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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으로부터 나온 상상력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억압된 욕망은 언제나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꿈은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이, 정신의 검열관인 초자아가 휴식을 취하는 수면 상태에서 의식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때 꿈은 약하지만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초자아를 속이기 위해 이미지를 변형하는 작업을 거친다. 꿈속에서는 우리의 욕망이 일상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물들로 응축되고 전치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검열자는 그것이 사실은 금지된 욕망에 대한 은유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꿈작업이란 억압을 피하기 위해 관념들을 뒤섞는 정신의 작용이다. 따라서 우리는 "꿈은 무의식의 네트워크 상상력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통해 우리는 상상력이 왜 필요하며, 공상이 왜 인류사에서 반복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항상 불만족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반복된다. 인간은 관습에 의해 항상 금지된 것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그 금지를 뚫고 나와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상상하는 게 아닐까? 따라서 억압된 것이 되돌아 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은 상상력이 억압을 해방하기 위해 항상 재등장한다는 말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상상력에 억압적 제한을 설정했던 플라톤 이래 서양의 상상력 역사란 끊임없는 억압과 해방의 역사였다. 상상력이 아무리 억압된 시대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상상력은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존재이므로 상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양태는, 상상하는 인간 호모이마기난스가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르게 표출되므로 각 시대정신에 의해 규정되게 마련이다. 사실 문화사와 예술사는 이러한 상상력의 양태를 추적하는 작업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서양의 중세는 플라톤의 이데아 자리에 신이 들어 선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신에게 귀결되었던 신 중심의 문화가 지배한 중세 시대에 상상력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을까? 중세는 서양 문화사에서 '암흑기'로 묘사된다. 중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상상력이 억압받는 시대였으며 재미와 유머가 극도로 제한된 시기였다. 중세의 수도원은 절대적 금욕의 공간이었다. 파리의 문화국 건물이 그 옛날 수도원 부속건물로서 매춘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금욕의 공간에서 매춘의 역사가 있었다는 기억은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소위 정의로운 국가에 옭아매었듯이, 중세 교회는 개인을 철저하게 신에게 종속시켰다.

신의 공간, 억압의 공간, 금욕의 공간인 수도원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억압된 상상력의 공간으로 상상한다.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수도승들은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가? 무엇이 수도승들을 죽음으로 몰아대는가?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전해지지만 우리 인류에게 전해지지 않는 책 한 권. 살인 사건의 현장인 수도원의 도서관에 금서로 전해지는 책 한 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론》이 바로 그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 책에 "신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다"라고 적혀 있음을 상상했다. 신에 대해서 결코 웃어서는 안 되는 수도승들은 금서를 읽으며 신에 대해 웃으면서 책장에 발린 독약 때문에 죽어갔다. 그들은 신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다는 상상력에 중독된 것이다. 억압이 강한 시대일수록 그만큼 상상력 또한 강력하다.

중세 교회는 종교적 엄숙주의의 잣대로 거의 모든 예술 분야를 억압했다. 그 중에서 특히 피해를 본 것은 극예술과 조형예술 분야였다. 중세 교회는 철저히 우상 숭배를 배격하여 조형예술을 금기시했던 것이다. 《구약성서》의 《이사야서》에 "그분은 아무런 형태도 미모도 갖추지 않으셨다"라는 말은 조형예술을 배격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모든 육체적 미를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각주1) 그리고 극예술은 이교도의 신화 즉 그리스 신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했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의 융성했던 조형예술과 극예술은 르네상스가 오기까지 사장되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엄숙한 중세 교회가 인간의 상상력을 억압했다 한들 막을 수는 없었다. 중세는 종교적 신비주의에 힘입어 인간의 인문학적, 과학적 상상력이 제 나름대로 꽃피웠던 시대였다. 사실 신성 논쟁을 떠나서 생각해보면 종교야말로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중세 기독교는 도구적 이성주의가 나타나기 이전, 상상의 힘 '스토리텔링'과 신비주의로 세계를 규정하는 상상력의 요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것의 네트워크

이렇게 억압적이고 종교적 엄숙주의가 만연했던 중세에 연금술은 인간의 상상력이 꽃피웠던 분야이다. 연금술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촉매제이며, 또한 불로장생의 영약이기도 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는 '상상적' 물질을 찾아 떠난 인간의 길고 긴 상상력의 여정이었다. 연금술은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연금술은 원래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페르시아를 거쳐 이슬람 문화권에서 유행되다가 다시 중세 유럽에 전파되어 활성화되었다. 또한 동양에서도 연금술이 행해졌다. 중국에서는 현자의 돌과 결합된 연금약액(鍊金藥液, elixir)이라는 액체가 인간의 불로장생을 가져다 준다고 상상했으며, 인도에서는 요가나 단식 등을 통해 인간의 몸 속에서 연금술로 불로장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랍에서는 연금술이 제약학이나 의학에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오로지 상상력에 의거하여 여러 물질들을 배합하고 분리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질산, 염산, 황산 등 수많은 화학적 발견을 해냄으로써 과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과학사에서 중세 연금술 없이 근대 화학과 의학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얘기이다. 연금술은 중세의 종교적 신비주의와 이상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연금술의 목표는 비금속 물질을 금, 은과 같은 값진 금속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이익을 떠나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종교적 수행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금은 금속들 중에서도 부식하지 않으며 안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연금술사들은 기본적으로 신이 만든 자연이 완전하다고 믿었으며 모든 금속들 중에서 금이야말로 가장 완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물질로 금을 만들려고 열망했던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적 신비주의인 '그노시즘(gnosticism, 영지주의)'이 합세했다. 그노시즘은 육체에 갇혀 있는 영(靈)을 해방시켜 절대적인 신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의 외단법 같은 실천적인 방법을 통해 이러한 믿음을 이행했다. 이미 존재 그 자체에서부터 상상력이 농후한 종교적 신비주의는 다소 황당하고도 재미있는 수많은 연금술 연구를 양산했다.

연금술의 과학사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수은에 관한 연구이다. 연금술사들은 수은을 집요하게 연구했는데 이는 수은이 영과 육의 합일을 드러내는 물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유일한 금속으로 영과 육의 합일이라는 믿음을 투사하기에 안성맞춤인 물질이었으며, 연금술사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하면서 수많은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무기산과 알코올의 발견은 바로 이런 연금술적 상상력의 유산이었다. 연금술의 핵심적인 이론은 모든 금속이 황과 수은으로 만들어졌다는 '황-수은 이론(sulfur-mercury theory)'인데, 이 이론 또한 다분히 시적이며 상상적이다.

연금술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이론적인 근거를 두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 즉 물, 불, 흙, 공기가 이들의 기본적인 성질인 뜨거움, 차가움, 축축함과 메마름의 구성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들의 배합을 달리하여 전혀 다른 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물은 4원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소들이다. 연금술사들은 황이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수은이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것의 배합을 통해 금을 포함한 모든 금속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합일이 불가능해 보이는 정반대의 것들, 물과 불, 여성과 남성 같은 것들을 합치면서 완전한 물질이 나온다는 게 연금술적 신비주의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연금술 논문의 이미지

마이클 마이어, 16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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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의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드러내주는 예가 '제2의 아담'을 창조하기 위한 연금술사들의 분투이다. 연금술사들은 수은으로 완전한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수은을 비롯한 여러 물질들을 동원하여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질로부터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 돌 같은 물질이 인간처럼 성장한다는 생각은 고대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돌과 사람이 원래 같은 뜻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제우스는 선한 데우칼리온 부부에게 방주를 만들어 피하라 한 뒤 혼탁한 인간들을 홍수로 쓸어버렸다. 데우칼리온 부부는 황폐해진 대지를 보고 슬퍼하며 신을 찾아가 세상에 다시 만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이에 감동한 여신은 "그대들 어머니의 뼈를 뒤쪽으로 던질지어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신탁을 내렸다. 두 사람은 오랜 궁리 끝에 '땅의 뼈는 돌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어깨 뒤로 돌을 던졌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아내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어 대지는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연금술사들은 금속이나 광물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보았다. 그들은 모든 금속의 부모인 유황과 수은이 결혼하면 '현자의 돌'이란 자식이 탄생된다고 믿었다.

하이테크와 연금술

코넬리우스 아그리파라는 연금술사는 식물의 뿌리에서 인간이 자라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호문쿨루스'라는 인조인간을 만들기 위한 비법서를 작성했다. 그는 사람의 정액을 병에 넣고 40일 동안 말똥거름에 묻어 두면 정액이 자력을 띠게 되는데, 이것을 암말의 자궁과 같은 상태에서 40주 동안 사람의 피를 공급하여 키우면 인조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정액과 난자가 수정하여 인간이 탄생한다는 개념만 갖고 있었으면 현대 과학의 인공수정 내지는 시험관 아기를 연상케 하는 제법 그럴싸한 이론이 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환상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연금술은 과학과는 별개로 '유사과학'이라는 하위적인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고 비상식적인 연금술사들의 상상력이 도구적 이성주의의 결산물이라 할 수 있는 과학의 지대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결국 상상력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이며 이성에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용문
연금술이 디지털 상상력과 연관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과학 지상주의, 도구적 이성주의가 정점에 이른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왜 연금술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연금술적 상상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중세에 연금술의 하위 문화로서 생겨났던 것이 마법사, 마녀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유럽의 민담과 신화였다.

마법사의 이야기를 다룬 '해리포터' 시리즈가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엄청난 붐을 일으킨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 순간이동, 개구리 변신 약, 보이지 않게 하는 망토 등 연금술의 상상력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투사한 해리포터 시리즈는 오늘날의 과학보다 앞서 나간 유토피아적 환상의 세계를 그리며 독자들을 매료했다.

오늘날 유전과학이나 복제인간에 대한 연구도 일찍이 연금술사들이 먼저 이행했던 것이 아닌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의 연구가 고도로 발달된 바이오테크놀로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연금술사들은 그런 것 없이 오직 상상력만으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이성은 상상을 좇기에 급급했다. 오늘날 절대적이라고 숭배되는 과학적 발견들은 사실 아무런 과학적 토대도 없던, 말도 안된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상상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자의 돌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조차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다. 결국 그 누구도 현자의 돌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정신적인 황금, 즉 영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영적 연금술이 유행하기도 했다.

현자의 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없는 것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다. 이렇게 중세 연금술사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이후의 근현대 예술에까지 파급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치 점령하의 암담한 현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에는 바로 연금술적 상상력이 토대가 되고 있다. 그녀의 그림 <태양의 음악>에는 빛, 소리, 변형, 예술, 테크놀로지 등의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다. 예술가는 대지와 합일되어 있으며 한 줄기 태양은 마치 현악기 줄처럼 보인다. 사람이 그것을 켜고 있으면 새들이 창조되어 날아간다. 참담한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좋은 현실로 변형시키려는 연금술적 상상력이 바로의 예술을 규정하고 있다.

태양의 음악

레메디오스 바로,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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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이면서도 과학이기도 한 연금술의 근본정신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불로장생과 비금속을 변형시켜 금을 만들려는 인간의 완성에 대한 욕망의 극치가 드러나고 있다. 금은 모든 광석 중에서도 가장 완전하고 가장 고귀한 것으로서 완성을 상징한다. 또한 연금술은 단순히 이론적 사유가 아니라 상상력을 직접 실현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연금술의 기본 생각이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개념과 상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컴퓨터적 지각방식은 현자의 돌을 찾으러 떠난 연금술사들의 상상 여행에 비견될 수 있다. 또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을 네트워크와 무한한 변형 가능성이라고 할 때, 전혀 다른 이질적인 것을 네트워크시켜서 금속으로부터 금을 만들고자 했던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디지털 상상력의 천재들이었다. 더구나 디지털은 인간의 상상력을 바로 구현해주는 마술적 도구라는 점을 생각할 때 21세기의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조합시키고 연결시키는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상상력은 이제 창조라기보다는 조합의 능력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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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택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매체사회학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미디어아트연구소를 설립하여 인문학이 적대시해왔던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펼쳐보기

출처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 저자임정택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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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연금술사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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