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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은 숫자로 표상되는 근대적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언젠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말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라는 시간의 유한적 속성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했는데, 이것은 독일어로 '거기에 있다(da-sein)'라는 뜻이다.
인간은 왜 과거와 미래로 여행하는 것일까?
이 말은 동시에 인간은 현재를 살면서도 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과 연관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이 표상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무한한 영겁의 시간과 비교하여 인간은 늘 '지금, 거기에' 죽음을 앞둔 유한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호모이마기난스의 숙명인 것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시간관은 마르셸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한 조각으로 순식간에 무수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을 되돌린다. 즉 프루스트는 현재를 살면서도 늘 과거 속에 그리고 동시에 미래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그린다. 하나의 인간이 수많은 시간의 세계를 동시에 상상한다는 것 그 상상과 기억 속에서의 시간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이라는 것. 거기에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프루스트는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과 교우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인슈타인과의 교우를 통해서 그는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간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현재를 살면서도 동시에 과거를 살아갈 수 있으며 바로 이 생각이 인간의 시간여행과 시간상상의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의 '나'는 마들렌 냄새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유년 시절의 자신으로 다시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은 강물과 같아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나서 계절이 지나면 열매가 맺히듯이 시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시간을 선형적이고 인과론적 관계에 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적인 관점에서의 시간에 대한 이해이다.
하이데거의 시간-인간관은 이러한 선형적이고 인과론적인 시간관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인간이 시간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에 '상상' 자체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알고 미래에 자신의 존재를 ‘기획 투사’하여 스스로 존재 부여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미래의 자신을 그리며 산다. 미래에 살게 될 집, 거기서 행복해하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기도 한다. 이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은 언젠가 죽을 것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상이 미래에 자신을 '기획 투사'하는 행위이다. 즉 우리를 유한한 존재로 만든 시간은 반대로 미래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상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사실 하이데거의 인간에 대한 철학은 근대적 인간관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근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시간과 큰 상관이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시간과 관계없이 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궁극적인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인간관에 따르면 인간은 시간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했다. 즉 인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철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상상이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지금 역사 중 한 지점에 있으며 나를 태어나게 만든 지점, 내가 태어난 지점 그리고 살아 온 지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실로 그냥 내가 아니며 다양한 시간적 지평들이 어우러져 있는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무한한 상상력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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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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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과거 · 현재 · 미래를 사는 인간 –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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