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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의 상상력

상상력의 날개를 펴다

이상주의 철학과 상상력의 해방

이성의 손아귀에 놓여 있던 상상력이 비로소 완전히 해방된 것은 낭만주의 시대이다. 낭만주의는 이 세계를 더 이상 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정신적 태도이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현실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며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낭만주의는 현실을 떠나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며 멀리 있는 것, 낯선 것, 무한한 것을 동경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편다.

더 이상 이성에 속박되어 있지 않는 낭만적 상상력은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즉 예술가는 상상력을 통해서 현실에 있지 않은 또 다른 세계의 모델을 독자적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제2의 신이다. 상상력은 더 이상 몽상에 근거한 유희적 성격을 가지지 않고 보다 진지하며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으로 된다. 사실 낭만주의의 배경에는 만물의 근원을 물질이 아닌 정신으로 파악하고 그 정신을 절대화시켰던 칸트, 피히테, 셸링에 이르는 독일 이상주의 철학이 놓여 있다.

칸트는 인간을 철학의 중심에 놓고 인간 내면으로의 길을 정초했다. 즉 그는 경험적 대상으로부터 인간 주관으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주관의 의식이 대상에 법칙들을 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우리의 인식은 오로지 경험과 감각적 인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은 이미 선험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직관 형식과 사고와 오성의 형식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물 자체, 현상의 핵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체험하는 이 세계는 우리의 주관적 표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상상력의 해방을 가져온 사상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칸트의 제자인 피히테 역시 인간의 인식을 사물 자체로부터 분리시킨다. 즉 인간 의식의 외부에 놓여 있는 객관적 진리와 자아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식된 세계는 오로지 정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피히테는 대상 자체를 부인하고 자아가 아닌 비자아는 오로지 자아의 사유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인용문
낭만적 상상력은 어떻게 카오스에서 질서를 창조하는가?

우리는 나무를 왜 푸르다고 인식하는가? 우리의 자아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아에 좌우된다. 그는 자의식의 한계 바깥에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나고 있다. 모든 것을 포괄하고 인식하는 창조적 주관이 최고의 심급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은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만들고, 하늘과 땅을 기르고 별들의 운행을 정하는 신과도 같은 것이다. 피히테는 인간 정신의 전능함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방하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이 세계를 자아 속에 가져와 자의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던 낭만주의자들에게 다가왔다. 피히테의 철학이 인간의 내면에 모든 해결책이 있다는 낭만주의 신념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피히테가 자아에서 출발하여 인식론적 이상주의를 표방한 반면에 셸링은 자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자연과 정신이 동일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하면서 전 자연이 정신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자연은 보이는 정신이요 정신은 보이지 않는 자연인 것이다. 우리 밖에 어떻게 자연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정신과 우리 밖에 있는 자연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연과 하나였던 상태를 회상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셸링은 예술가의 창작과 세계의 창조는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으로 이제 상상력은 그 해방의 정점을 맞이하게 된다. 낭만적 상상력으로 시인은 독자적인 법칙을 가진 세계를 주조할 수 있는 진정한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세계 안에 있다기보다 세계가 내 안에 있다. 상상력은 더 이상 계몽주의 시대에서처럼 '가능한 세계'에 기댈 필요가 없다. 이성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낭만적 상상력은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음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동시에 자아와 세계의 하나됨을 꿈꾼다. 즉 객관과 주관, 현실과 환상, 꿈과 현실, 내면과 외면의 합일을 꿈꾸는 것이다. 두 개의 상반된 세계가 일원론적으로 하나가 되는 꿈을 낭만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동화의 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화에서는 현실의 인과율이 완전 폐기되고 모든 경이로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적 상상력은 동화에서 그 최고의 표현 형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푸른 꽃을 찾아

우리는 낭만적 상상력의 원형을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인 노발리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본명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필립 폰 하르덴베르크이며, 노발리스는 그의 필명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는 1794년 소피폰 퀸이라는 13세 소녀를 만난 순간 불과 15분 만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버린다. 소피와의 깊은 사랑, 약혼 그리고 소피의 죽음을 겪으면서 노발리스는 죽음과 밤을 노래하는 낭만주의자가 된다. 29세로 요절한 그의 짧은 생애에 소피는 그에게 상상력의 여신으로 승화되어 그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노발리스에게 상상력의 여신이었던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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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리스의 낭만화 프로그램은 이러한 체험에서 나온 상상력의 기획이다. 노발리스는 선언한다.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 낭만화란 평범한 것에 고귀한 의미를, 일상적인 것에 신비스러운 외양을, 낯익은 것에 낯선 위엄을, 유한한 것에 무한한 외모를 부여하는 것이다."
Novalis, Schriften. Die Werke Friedrich von Hardenbergs, hrsg. v. Paul Kluckhohn und Richard Samuel, Stuttgart, 1965ff, Bd. II, P. 545.

낭만화란 상상력을 통해서 세계를 질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낭만화를 위해서 시인은 현실을 떠나 동화의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그래서 그에게는 동화가 모든 문학의 경전이요 모든 문학적인 것은 동화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 일명 《푸른 꽃》은 낭만적 상상력의 최고 상징으로서 동화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하인리히가 시인으로서 완성의 길을 향해 가는 성장소설로 거기에는 꿈, 동화, 신화들이 얘기되고 있다.

하인리히는 어느 낯선 남자로부터 전해들은 푸른 꽃에 대한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 이야기는 필시 노발리스가 푸른 꽃의 모티프를 가져온, 독일 튀링겐 지방 광부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일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한 목동이 마력을 지닌 아름다운 꽃을 꺾어서 자신의 모자에 꽂았다. 그 꽃의 마력 덕분에 그는 갑자기 보물로 가득 찬 동굴의 입구를 발견한다. 목동이 보물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말지어다!"

그러나 목동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마법의 꽃을 잊어버린 채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동굴문은 닫히고 목동은 그 꽃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튀링겐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전설에서 꽃의 색깔이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전설에 대해서 야콥 그림은 여러 지방에서 얘기되고 있는 이러한 류의 전설에서는 일반적으로 꽃의 색깔이 푸른색이라는 사실을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푸른색은 신들과 정령들의 고유한 색깔이라고 했다.각주1)

그림 동화집에 수록된 〈푸른빛〉이라는 동화에서도 푸른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동화에서 한 병정은 그를 위해 기적적인 일들을 해주는 난쟁이를 푸른빛으로 불러낸다. 왜 동화나 전설에서 푸른색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독일의 돈키호테인 돈 실비오도 푸른 나비를 마법에 걸린 요정동화 속의 공주라고 상상하고 쫓아가지 않았던가?

역시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의 《황금단지》라는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대학생 안젤무스가 엘베 강가에서 돈이 없어 축제에도 갈 수 없는 자신의 가련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궐련을 피우다가 나뭇잎 사이에 빛나고 있는 연두색 뱀의 푸른 눈에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는 그 이후 모든 존재의 조화가 계시되는 기적의 나라 아틀란티스의 세계가 열린다.

안젤무스가 피웠던 궐련이 당시에는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일종의 마약이라는 해석도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푸른 눈은 곧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우리는 푸른색이 낭만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상상력의 색깔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옛 사전들을 찾아보면 푸른색이 한가로움, 놀라움, 거짓된 것, 먼 곳, 오리무중, 목적 없음, 무한정, 동경, 믿기지 않음, 착각, 어지러움, 기적 동화 등의 의미들을 함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각주2)

하인리히는 푸른 꽃의 전설을 들은 그날 푸른 꽃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동경에 사로잡힌다. 동굴 속의 보물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인리히는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고 전혀 다른 세계로 가 있는 기분이었다. 달콤한 환상에 빠지면서 그는 잠이 든다. 그날 밤 그는 아주 멀고 낯선 곳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는 깃털처럼 가볍게 여러 대양을 건너 다니면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을 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으며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작별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우물가 잔디 밭에서 푸른 꽃을 발견한다. 푸른 꽃 주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으며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푸른 꽃을 응시하자 꽃잎들이 푸른색의 넓은 옷깃 모양을 만들었고 거기에 어여쁜 여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하인리히는 "꿈이란 밤낮 똑같은 일상을 막아줄 수 있는 방어벽이자, 묶여 있던 상상력이 활기를 되찾아 인생의 모든 그림들을 뒤섞어놓고 어른들의 한결같은 진지함을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놀이로 바꾸어놓는 놀이마당"각주3) 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가 꾼 꿈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 꿈이 거대한 바퀴처럼 영혼 속으로 밀고 들어와 영혼을 힘차게 들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

바깥 세상을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던 스무 살의 하인리히는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 중에 상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많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완성의 길을 향해 간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편력은 마침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스승 클링조어를 만나고 그의 딸 마틸데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함으로써 완성된다.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푸른 꽃에 어른거린 그 여인이 바로 마틸데로 드러나는 것이다.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푸른 꽃은 낭만적 상상력의 최고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방에서 창조의 시학으로

노발리스는 동화를 항상 꿈이라고 생각했다.

"동화는 원래 아무 연관성이 없는 꿈의 형상과도 같다. 즉 경이로운 사물과 사건들의 앙상블, 예를 들면 음악적 판타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 하프의 조화로운 연속음이며 자연 그 자체이다."
Novalis, Schriften Bd. III, p. 454.

또한 그는 세계는 꿈이 되고 꿈은 세계가 된다고 했다. 노발리스의 상상력은 꿈과 동화와 세계와 자연을 하나의 음악적 하모니로 만든다. 시인은 현실을 꿈으로 변형시키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신과도 같은 창조자이다. 상상력은 이제 자연과 현실을 질적으로 변형시키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무한한 에너지로 승화한다.

서양의 예술사에서, 모방의 시학에서 창조의 시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술과 자연은 더 이상 모방적 관계가 아니다. 예술은 스스로 독자적인 세계, 현실, 자연을 창조한다. 상상력은 이제 세계 현실, 자연 그 어느 것에도 기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상상력의 완벽한 해방이다.

낭만주의의 상상의 시학은 한마디로 자연에 대한 인간 정신의 우위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이 예술 속에서 인간을 위한 규범이 아니라 인간이 예술 속에서 자연을 위한 규범이다. 예술은 인간 정신의 창조물이요 그것은 어떤 것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조그만 세계요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미리 존재해 있는 대상적 현상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현실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제2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문학은 환상의 자유로운 작용이요 진정한 창조인 것이다. 그래서 노발리스는 문학이야말로 진정 절대적인 실재이며 문학적일수록 더 진실된 것이라고 했다. 의식과 자연, 의식과 현실, 의식과 세계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의미다. 시적인 상상력이 세계의 원칙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방에서 창조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미술에서 음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수반한다. 로마의 호라티우스가 문학은 그림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 이래, 낭만주의 이전까지 문학은 끊임 없이 미술과 비견되었다. 그것은 객관세계의 대상을 재현하는 미술이, 문학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미메시스 시학과 상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창조의 시학은 미술 대신 음악을 파트너로 삼게 된다. 인간 감성의 직접적인 표현으로서의 가장 순수한 예술인 음악의 추상적이고 반모방적인 성격이 낭만적 상상력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낭만주의적 동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예술과 상통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발리스는 동화를 음악적 판타지라고 한 것이다. 낭만주의 이래 소리는 상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된다.

상실된 낙원의 회상

노발리스가 이러한 절대적인 상상력의 자유를 가지고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푸른 꽃의 동경에 이끌려 하인리히가 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낭만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는 역사 발전의 3단계를 고려할 때 찾을 수 있다.

인용문
상상력은 어떻게 자연과 정신을 조화롭게 만들까?

낭만주의자들은 태고에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순박한 시대, 즉 황금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대는 그 조화가 깨져 인간이 갈등과 분열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센티멘털한 시대이다. 낭만적 상상력은 잃어버린 과거의 원초적인 상태를 미래에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노발리스는 역사도 동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화 속에서 새로운 황금시대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면서 자연과 정신을 재통합시키려는 동력인 것이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행 중에 동행한 상인들은 하인리히에게 동화 하나를 들려준다. 먼 옛날 지금의 그리스 땅에 시인들이 놀라운 악기로 신기한 소리를 내서 숲 속의 생명들과 정령들을 일깨우고, 황야나 사막에서 죽은 식물의 씨앗을 살려내 꽃 피는 정원을 만들어낸 시절이 있었다. 시인들은 또한 사나운 짐승들을 길들이고 거친 사람들에게는 질서와 도덕을 가르치고 그들의 마음속에 점잖은 품성과 평화의 예술을 심어주었으며, 사납게 날뛰는 홍수를 부드럽게 잠재우고, 심지어 죽음에 빠져있는 바위까지도 깨워서 춤을 추게 만들었다. 시인들은 예언자이면서 성직자요 입법자요 동시에 의사이기도 했다. 마적인 예술을 통해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초월적인 죽음을 땅으로 불러들였고 이 존재들이 그들에게 미래의 비밀들을 가르쳐주고 만물의 조화와 타고난 성질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 옛날에 음악가이기도 한 어느 시인이 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는 많은 보물을 가지고 배에 탔다. 그런데 보물에 탐이 난 선원들은 그를 죽이려 했다. 시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을 줄 테니 살려달라고 했으나 선원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인은 악기와 함께 스스로 바다로 뛰어내리겠으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주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선원들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되, 그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귀를 막기로 했다. 시인이 연주를 하자 음악소리에 맞추어 배가 덩실댔고 파도가 소리를 질렀으며 하늘에는 해와 별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리고 푸른 물결 너머에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과 바다괴물들이 춤을 추었다. 연주를 마친 후 시인은 악기를 끌어 안고 바다에 뛰어내렸다. 그 순간 바다괴물이 나타나 그를 구해서 그가 가고자 했던 해안으로 데려다 주었다. 해안에 도착한 시인은 잃어 버린 보물들을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자신을 구해준 그 바다괴물이 나타나 보물들을 백사장에 뱉어냈다. 보물을 나누는 과정에서 선원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대부분 죽고 배가 침몰하자 바다괴물이 보물을 찾아 시인에게 되돌려주었던 것이다. 각주4)

이 동화에서 묘사된 시절은 시인이 예술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을 제어할 수 있었던 태고의 시절이다. 자연과 인간을 제어한다는 것은 결코 종속적 지배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과의 완벽한 친화적 조화관계가 형성되었던 신화시대, 황금시대를 의미한다. 낭만적 상상력은 이러한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끊임없는 회상이다. 하인리히가 시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은 바로 상실된 낙원을 미래에 다시 되찾는 길이다. 그것이 푸른 꿈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나며 마틸데와의 사랑으로 소설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상인들은 또 다시 하인리히에게 그러한 예술의 효력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아틀란티스 동화를 들려 준다. 한 늙은 왕이 화려한 궁전에서 살고 있었다. 궁전에서는 항상 화려하고 재미있는 연회가 열렸으며 그곳은 그야말로 부족함이 없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오래 전에 왕비를 잃은 왕은 딸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으며 또한 시문학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시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공주의 영혼은 동경의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주는 그러한 예술이 구현된 혼 그 자체라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완벽하고 찬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나라에도 걱정거리가 생겼다. 가문에 대한 왕의 지나친 경외심과 왕이 너무 오만하다는 소문 때문에 감히 어느 누구도 공주에게 구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나라에서 멀지 않은 한 외딴 장원에서 한 노인이 아들을 가르치면서 살고 있었다. 아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외모와 투명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자연의 힘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어느 날 공주가 혼자서 장원 근처 숲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그 젊은이를 만난다. 젊은이는 아름답고 고귀한 그녀에게 매혹당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공주는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조를 하고 그들과 작별했다. 노인과 아들은 혼란스러운 인간사에는 관심을 끊고 오로지 자연 속에서 살아갔다.

노인은 미지의 여인이 아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그들이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공주 역시 그 젊은이에게 강한 인상을 받아 내면에 변화가 일어 나기 시작했다. 공주는 화려한 궁전과 휘황찬란한 삶,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숲 속 근처 그녀의 정원까지 그녀를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목걸이에 달려 있던 보석을 주웠다. 그는 자신의 시를 적은 종이에 보석을 싸서 잘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그 미지의 여인에게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공주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보석이 없어진 것을 알고 다음날 보석을 찾으러 숲 속으로 갔다. 젊은이와 공주는 다시 재회를 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사랑하는 사이인 것처럼 느꼈으며 보석을 찾아준 젊은이에게 공주는 목걸이를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공주는 더 자주 그를 찾아갔으며 그들은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공주는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었고 그는 만물이 조화를 이루었던 태초의 세계 역사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그녀를 데려다 주던 길에 세찬 폭풍우가 몰아쳐 그들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공주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아버지에 대해 몹시 걱정을 했다. 젊은이는 노인과 상의하여 공주를 그날부터 자기 집에 거처하도록 했다. 한편 공주가 실종되자 왕은 깊은 상심에 빠져 슬픈 나날을 보냈으며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다. 그런데 이상야릇하게도 공주가 아직 살아 있으며 곧 신랑과 함께 돌아올 것이라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있었다.

공주가 실종된 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궁정 사람들이 모두 정원에 모여 있었다. 한 젊은이가 류트를 손에 들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의 근원, 자연의 전지전능한 교감, 아주 먼 옛날의 황금시대와 그 시대를 다스렸던 시문학, 증오와 야만의 등장, 시문학과 그것과의 싸움, 시문학의 궁극적인 승리, 슬픔의 종말과 자연의 소생, 그리고 영원한 황금시대의 회귀에 대해서 노래했다. 모든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졌고 모두들 천사가 지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은 그 젊은이에게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노래를 한 곡 더 부르고 나서 청을 말하겠노라고 하면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한 노인이 어여쁜 아기를 안고 얼굴에 베일을 쓴 여인과 함께 나타났다. 젊은이는 노래를 부르며 공주와 함께 아기와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다. 왕은 진정 어린 사랑으로 그들을 받아주었고 군중들은 환호했다. 그 이후로 그 나라는 매일매일 아름다운 축제의 날이 계속되었다.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는 대홍수 때문에 사라졌다고 전해질뿐 그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성적 카오스

이 동화는 젊은이와 공주와의 사랑을 통해서 자연과 시문학의 조화를 묘사하고 있다. 궁정 세계와 인간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노인과 젊은이는 순박한 존재로서 때묻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인 유아적 자연 상태를 상징한다. 반면에 궁정에서 시문학을 통해서 정화된 공주의 순수한 마음은 예술 그 자체를 구현하고 있다. 그 둘은 상호 소통하며 보완적 관계를 갖는다. 공주는 젊은이에게 시문학을 가르치고 젊은이는 공주에게 자연을 가르친다. 둘의 결합으로 태어난 아기는 결국 아틀란티스라는 황금시대를 상징하면서 소설의 주인공 하인리히에게 예술의 위력을 가르치고 있다.

노발리스에게 상상력은 우리 인간을 현실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더 높은 세계로 상승시키는 힘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예술과 자연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한 하인리히는 그곳에서 클링조어라는 스승을 만나고 그의 딸 마틸데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젊은이와 공주의 이야기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스승 클링조어는 하인리히에게 또다시 동화를 들려 준다.

북극의 별나라에는 아르크투루스 왕과 그의 딸 프레이야가 살고 있다. 왕은 생명의 정령이요 프레이야는 평화를 상징한다. 그곳은 밤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그곳의 정원은 금속 나무들과 수정 식물들이 있었고 보석 꽃과 보석 열매들로 가득 차 있었다. 프레이야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왕비 소피는 지혜의 상징으로서 지상에 내려가 있다. 이야기는 별나라의 어느 늙은 영웅이 창문 밖으로 칼을 내던지자 불꽃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상에는 아버지, 어머니, 유모 기니스탄, 소년 에로스, 파벨, 서기, 소피가 살고 있다. 아버지는 감각을, 어머니는 마음을, 그들 사이에 태어난 에로스는 사랑을, 아버지의 연인이자 에로스의 유모인 기니스탄은 상상력을, 아버지와 기니스탄 사이에 태어난 파벨은 시문학을, 서기는 오성을, 소피는 지혜를 상징한다.

아버지가 뜰에서 우아한 모양의 쇠막대기를 주워 왔다. 그것은 북극의 별나라에서 늙은 영웅이 던진 칼의 조각이다. 기니스탄이 그 쇠막대기로 제 꼬리를 물어뜯는 뱀의 형상을 만들어 요람을 건드리자 소년 에로스가 깨어나 뛰어나왔다. 뱀은 에로스의 가슴 속에 힘찬 열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는 빠르게 청년으로 자랐다. 소피는 에로스가 기니스탄과 여행을 떠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기니스탄이 에로스를 유혹하지 않도록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하여 떠나도록 했다. 기니스탄은 에로스를 자기 아버지인 달나라의 왕에게 데려갔다. 밀물, 썰물, 허리케인 지진, 무지개, 소나기, 천둥, 번개, 구름, 아침과 저녁 등 활기를 띠기 시작한 자연의 힘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왕은 기니스탄으로 하여금 에로스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구경시켜주도록 허락했다. 보물창고는 온갖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커다란 정원이었다. 온갖 것들이 섞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 만들어졌고 평원들과 먼 곳은 파란빛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러나 난파당한 배, 즐겁게 식사하는 사람들, 화산 폭발과 지진, 달콤하게 애무하는 연인 등 장면들이 교차하더니 갑자기 하늘과 땅이 대혼란에 빠져 온갖 공포가 터져 나왔다. 유령의 군대가 사람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었으며 생명의 자식들을 화형대의 화마가 삼켜버렸다.

그때 갑자기 시커먼 잿더미에서 연푸른 강물이 흘러나와 유령들의 무리를 삼켜버렸다.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되어 달콤한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물위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고 양쪽의 화려한 왕좌 가장 높은 곳에는 소피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느릅나무 화환을 쓰고 오른손에 종려나무를 든 남자가 있었다. 그는 별나라의 왕 아르크투루스이리라. 떠다니는 꽃의 꽃받침 위에는 에로스가 누워 있었고 백합 잎사귀 위에는 어린 파벨이 하프 소리에 맞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에로스는 잠들어 있는 소녀 위로 몸을 구부렸고 소녀는 양팔로 그를 꼭 끌어 안았다. 그 소녀는 프레이야이리라. 달나라의 장관을 구경한 후에 에로스는 기니스탄과 육욕적 쾌락에 빠져 유사 근친상간을 범한다.

한편 지상에서는 서기가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금했다. 어린 파벨은 제단 뒤 비밀의 문을 통해 지하세계로 피신했다. 지하 동굴에서 파벨은 사다리를 타고 아르크투루스 왕의 방으로 들어갔다. 파벨은 왕으로부터 류트를 받아 음악을 연주하면서 얼음바다 위를 지치며 다녔고 얼음은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파벨은 해안가에서 어머니 기니스탄을 만난다. 그동안 기니스탄과 쾌락에 빠져 있던 에로스는 다시 청년에서 소년으로 변했고 몸에는 하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에로스는 기니스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복남매인 파벨에게는 친절하게 대했다. 파벨은 다시 지상세계로 올라간다. 그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서기와 그 일당들은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이고 있었다. 파벨은 독거미들로 하여금 그들을 물어뜯어 죽게 한 다음 독거미들을 데리고 다시 지하세계로 가서 여신들을 무찌른다.

동화는 이렇게 '아무 연관성이 없는 꿈의 형상'과도 같이 매우 복잡한 이야기로 얽혀 들어가고 있다. 마치 그것은 연관성이 없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실타래를 풀어헤치듯 혼란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결국 천상계와 지상 그리고 지하세계를 오락가락하면서 파벨이 북극의 얼어 있는 별나라를 구원하고 에로스로 하여금 공주 프레이야를 불타는 키스로 깨우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르크투루스와 소피는 에로스와 프레이야를 새로운 왕과 왕비로 추대하고 달의 왕은 지상의 총독으로 임명된다. 동화는 파벨의 노래로 끝난다.

영원의 왕국은 세워졌네
사랑과 평화 속에 싸움은 끝나고
고통의 긴 꿈도 이젠 끝났다네
소피는 모든 마음의 영원한 사제라네

소설에서의 하인리히와 마틸데, 아틀란티스 동화에서의 공주와 젊은이, 클링조어 동화에서의 에로스와 프레이야는 모두 평행선상에 있다. 소설과 동화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결국 하나로 통합된다. 노발리스의 상상력이 추구하는 것은 융합적인 상상력이다. 하늘과 땅을, 어둠과 빛을, 과거와 미래를, 시문학과 자연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네트워크 상상력이다. 노발리스가 철학, 문학, 광산학, 물리, 화학, 의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태초의 세상을 질서로 파악한 반면에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카오스로 이해했다. 클링조어 동화는 자연, 인간, 천상, 지상, 지하 등의 다양한 현상들이 얽혀 카오스의 교향곡을 들려주는 듯하다. 시인은 상상력을 가지고 카오스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노발리스의 상상력은 카오스를 연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상들의 대립이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로 구성되는 또 하나의 다른 질서를 창조한다. 노발리스가 말한 '이성적 카오스'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을 상징하는 기니스탄이 에로스를 달나라로 데려가서 보여준 풍경들에서 조화와 분열 그리고 다시 찾은 조화라는 역사 발전의 3단계 원칙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지 않는가. 상상력은 과거의 유토피아를 미래에서 복구하려는 시간여행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하인리히는 여행을 하는 것이며 그 여행에서 소설과 동화가, 현실과 환상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그의 '이성적 카오스'로서의 상상력을 가지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면의 세계, 주관의 세계로 여행하는 현대적 상상력을 선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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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택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매체사회학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미디어아트연구소를 설립하여 인문학이 적대시해왔던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펼쳐보기

출처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 저자임정택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류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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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낭만주의 시대의 상상력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임정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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