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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억압의 역사를 걷게 만든 장본인 플라톤. 그 자신은 상상을 하지 않은 것일까? 널리 알려진 그의 이성적 이데아에 대한 집착은 분명 상상력에 여지를 두지 않는 듯하지만, 정작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가 고도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고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플라톤의 글을 읽다 보면, 오히려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는 고도로 상상적인, 현대판 디스토피아(distopia)적 SF와도 같은 '상상국가'로 다가온다. 어쩌면 플라톤의 이상국가야말로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예프게니 자먀틴 같은 20세기 디스토피아 작가들의 선구적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국가는 왜 디스토피아인가?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인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에서 최악의 국가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원래부터 소질과 능력이 다르게 태어났으므로 일생 동안 불평등하게 살아야 한다. 철학자, 전사, 농부와 수공업자 세 계급으로 나뉜 이상국가. 철학자는 오로지 통치만 하고, 전사는 국가의 안전을 유지하는 일에만 전념하며, 농부와 수공업자는 민중으로서 생산만을 전담한다. 구두장이는 일생 동안 구두만 만들고 대장장이는 금속만 가공하며 농부는 농사만 지으면 된다. 플라톤은 철저한 전문화와 계급화를 통해서 사회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러한 나라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국민의 운명이 국가에 의해 우생학적으로 미리 결정되고 국가가 인간의 생식마저 통제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플라톤의 상상력은 극에 달한다. 국가의 최고 목표는 가장 품질 좋은 자손의 증식이다. 국가는 출생 이전부터 시민에게 부모를 선발해준다. 품질 좋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가능한 한 최고의 남자들이 최고의 여자들과 자주 동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장 나쁜 남자와 가장 나쁜 여자들은 동침도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자식들은 교육시킬 필요도 없다고 한다.
플라톤에게 남자와 여자는 오로지 능력 있는 국민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으며, 쾌락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남녀 사이에 감정은 금물이며, 모든 결혼과 결합은 오로지 종족의 개량과 강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적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잘생긴 사람들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고 육체적으로 결점이 있는 사람은 가장 나쁜 사람이다. 이러한 선별 원칙을 플라톤은 인공 동물사육에 비유하고 있다. 생식이 국가에 의해 주재되고 감독되는 나라. 정해진 나이가 아닌 때에 아이를 낳으면 낙태나 유아 살해 등으로 대처하는 나라. 하지만 그리스 최대의 철학자요 가장 위대한 이상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저하시킬 동물적 행위를 허용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으로 다가온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사유재산을 완전 철폐하고 인간의 모든 사적인 감정마저 말살한다는 점에서도 가히 상상적이다. 사유재산은 모든 사회적 악의 근원으로 간주된다.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할 때 시기와 증오, 절도와 강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 심지어 결혼조차 국가가 통제한다. 국가는 난혼제도를 통한 하나의 대가족이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종속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가족들 간의 어떤 친밀한 관계도 허용되지 않는다. 공적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모든 사적 관계는 금기시된다. 아이들과 부인들은 모두 공동 소유로 선포되고, 결혼도 의미를 잃는다. 여자들은 모두 남자들의 공동 소유물이며, 어느 특정 여자도 어떤 특정 남자와 동침하지 않으며 아이들도 공동 소유이다. 그래서 어떤 아버지도 자기 아이를 모르고 아이 또한 자기 아버지를 모른다. 오직 자신의 육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만을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는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 격렬한 감정의 분출은 공동체를 잊게 하고 개인의 운명을 성찰하게 만들며, 웃음은 권력자들에 대한 반항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내용은 오직 용감, 신중, 현명, 정의라는 덕목의 주입만을 목적으로 하며, 오로지 국가가 지정하는 선전을 위한 목적 예술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오락 또한 없다. 축제나 경주가 국가적으로 조직되며 종교적인 축제가 매일 개최된다. 축제를 통해서 국가 이념을 주입하고 전투 시합을 통해서 국가의 주요 미덕 중 하나인 용감성을 자극한다. 오직 모든 것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체제를 위해 지속된다.
모든 변화와 진화가 중지된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전체주의 국가이며 분명 미래의 디스토피아이다. 이 점에서 그의 이상국가는 상상국가이다. 플라톤 스스로 이 점을 고백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이상국가는 우리의 추론에만 존재한다. 그것은 지상의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국가는 단지 하늘에 그 모델이 있을 것이다.
그의 이상국가론은 어디까지나 사고의 유희, 상상의 유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적 이데아에 집착했던 플라톤이 왜 이러한 극단적인 상상을 한 것일까? 그의 상상국가에는 사고의 유희를 넘어 그의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이 근저에 깔려 있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역사의 슬픈 시대를 목도한다.
페리클레스의 지배하에 권력과 문화의 황금시대를 누리고 있었던 아테네는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지속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감수성이 강한 플라톤에게 생생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30인 정부가 구성되자 그는 기뻐했으나, 그들의 반역적 폭제는 그를 과두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했다. 그는 압제적이고 부패한 폭군들의 통치에 빠진 조국의 비참한 상태를 개탄하며, 이러한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염원에서 악과 타락의 원인을 연구한다. 이러한 시대 경험을 통해 그는 완전한 정의가 실현되는 철학자의 나라, 이상국가를 상상한 것이다.
그의 이상국가론이 스파르타의 국가지상주의적 정치체제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플라톤은 질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그러한 이상국가를 아니 상상국가를 꿈꾸었다. 그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은 결국 현실을 떠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모든 상상은 곧 현실의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가장 완벽한 이성적 진리인 이데아에 집착했던 플라톤은 가장 비이성적인 이상국가를 상상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상상력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식을 얻게 된다. 어쩌면 이성과 상상이 또는 현실과 상상이 그리 먼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 둘은 서구 문화와 예술에서 오랫동안 각축전을 벌여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둘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것들은 서로를 배타하면서도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둘은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그래서 이성의 역사에서 상상력의 역사를, 카오스에서 질서를 억압의 문화 속에서 꿈틀거렸던 상상력의 자유를 읽어내는 작업이야말로 상상하는 인간의 본질을 조명하는 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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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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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플라톤의 이상국가 –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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