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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세기 핀란드 국민주의 운동.
핀란드어와 핀란드 문학 발전에 이바지했고 핀란드어가 지배적인 소수파의 언어인 스웨덴어와 공식적으로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초기 펜노만주의자들의 활동으로는 핀란드어 및 문자 사용을 고취한 토요회(1830)와 핀란드 문학회(1831)의 설립을 들 수 있다. 핀란드어로 쓴 엘리아스 뢴로트의 서사시 〈칼레발라 Kalevala〉(1835)를 비롯한 예술적·학술적 작품이 출간됨으로써 핀란드어가 문화 발전을 위한 전달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반대하던 스웨덴어(스베코만) 운동에 보여주게 되었다. 러시아 당국(당시 핀란드는 제정 러시아의 통치하에 있었음)이 펜노만 운동에 일반적으로 동조를 했기 때문에, 19세기에 특히 알렉산드르 2세 황제가 다스리던 1855~81년에 꾸준한 진보가 이루어졌다.
1863년에는 이 운동의 지도자 요한 빌헬름 스넬만의 촉구에 따라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어를 쓰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핀란드어를 핀란드 공용어로 선포했고 1883년에는 정치적·사법적으로 스웨덴어와 동등하게 쓰일 것을 명령했다. 1902년 러시아 법령에 따라 핀란드어를 쓰는 모든 곳에서 핀란드어가 공용어로 선포되었다. 1860년대에는 '핀란드당'이 생겨 펜노만 운동을 이끌었다. 이 조직은 헌법에 대한 쟁점으로 갈라져 1890년대 후반에 '노장 핀란드당'과 '소장 핀란드당'으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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