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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

다른 표기 언어 Thebes
요약 테이블
위치 이집트 중남부 키나 주 남부, 나일 강 연안
대륙 아프리카
국가 이집트

요약 고대 이집트 제국의 수도.
고대 이집트어로는 Wase, Wo'se, Nowe(BC 22세기경~), Nuwe.

북위 26°근처의 나일 강 양안에 있었다. 오늘날 이 도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룩소르(알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75㎞ 떨어진 지점에 있다.

고대 테베의 면적은 약 93㎢이며 주요부분은 나일 강 동안에 있었다. 서안은 '죽은 사람들의 도시'로 불렸는데 왕의 장제전을 비롯해 그곳의 일에 종사하던 성직자·군인·공예가·노동자들의 집이 있었다(→ 네크로폴리스).

역사

테베(Thebes)

이집트의 수도 테베에 있는 사원 모습

ⓒ FAE / WIKIPEDIA | 4.0 BY CC

테베의 옛 이름은 와세 또는 워세였다.

상(上)이집트의 4번째 노모스[州]인 와세는 제4왕조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베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지방 총독들이 이집트를 통일하여 지배하게 된 제11왕조(BC 2133~1991) 때의 것이다. 이때부터 테베는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도시의 최고신인 아몬을 경배하는 뜻에서 노웨 또는 누웨('아몬의' 도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식 이름인 테베(테바이)는 룩소르의 고대 이집트식 이름인 타오페에서 유래했다.

제12왕조 시대(BC 1991~1786)에 수도는 알파이윰으로 옮겼지만, 왕들은 왕가의 수호신인 아몬을 계속 모셨고 테베에 아몬의 신전들을 세웠다(중왕국). 이집트를 침략한 힉소스인들은 이 지역을 거의 또는 전혀 지배하지 못했고, 테베의 왕들은 마침내 그들을 이집트에서 몰아냈다(BC 1560경). 이어서 테베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제18왕조의 파라오(왕)들은 테베를 재건하여 이집트의 수도로 삼고, 아시아에서 약탈한 전리품과 누비아의 공물로 신전들을 장식했다. BC 15세기에 나일 강 양안에 커다란 궁전들이 세워져 화려한 색깔로 치장되었고, 주위는 정원으로 둘러싸였다. 귀족들은 그 주위에 영지를 소유했으며, 거리는 외국인 무역상인과 용병 및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신왕국시대의 파라오들은 앞다투어 나일 강 동안에 커다란 신전을 지었고, 서쪽 연안에는 그보다 더 큰 장제전을 세웠다.

테베는 아멘호테프 3세 시대인 BC 1400년경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 III)

이집트의 왕, BC 1390~1353년 재위

ⓒ FAE / WIKIPEDIA | CC의 BY-SA 3.0

아멘호테프 3세는 외국에서 공물을 받아 모은 막대한 재산을 대부분 아몬 신전의 건축에 쏟아부었다. 그의 아들 아크나톤 시대에 테베는 잠시 역경에 처했다. 왕실은 이 도시를 버렸고, 아몬 숭배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투탕카멘이 테베를 복구하자 곧 옛날의 수입과 명성을 되찾았으며, 세티 1세와 람세스 3세 시대 내내 번영을 유지했다.

그들은 해마다 몇 달을 테베에서 살았다. 이 도시에는 계속 풍부한 자금이 흘러들었으며 고대 문헌에 따르면 람세스 3세는 아몬의 신전에 8만 6,486명의 노예와 막대한 토지를 기부했다고 한다. 람세스 왕조시대 후반에 테베는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정부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빠졌던 것 같다. 람세스 9세가 다스리던 BC 1121년경에 나일 강 동안의 시장이 서안의 동료 시장을 고발했고, 이 고발로 테베 서부의 고분에 있는 왕의 무덤들이 약탈당한 사건을 조사한 결과 고위층의 부패가 드러났다.

약탈당한 왕의 미라들은 이리저리 옮겨지다가, 아몬을 섬기는 성직자들 손으로 마침내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과 다이르알바리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이 두 은닉처를 찾아낸 것은 근대 고고학 발견 가운데 최대사건의 하나였음). 테베의 실정은 소요를 초래했고, 고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파업을 일으켰다. 현지의 사건을 처리할 권한은 점점 더 아몬의 고위성직자들 손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였으며, 결국 람세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 죽은 뒤 타니스 왕조(제21왕조)의 파라오와 테베의 고위 성직자가 이집트의 통치권을 나누어 갖는 상황이 벌어졌다.

파라오와 고위성직자는 통혼과 입양을 통해 유대를 강화했으며 타니스 왕조 파라오의 딸들은 '아몬 신의 아내'가 되어 테베에서 더 큰 권력을 행사했다.

누비아의 파라오들은 테베를 도읍으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테베의 명성이 워낙 높아서 호메로스도 '문이 100개인 테베'의 부에 대해 언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BC 661년에 테베는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에게 약탈당했고, 사이스 왕조가 재건했지만 끝내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했다.

스트라보 시대(BC 63경~AD 21)에 이 도시는 단지 관광객들이 고대 신전을 구경하러 찾아오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전락했다.

유적

테베에는 4군데의 주요유적지, 즉 카르나크, 룩소르,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이 있으며 그밖에 왕들의 장제전도 중요하다.

파라오들이 자신의 무덤을 은밀한 왕들의 계곡에 감춘 신왕국시대에는 무덤보다 장제전의 겉치레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왕들은 장제전을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기 위해 경쟁했다(매장). 장제전은 지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건물이었지만 모두 테베의 최고신인 아몬에게 바쳐졌고, 신왕국 신전의 독특하고 핵심적인 형태를 갖고 있었다(이집트 종교). 장제전들은 테베 서부의 골짜기 가장자리에 세워졌는데, 대체로 지형에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죽 늘어서 있다.

초기에 지어진 장제전은 대부분 흔적만 남아 있다.

다이르알바리에 있는 하트솁수트 여왕의 신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18왕조의 대규모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장제건축). 이 여왕의 건축가인 세넨무트는 BC 1490년경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에 있는 절벽 구석에 일련의 주랑과 3층으로 이루어진 안뜰을 설계했다.

골짜기 쪽으로부터는 스핑크스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통해 접근하도록 되어 있고, 앞뜰에는 나무와 덩굴식물이 심어진 정원이 있었다. 계단식 대지를 등지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양쪽에는 회랑이 있었고, 이 회랑의 지붕은 2줄로 늘어선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다. 다음 층에 있는 안뜰 서쪽에도 이와 비슷한 회랑이 뻗어 있었으며, 아누비스 신과 하토르 여신의 부속 예배당이 있었다.

맨 꼭대기층의 테라스에는 기둥이 늘어선 큰 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양쪽에는 예배당 및 뒤쪽 절벽을 파서 만든 성소가 있었다. 주랑과 예배당에 새겨진 많은 돋을새김 조각은 더없이 아름답고 매우 흥미롭다. 거기에는 2개의 오벨리스크를 거룻배에 실어 아스완에서 카르나크로 운반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과 하트솁수트 여왕이 기적적으로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있으며, 여왕이 홍해 건너편에 있는 향료의 땅 푼트로 파견한 해상무역단을 묘사한 조각도 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지은 장제전은 테베에 있는 모든 신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화려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후세의 파라오들은 이것을 거의 완전히 파괴해 버렸고,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몇 개의 토대와 높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돌기둥, 그리고 멤논거상(巨像)이라고 부르는 2개의 조상뿐이다. 멤논의 거상은 한때 장제전의 탑문 앞에 있는 통로 양쪽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농경지 한가운데에 외로운 파수꾼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이 조상들은 아멘호테프 3세를 나타내고 있다. 머리에 쓴 관을 합하면 높이가 거의 22m나 되는데, 각각 하나의 돌덩어리를 잘라서 만든 것이다. 북쪽에 있는 조상은 이따금 해가 뜬 직후에 기묘하게 높은 소리를 냈기 때문에 고대에는 '노래하는 멤논'으로 유명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그의 왕비인 사비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로마 관광객들이 이 놀라운 소리를 듣기 위해 테베를 찾았다. 그러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에 석공들이 이 조상을 군데군데 수리한 후로 '노래하는 멤논'은 두번 다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쿠르나에 있는 세티 1세의 신전은 일부만 남아 있고 앞뜰과 탑문은 사라졌다.

이 신전의 일부는 세티 1세의 아버지인 람세스 1세의 장례식에 바쳐졌는데 세티의 아들인 람세스 대왕이 완성했다. 람세스 대왕의 모습은 신전의 돋을새김 조각에 묘사되어 있다. 벽은 파라오들이 여러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신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종교적인 장면들만으로 장식되어 있다(벽화).

라메세움이라고 부르는 람세스 2세(람세스 대왕)의 장제전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옛날의 웅장함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넓은 바깥 탑문은 람세스 2세가 시리아에서 히타이트인들과 싸우는 활기 찬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고, 내부 탑문은 카데시 전투 장면과 수확의 신 '민'의 축제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오시리스로 가장한 왕의 커다란 조상들이 안뜰의 기둥들을 장식하고 있다. 첫번째 안뜰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이 있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거상의 높이는 18m가 넘고, 무게는 1,000t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2번째 안뜰 너머에 있는 다주식 큰 방은 카르나크 신전의 큰 방과 비슷하다(다주실). 그 너머에는 기둥으로 떠받친 방들과 지금은 사라진 성역이 있었다.

장제전 주위에는 높은 벽돌담이 있고, 이 담장 안에는 둥근 천장을 씌운 건물의 유적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군수품 창고, 마구간, 작업장, 그리고 장제전 관리인들이 사는 집이었을 것이다.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라메세움을 '오지만디아스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마디나트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은 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커다란 장제전들 가운데 가장 시대가 늦고 가장 남쪽에 있는 신전이다.

전체적인 설계는 라메세움을 본떴다. 넓은 정면 탑문과 2번째 탑문으로 분리되어 있고 주랑으로 둘러싸인 바깥쪽 뜰과 안뜰, 기둥으로 떠받친 큰 방과 그보다 작은 2개의 전실,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방들로 둘러싸인 성역 등이 라메세움과 비슷하다. 다주식 큰 방은 일부가 파괴되어 있고 기둥들은 첫번째나 2번째 받침대 높이까지 허물어져 있지만, 다른 것은 잘 보존되어 있다.

안쪽 방들의 벽에는 왕이 신들 앞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한 전차를 탄 왕이 리비아인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쓰러뜨리고, 아모리족의 도시를 공격하며, 포로로 잡은 리비아인과 아시아인 및 해적들을 아몬 신과 무트 신 앞으로 끌고 오는 전투 장면들도 묘사되어 있다. 신전의 바깥 벽에는 이집트인이 펠레세트인(필리스티아인)과 셰르덴인 및 셰켈레시인 등 '해양민족'과 벌인 대규모 해전이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거대한 탑문의 바깥쪽 정면에 새겨진 돋을새김도 뛰어나다. 이것은 갈대가 우거진 습지에서 파라오가 들소를 사냥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신전 옆에는 궁전 유적이 있다. 신전을 둘러싼 담장 동쪽에 나 있는 높은 문에는 요새처럼 총안이 뚫려 있다. 신전 구내에는 작은 신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투트모세 3세와 하트솁수트 시대에 지은 것이지만, 그후 여러 파라오들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및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변형되거나 덧붙여졌다.

또다른 신전은 사이스 왕조의 한 여왕이 지은 작은 장제전이다. 여기에는 신성한 호수와 우물이 있고, 라메세움과 마찬가지로 진흙벽돌로 지은 집들과 둥근 천장을 씌운 군수품 창고의 유적이 남아 있다.

마디나트하부 신전 남쪽에 있는 유적은 테베 서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말카타에 있는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 왕비의 궁전이 그것이다. 사실은 4개의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하나가 '위대한 왕비'의 것이다.

왕은 왕비를 위해 이 궁전에 호수를 만들었는데, 유람선을 띄울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였다. 이 호수는 굴착된 커다란 물웅덩이로 판명되었으며 지금도 말카타 남동부까지 뻗어 있는 흙무더기선으로 그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증거를 토대로 의문이 제기되었는데, 이 호수는 나일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테베 이외에도 대도시가 있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테베만큼 많은 유산을 남겨준 도시는 없다.

역사적 장면이 묘사된 테베의 거대한 신전들, 고대인의 일상생활과 종교적 믿음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무덤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을 채우고 있는 그 무수한 골동품들은 모두 그 유산의 일면이다. 고대 테베만큼 고대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 유적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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