에 별 다르지 않았다. 2440년의 파리의 집들은 평지붕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울창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는 여전히 마차가 다니고 있을 정도로, 메르시에는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단지 메르시에가 그리고자 했던 미래의 파리 시민들의 모습은 테크늘로지 측면보다는 의식적 측면에서 발전된 모습이었다.
1700년대 후반 파리 거리는 더럽기로 유명했는데 그것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닥치는 대로 오물을 아무 데나 버리는 시민들의 위생관념 때문이기도 했다. 메르시에가 그리는 2440년의 파리 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고 넓었으며, 2440년의 마차는 1771년처럼 오만한 귀족들이 서민들에게 오물을 튀기며 타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마차는 허영에 찬 귀족 대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공적을 쌓아온 나이든 시민들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소설 속에서 사실 700살을 먹은 주인공은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 놀라워한다.
정치적 제도 면에서 2440년의 프랑스에는 절대 왕권이 없어지고 권력이 분화되어 있었다. 지방의 소도시와 시골 지역은 더 이상 궁정을 위해 봉사하고 수도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가 가능한 곳이 되어 있다. 더 나아가 메르시에는 2440년의 이상국가를 전쟁이 없는 국가로 상상한다.
메르시에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전쟁을 일으켜 유럽을 통일하려는 군주들은 전쟁터의 아비규환과 끔찍한 폭력을 모르는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한다. 또한 전쟁을 좋아하는 왕자들을 훈계하기 위한 재미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들에게 '청각적인 기계'를 씌어 전쟁터의 끔찍한 고통의 절규와 공포의 포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오늘날 가상현실을 통한 전쟁 체험 시뮬레이션과 비슷한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왠지 이런 도구는 오늘날에도 전쟁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메르시에는 더 나아가 아예 전쟁이 없어 군대조차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그린다.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간혹 상상적인 기술과 과학에 관한 내용들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테크늘로지 자체의 발전보다는 모두 민생을 이롭게 하고 지식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상상되었다. 2440년의 프랑스는 여전히 농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덕한 왕들이 여러 세대를 걸쳐 만든 연구 업적은 과학사 박물관의 '왕의 캐비닛'에 잘 보관되어 농민들에게 필요한 작물과 동물 사육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메르시에는 무역에 대해서도 비슷한 관점을 유지한다.
2440년의 프랑스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세계 각국과의 상거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역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 민족을 착취하여 얻은 사치품들과 향신료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440년의 사람들은 사치품을 사지 않고 오직 사계절에 맞게 음식을 먹으며 검소하게 살아간다. 사실 1700년대 후반의 프랑스는 엄청난 과학과 산업 발전을 겪고 해외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하고 있던 때였지만, 메르시에는 이런 점을 배제하고 오히려 발전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메르시에는 서구인들의 야욕이 초래할 제국주의와 폭력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2440년 프랑스의 도서관에는 메르시에가 판단하기에 쾌락적이고 불온한 책들이 불태워 없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저술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명작으로 손꼽힐 수많은 책들과 예술품들이 불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책들은 종교적인 검열을 당하고 있다. 박물관에 소장될 예술품들도 경건성과 미덕을 기준으로 검열을 당하고 있다. 메르시에는 18세기 프랑스인으로서 여전히 신을 믿고 있었기에 기독교적 믿음에 반하는 내용은 불온하다고 치부했을 것이다.
심지어 메르시에는 천문학을 신적인 위대함이 가장 강력히 계시되는 학문으로 보고 청소년들이 천체 관측을 통해 성년의식을 치르도록 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메르시에는 18세기 사교생활을 즐기는 여성 대신 오로지 남성을 위해 정숙하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그리고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2440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리라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메르시에가 그린 2440년의 사람들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18세기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서기 2440년》에 등장하는 어떤 학자는 2440년의 이상적인 파리를 "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싸움을 금지하고 각 개인들의 삶을 보장해주는 잘 조직된 도시"라고 묘사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개인들의 삶을 보장해준다라는 말이 18세기, 21세기 그리고 25세기에 각각 다르게 쓰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계몽주의로 인해 시민들의 사상이 검열당하고 세뇌 당하는 《서기 2440년》은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게는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으나, 21세기를 시는 우리에게 《1984년》의 디스토피아를 연상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상상력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상상력 자체도 시간 구조에 묶여 있다. 그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또 다른 상상력이 상상력을 영원한 변증법에 묶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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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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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2440년 시간 여행 –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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