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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적 억측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자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만이 자신이 언젠가는 죽게 되는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현존재'였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러한 인간만이 가지는 특유한 존재방식을 '역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미래를 내다보므로 과거를 반추하고, 그를 통해 현재를 살아간다. 인간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유인원들처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존재자'라는 하이데거의 가정으로부터 인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시간을 단순히 자연의 흐름,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이해한다면, 시간은 인간이 자연의 변화에 대처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은 자신을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를 어둠에 둘러싸인 자연의 변화무쌍한 힘을 이성의 빛으로 비추기 위해 시간을 발명한 것이다. 하루를 시와 분과 초라는 시간 '개념'으로 분석하는 물리학적 시도는 시간을 통해 변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즉 세상이 인과율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지의 영역에 맞닥뜨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대처방식이다. 영국의 철학자 흄에 따르면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밀어내는 현상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별적인 두 당구공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인간은 그 두 움직임의 사이에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절대 경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법칙'을 상상해낸다. 인간은 어떠한 변화든지, 그것을 어떠한 실재적인 법칙의 결과라고 생각하려는 비합리적인 경향이 있다.
인과율과 관련된 이러한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에게 가장 고유한 미스터리인 '죽음'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해소하려 든다. '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한한, 그래서 불완전한 현세의 시간 속에 태어난 이유는 완전하고 불변하는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라는 식의 반응이 전형적인 것이다. 분명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지만,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시간이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의 인과율에 대해 상상해왔다. 창세로부터 시작되어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선형적이고 유한한 시간을 가정하는 기독교의 발상 역시 시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상상력의 결실이다. 동시에 기독교를 비판하고 나서는 현대물리학의 무한한 시간관 역시 동일한 노력의 산물이다.
기독교의 시간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시간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해왔다. 이는 변화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불변을 완전한 것으로 보았던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시작되는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넓게 인정되었던 가정이다. 변화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서양인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유인원들의 후손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서양의 시간관을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는 인과율이 시간에 적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시간관은 문명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의 시간을 설명하는 학문인 역사학에도 적용되어왔다. 인간의 경제적인 소유관계의 불균형이 역사의 변화를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공산주의에 의해 그 소유의 완전한 균형이 이루어지면 역사가 종말할 것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은 그러한 역사학의 대표적인 예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은 불균형의 발생을 역사의 시초로, 그것의 해소를 역사의 종말로 보았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역사관의 형태가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의 예상과는 달리 현대의 역사는 공산주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이 현대를 역사 이후의 시대, 역사가 종말에 이른 시대로 보고 있다는 점은 목적론적이고 선형적인 역사관이 현대의 사상에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고, 변화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인간이 상상해낸 것이 시간과 역사이기에, 역사는 항상 완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상상되어 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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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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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왜 인간은 시간을 발명했을까 –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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