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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다른 표기 언어 Zoroastrianism

요약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 BC 6세기 옛 페르시아 지역에서 창시되어 오늘날의 이란 지역과 인도를 거점으로 퍼져나갔다. 창조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중심으로 선악의 세계가 구분된다. 경전은 <아베스타>가 남아있으나 대부분 소실되어 일부 내용만 전승되고 있다. 하루에 다섯 차례 제사의식을 지내는데, 이때 사용되는 불을 성스럽게 여겨 불을 숭배하는 것으로 여겨 중국에서는 ‘배화교’라 부르기도 한다. 이슬람의 종교 박해를 피해 인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도들은 ‘파르시’ 또는 ‘파르세’라 불린다.

조로아스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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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BC 6세기에 이란의 예언자·종교개혁가인 자라투스트라(영어명:Zoroaster)가 창시한 종교. 단일신론적이고 이원론적인 성격을 띤다. 조르아스터교는 제사에 쓰이는 불을 성스럽게 여긴다. 이를 불을 숭배하는 것으로 여긴 중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라고 불렀다.

창시자 자라투스투라

자라투스트라의 개혁은 그가 태어나고 교육받은 전통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당시 사회는 족장과 사제계급, 전사계급 농부와 목축업자 계급 등 3계급으로 구분된 듯하다. 이 계급구조는 종교에도 반영되어 특정 신들, 즉 다이바(천상의 존재)들이 3계급과 각기 관련되었다. 예를 들면 미트라와 바루나를 위시한 아후라('主')들은 제1계급과 관련되었다.

자라투스트라는 한 아후라, 즉 아후라 마즈다('지혜의 주')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에 대한 제의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최초로 아후라 마즈다를 선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신은 다리우스 1세(BC 522~486 재위)의 위대한 신으로 등장하는데, 다리우스가 자라투스트라의 제자를 통해 이 신을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교리체계

자라투스트라의 교리체계에서 악의 근원은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 아들이 영원한 경쟁관계에 들어선 태초의 창조 때 자유의지를 행사한 것으로 소급된다.

한 아들인 스펜타 마이뉴('자애로운 영')는 선을 선택하여 진리·정의·생명의 속성을 얻는다. 또 하나의 아들인 앙그라 마이뉴('파괴의 영')는 악을 선택하여 그에 수반되는 파괴·불의·죽음의 힘을 얻는다. 자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세계는 얼마 뒤 대화재로 소멸되고, 선의 추종자들만이 새 창조에 동참하기 위해 부활한다. 새 창조가 일어날 때까지 죽은 자의 영혼은 보응의 다리를 건너는데 선한 자는 천국으로 사악한 자는 지옥으로 가기 위해 기다린다.

후대의 조로아스터교 우주론은 세계의 역사를 각기 3,000년씩 4시기로 구분되는 광대한 드라마로 인식한다. 무한한 시간 안에서 빛에 거주하는 오르마즈드와 그의 아래 어둠에 거주하는 아흐리만은 무한한 시간 동안 서로 공존한다.

첫 3,000년이 끝날 때 아흐리만은 그들을 갈라놓았던 공허를 건너 오르마즈드를 공격했다. 오르마즈드는 투쟁기간을 줄이려는 아흐리만과 한시적으로 협정을 맺지 않으면 투쟁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알았다. 오르마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핵심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조로아스터교도들의 가장 경건한 기도인 아후나 바이랴를 암송한다. 아흐리만은 혼비백산하여 심연으로 후퇴한 뒤, 다음 3,000년간 그곳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오르마즈드는 먼저 자애로운 불멸자를 비롯한 영적인 존재를 창조한 뒤, 그에 상응하는 물질인 하늘·물·땅·식물 및 최초의 황소와 최초의 인간(Gayōmart)을 창조한다. 그 다음 오르마즈드가 인간의 선재 영혼(fravashis)을 향해 초기 상태에 영원히 머물든가, 아흐리만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물질 세계로 화육(化肉)하든가 선택하라고 지시했을 때, 그들은 탄생과 전투를 선택한다. 한편 아흐리만은 여섯 마귀와 물질적인 창조를 했다.

2번째 3,000년이 끝날 때 아흐리만은 최초의 여자인 창녀의 유혹을 받아 하늘을 찢고 오르마즈드의 창조물을 타락시켰다. 아흐리만이 마가요마르트를 죽이자 그의 몸에서 인간과 광물이 나왔고, 황소를 죽이자 그 몸에서 동물과 식물이 나왔다. 3번째 기간에 아흐리만은 물질세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르마즈드가 만든 함정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운명에 처했다. 마지막 3,000년이 시작되자 지상에 종교가 도래했다. 그것은 자라투스트라의 탄생이었다. 1,000년 주기가 끝날 때에는 자라투스트라의 계승자요, 사후에 낳은 아들인 새로운 구원자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3번째로 등장한 마지막 구원자인 사오시안스는 마지막 심판을 행하고, 불멸의 음료수를 분배하며, 새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무한한 시간에서 비롯된 유한한 시간은 1만 2,000년이 지난 뒤 무한한 시간과 융합된다.

경전

조로아스터교의 문서들은 2가지로 뚜렷이 구분된다. 본래의 경전인 〈아베스타 Avesta〉는 아베스타어로 불리는 고대 이란어로 기록되었고, 그보다 훨씬 후대의 본문은 중기 페르시아 방언인 팔래비어 또는 페르시아어로 씌어졌다.

전파

자라투스트라가 죽은 뒤 그의 종교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남쪽으로 서서히 전파되었고, 서쪽으로는 메대와 페르시아 영토로 전파되었다. 이렇게 전파되는 동안 조로아스터교는 어쩔 수 없이 여러 남신·여신을 숭배하던 고대종교와 혼합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BC 599~330)에 진행된 듯한 이 혼합 과정은 〈아베스타〉 후반부에 반영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BC 330) 뒤 약 4세기가 지났을 때 이란은 다소 헬레니즘화되었고 토착종교는 무시되었다. 그결과 조로아스터교의 부흥은 아르사시드 제국, 즉 파르티아 제국(BC 247~AD 224) 말엽에 가서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AD 224년 민족주체성을 확립한 새로운 페르시아 왕조인 사산 왕조가 출현하여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 왕조의 지배계급은 상당한 권력을 소유했고, 다른 종교들(그리스도교·마니교·불교)을 박해했다. 〈아베스타〉가 편찬되었고, 일상어인 팔래비어로 번역·주석되었다.

아케메네스 통치기간에 〈가타〉의 단일신론 체계는 점차 마즈다교의 이원론적 교리로 대체되어 마침내 정통 교리가 되었다. 이슬람의 지배 아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라는 설득과 강요를 받았지만, 조로아스터교는 어느 정도 관용의 대상이 되어 약 3세기 동안 그 핵심을 제대로 지킬 수 있었다.

8~10세기에 종교 박해가 일어나고 이슬람교 개종이 강요되자, 남아 있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이란을 떠나 인도로 가서 대부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지역에 정착했다. 19세기에 이르러 파르시라고 불린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부·교육·자선으로 유명해졌다. 19세기 파르시들은 이란에 남아 있던 조로아스터교도들(가바르)과 새로이 접촉하기 시작했다.

현황

이 2개 집단과 인도로 이주한 사람들만이 오늘날까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파르시' 또는 '파르세'로 불리는데, 이들은 이슬람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인도로 이주해 온 조로아스터교도 이주자들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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