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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핀란드에서 핀란드어·스웨덴어로 씌어진 문학작품의 총체.
중세에는 라틴어로 씌어진 글도 여기에 포함된다. 가장 오래된 핀란드 문학 형식인 민요는 구전되다가 18세기 후반에 글로 옮겨졌다. 12세기 중엽부터 1809년까지 핀란드는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으며, 19세기말까지 스웨덴어가 상류층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19세기말경 핀란드어를 문화적 매체어로 부활시키려는 힘찬 운동이 시작되었다(민속문학).
핀란드 민요
핀란드 민요는 풍요로웠고 폭넓은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 행이 강약격 4음절로 이루어진 운율은 핀란드어에 잘 어울렸고, 긴 절을 기억하는 데 적합했다. 대부분의 시는 서사적 연시(連詩)이거나 짧은 노래였다.
서사시들은 신화적 사건이나 영웅의 업적을 중점적으로 노래했다. 세계 창조에 관한 초기 시나 삼포의 탐험을 그린 시, 레밍케이넨의 모험 이야기들, 쿨레르보의 비극적 전설 등도 이런 범주에 드는 시이다. 많은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베이네뫼이넨인데, 어떤 사람은 그를 신화적 인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역사적 인물로 생각한다. 이 이야기들은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 Kalevala〉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여성에 의해 씌어진 많은 서정시는 일상의 슬픔과 기쁨을 다루었고, 사랑의 노래나 고독한 영혼의 분위기를 그린 노래도 많다.
이 노래들에서 숲과 호수를 풍경으로 하는 전원과 마을의 공동사회가 얼핏 나타나기도 한다. 많은 시는 구전되는 가운데 변화를 겪거나 다른 시와 혼동되기도 했다(→ 구비문학). 가장 오래된 시는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교시대(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12세기까지 계속됨)에서 비롯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시는 중세에 나왔으며 연대의 추정이 가능한 사건과 인물을 다루었다.
18세기 후반 민요의 체계적 수집이 시작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수집가 엘리아스 뢴로트는 이 서사시들이 하나의 연속적인 민족 서사시로 조립될 수 있으리라 결론지었다. 그는 많은 시를 자신의 관련자료와 연결시켜 단일 플롯으로 짜맞추었고, 그결과 〈칼레발라〉(결정판, 1849)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민속자료에 바탕을 두었지만 구조면에서는 뢴로트가 창작한 것이다. 그는 또한 서정시를 선별하여 〈칸텔레타르 Kanteletar〉로 출판했고, 이 시집이 〈칼레발라〉와 함께 핀란드 민족의식·예술·문화 전반에 걸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스웨덴어 핀란드 문학
핀란드에서 스웨덴어 문학이 강력히 발전한 것은 19세기뿐이었고, 그 전에는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러 탁월한 시인이 있었는데, 야코프 프레세, 구스타프 필리프 크레우츠, 프란스 미카엘 프란센이 유명했다.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핀란드 국민과 풍경이 문학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는 민족시인이 되었다. 사카리아스 토펠리우스는 〈왕의 반지와 외과의사 이야기 Fältskärns berättelser〉(1853~67) 같은 스콧풍의 역사소설·시·동화 등을 썼다. 요한 빌헬름 스넬만은 독일 철학자 G. W. F. 헤겔의 신봉자로 지방문화와 민족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핀란드어의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863년 핀란드어는 스웨덴어와 동등하게 국가의 공용어가 되었다. 19세기말 스웨덴어 핀란드 문학은 핀란드어 문학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이 과도기의 중요한 작가로는 요세프 율리우스 베크셀과 카를 아우구스트 타바스트셰르나가 있다. 20세기초에는 게으름뱅이 또는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다그드리바르나파(派)로 알려진 일군의 산문작가들이 등장하여, 간결하고 회의적이며 분석적인 색채를 띤 작품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중요한 작가는 루나르 실트로서, 그의 소설 및 희곡은 윤리적·예술적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시인 중에는 아르비드 뫼르네, 베르텔 그리펜베리가 언급된다.
스웨덴어 핀란드 문학은 시문학에서 모더니즘이 발전한 1920년대에 2번째 개화기를 맞는다. 이 문학을 주도한 사람은 환상적·몽환적 시를 쓴 에디트 쇠데르그란이었다. 그뒤를 이어 엘메르 딕토니우스가 혁명적·정치적 강세를 띤, 고의적으로 투박하게 날을 세운 서정시를 썼고, 군나르 비외를링은 문법에 어긋나는 기법을 썼으며, 라베 엔켈은 인상주의적 자연시를, 하가르 올손은 시적 소설과 모더니즘을 지지하는 평론들을 썼다. 자유운·리듬을 맞추지 않은 시행, 강력한 심상 등이 시의 특징이 되었다. 제2세대의 모더니스트는 더 단순한 문체를 채택했는데, 솔베이그 본 쇼울츠, 에바 비크만, 보 카르펠란 같은 작가가 여기에 속한다.
1960년대에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 모더니스트들의 유미주의와 개인주의를 혐오하고 더 비판적이며 사회적인 논쟁을 소개하는 시인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문학 유형을 주창한 가장 유명한 작가로는 라르스 훌덴, 클라에스 안데르손을 들 수 있다. 20세기 산문작가 가운데 티토 콜리안데르, 괴란 스테니우스는 종교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다. 발렌틴 코렐은 희곡을 썼고, 오스카르 파를란드는 심리소설로, 토베 얀손은 상상력이 풍부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소장 작가로는 크리스테르 킬만, 안데르스 클레베가 뛰어났다.
핀란드어 문학
핀란드 문어의 창시자는 종교개혁자 미카엘 아그리콜라인데, 핀란드의 첫 루터교 목사였던 그는 소(小)기도서를 출판했고(1543경), 그리스어판 〈신약성서〉를 번역했다(1548). 성서 전체가 처음으로 완역·출판된 것은 1642년의 일이었다.
17, 18세기에는 많은 재능 있는 시인들이 핀란드어로 작품을 썼지만 알렉시스 키비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핀란드 문학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의 〈일곱 형제들 Seitsemän veljestä〉(1870)은 핀란드어로 씌어진 최초의 소설이었으며, 핀란드어에 양식(유머가 가미된 사실주의)과 주제를 부여해주었는데, 이 양식과 주제는 후대에 전통이 되었다. 키비는 시인이기도 했으며 동료 시인 가운데는 아우구스트 알크비스트 옥사넨, 수오니오(율리우스 크론), 진지하고 박력 있는 시인 카를로 크람수, 민요에 바탕을 둔 문체로 시를 쓴 J. H. 에르코 등이 있었다.
1872년 카를로 베르그봄에 의해 핀란드 국립단이 설립되었고, 1880년대에는 누오리 수오미(청년 핀란드)로 알려진 일군의 자유주의 작가들에 의해 〈페이벌레티 Päiivälehti〉(1904년부터 〈헬싱겐 사노마트 Helsingen Sanomat〉로 바뀜)라는 신문이 창간되었다.
노르웨이·프랑스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핀란드에 사실주의와 사회비평을 소개했으며 이와 비슷한 견해가 이미 뛰어난 극작가 민나 칸트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다. 이 문학집단의 성원 가운데는 서정적 자연소설의 대가인 유하니 아호와, 대학생활을 그린 소설 〈조국 Isänmaa〉(1893)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끈 아르비드 이에르네플레트가 있었다.
이에르네플레트는 톨스토이의 가르침을 그의 소설과 생활에 적용하고자 시도했다. 〈내 부모님의 소설 Vanhempieni romaani〉(1928~30)에서는 핀란드의 문화적 생활에서 한 부분을 담당했던 그의 부모를 고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더 젊은 작가로는 중요한 핀란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에이노 레이노가 있었는데, 그의 재능은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성가(聖歌) Helkavirsiä〉(1903~16)로부터 시사성 있는 소설·팜플렛·신문·잡지에 기고한 평론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휘되었다.
전환기의 핀란드 작가 가운데 테우보 파칼라는 고전이 된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썼고, 요한네스 린난코스키는 핀란드의 돈 주앙이라 할 인물의 호색모험담을 그린 〈선홍빛 꽃의 노래 Laulu tulipunaisesta kukasta〉(1905)라는 베스트 셀러와 짜임새 있는 농촌소설을 썼다. 아이노 칼라스의 작품들은 에스토니아를 무대로 했고, 그녀의 최고작들은 고전적인 문체로 씌어진 산문 발라드로 금지된 사랑을 다루었는데, 〈바르바라 본 티센후젠 Barbara von Tisenhusen〉(1923)·〈파괴자 에로스 Reigin pappi〉(1926)·〈늑대의 신부 Sudenmorsian〉(1928)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많은 작가들이 '민족의 묘사'라는 전통을 이었으나 더욱 비판적인 정신을 담아냈다.
1918년 내전이 끝난 후 자기비판의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대표적인 핀란드의 산문작가는 요엘 레흐토넨으로 그의 〈푸트키노트코 Putkinotko〉(1919~20)는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다채롭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신랄한 비판과 함께 샅샅이 그려냈으며, 그의 마지막 소설 〈영혼의 투쟁 Henkien taistelu〉(1933)은 당대 상황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볼테르 킬피는 〈알라스탈로의 담화실 Alastalon salissa〉(1933)이라는 중요한 소설에서 내적 독백, 플래시백으로 처리된 긴 에피소드들, 정확한 세부묘사 같은 수법을 사용하여 6시간 동안의 사건들을 900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늘여놓았다.
킬피는 실험소설의 대표자였고, 시대문제와 과거의 재창조에 대한 관심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에 연계되는 작가였다. 헤이키 토필라의 이야기들은 미신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활을 그려냄으로써 섬뜩한 효과를 냈다. F. E. 실란페는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작중인물들을 환경에 통합되는 부분으로 조망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특히 그의 가장 중요한 소설 〈열성유전 Hurskas kurjuus〉(1919)·〈하녀 실리아 Nuorena nukkunut〉(1931) 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193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는 사변적·비관주의적이며 학구적인 베이코 안테로 코스케니에미와 간결한 압축의 대가이자 탁월한 번역가인 오토 마니넨이 있다.
1920년대 중반 툴렌칸타야트(횃불을 든 사람)라고 불리는 일군의 청년작가들이 등장하여 '유럽으로 창문을 열어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들을 통해 핀란드인들은 자유시, 이국적 주제들, 도회지적 낭만을 알게 되었다. 이 집단의 독창적인 이상은 카트리 발라의 초기 시에서 실현되었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감각적 쾌락의 예언자였으나 나중에는 사회비판과 사회주의로 방향을 바꾸었다.
툴렌칸타아트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은 평론가 파볼라이넨으로, 뛰어난 기행작가이자 시대분석가였던 그는 1930년대에 출판된 저서에서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출판된 그의 작품은 전장일기인 〈슬픈 독백 Synkkäyksinpuhelu〉(1946)이었다. 미카 발타리는 여러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이집트인 Sinuhe, egyptiläinen〉(1945)을 남겼는데,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후의 환멸을 반영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중요한 시인 가운데 엄격한 도덕적 규약을 지지하고 〈잠과 죽음 Sleep and Death〉을 쓴 우노 카일라스와 꼼꼼한 문장가이자 민감한 탐미주의자인 카를로 사르키아는 둘 다 시의 고전적 이상과 전통적 운율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야 주요시인으로 인정받은 시인들인 아로 헬라코스키와 P. 무스타페에는 전통적 양식, 특히 리듬 분야를 넓힌 공로가 있다.
주도적인 산문작가로는 펜티 하안페에와 토이보 페카넨이 있는데, 하안페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해 보여주는 단편소설에서 개인주의적인 반어의 기질을 지닌 능숙한 문장가임을 드러냈고, 산업 노동자들을 그린 페카넨의 많은 이야기들은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여겨진다.
〈나의 어린시절 Lapsuuteni〉(1953)은 그의 걸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기의 많은 문학조류는 그 차이를 뚜렷이 분간할 수 없이 다채로운 낭만주의, 심층심리학주의, 신랄한 사회비판이 섞여 있었다. 1936년 킬라('쐐기')라고 알려진 좌파계열 작가 집단이 형성되었는데, 그들의 중요한 작품 대부분은 전후에 나타났다. 엘비 시네르보의 소설 〈빌리아미 바이도카스 Viljami Vaihdokas〉(1946)가 그 보기이다.
좌파의 이념들은 하안페에의 작품에도, 당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극작가 헬라 부올리요키의 작품에도 나타나 있었다. 부올리요키는 1940~41년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공동으로 〈푼틸라 씨와 그의 하인 마티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1948 공연)라는 희곡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과도기를 나타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또는 전쟁중에 글을 쓰기 시작한 세대는 위기를 겪었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는데, 그러한 시인으로는 아로 헬라코스키, P. 무스타페에(필명은 마르티 하비오), 알레 튀니, 비리오 카야바, 아르보 투르티아이텐을 들 수 있다. 곧 소장파 시인들이 출현했으며, 그들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자유 리듬, 각운의 결여, 상징적 심상, 비(非)시적 주제 등을 채택하는 성격을 보인다. 산문작가이며 실험적이고 이상한 극을 쓰기도 한 시인 파보 하비코(〈시선집 Selected Poems〉 1968)를 비롯한 이 문학파의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정치적·종교적 관여를 피하고 종종 회의적인 조망을 피력하고 서정적인 표현에 관심을 가졌다.
서정시 분야에서는 1950년대가 풍요롭고 창조적인 시기였는데, 헬비 유보넨, 에바리사 만네르, 투오마스 안하바(〈어둠 속을 천천히 나아가며 In the Dark Move Slowly〉(1969), 펜티 호라파, 라시 누미 같은 시인들에게 힘입은 바 컸다.
산문 분야에서도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발전이 있었다. 에일라 페나넨, 에바 요엔펠토의 작품들처럼 절제있고 객관적인 양식이 소설 분야의 관례가 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안티 휘리의 〈봄과 가을 Kevättä ja syksyä〉(1958)·〈국민학교 Alakoulu〉(1965)에서 보이듯이 이 기법은 효과적인 산문을 낳았다(휘리의 등장인물들은 행동주의적으로 묘사되었음).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가들도 있었는데, 그로테스크한 소설을 쓴 베이요 메리, 〈마닐라 로프 Manillaköysi〉(1957) 같은 전쟁소설을 쓴 카플리네스크, 사실주의와 환상을 뒤섞은 마르야 리사 등이 주목할 만했다.
더욱 전통적인 서사양식을 유지한 작가로는 〈무명의 용사 Tuntematon sotilas〉(1954) 같은 전쟁소설과 장편 사회비판소설 〈여기 북극성 아래 Täällä pohjantähden alla〉(1959~62)를 쓴 베이뇌 리나가 있었다. 1960년대초부터 많은 시인들은 솔직하고 세련되며 격의 없는 양식을 채택했고, 사회·정치 문제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펜티 사르코스키와 마티 로시가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였다. 안셀름 홀로, 베이노 키르스티네의 시들은 언어 실험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이 시기의 가장 뛰어난 극작품 가운데 하나는 아르보 살로가 쓴 〈라푸아 오페라 Lapualaisoopera〉(1966)로, 이 작품은 1930년대의 핀란드 파시스트 운동을 다룬 정치 뮤지컬이다. 산문 분야에서는 지적 실험, 성적 낭만주의, 기록소설, 전통적 서사양식, 자연주의적인 일상생활의 묘사가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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