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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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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이집트 |
요약 고대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여겨지는 투트모세 3세의 아들로, 이집트의 대외적 팽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위에 있으면서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과 군사적 수완으로 아버지의 정복사업을 계속해나갔다. 체력을 키우고 전쟁기술 등을 익히는 것을 중요시했던 아버지 투트모세 3세의 훈육방침에 따라 성장한 그는 무훈을 자랑스러워했다. 첫 번째 군사작전은 시리아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으로 이 기간 동안 아시아의 여러 왕들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아냈다. 갈릴리 호수까지 나아갔던 2번째 군사작전이 있은 뒤부터 북부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했다. 아멘호테프의 무덤은 테베에 위치한 '왕들의 계곡'에 있는데 훌륭하고 보존상태도 좋다.
투트모세 3세의 아들로, 이집트의 대외적 팽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위에 있으면서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과 군사적 수완으로 아버지의 정복사업을 계속해나갔다.
훌륭한 전사였던 투트모세 3세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 그를 양육했으며, 특히 체력을 키우고 전쟁기술과 운동정신을 가르치는 데 치중했다. 아멘호테프도 배운 기술을 사용해 무훈을 자랑하는 데 싫증을 내지 않았으며 죽을 때는 자신이 아끼던 커다란 활과 함께 묻힐 정도였다. 아멘호테프가 벌인 첫번째 군사작전은 시리아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으로 이 기간 동안 아시아의 여러 왕들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아냈다.
아시아에서 돌아온 그는 반란을 일으킨 아시아의 한 족장의 시체를 누비아의 수도로 보냈고 이 시체는 본보기로서 시가지의 벽에 걸렸다. 이같은 조처는 누비아에서 평화를 유지시키기에 충분했다. 2번째 군사작전은 이보다는 좀 규모가 작은 것으로 단지 갈릴리 호수까지 나아가는 것에 그쳤으나, 이 작전이 있은 뒤 미탄니·바빌론·히타이트는 아멘호테프에게 선물을 보냈다. 이후 북부에서는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했다.
이집트 안에서는 아버지인 투트모세 3세 때부터 일해온 관리들 가운데 상당수가 계속해서 아멘호테프를 위해 일했으며, 그는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건축물들을 모두 완공했다. 또한 하(下)이집트에 성역지들을 새로 건립하는 한편 테베 서쪽에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을 안치할 신전을 지었다. 아멘호테프의 무덤은 테베에 위치한 '왕들의 계곡'에 있는데 훌륭하고 보존상태도 좋으며 그의 미라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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