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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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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the Byzantine Empire)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비잔티움 제국의 판도

ⓒ Zakuragi/wikipedia | CC BY-SA 3.0

동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란사). 아르메니아의 그리스도교 개종은 조로아스터교의 페르시아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자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활력적인 군사적 팽창을 자극시켰다.

유스티니아누스_1세(Justinianus I )

비잔틴의 황제

ⓒ The Yorck Project/wikipedia | Public Domain

황제는 라지카에서 아라비아 사막까지, 북으로는 크림 반도의 훈족에게 군대를 파견해 승리를 거두었고 도나우 강을 국경으로 삼았다. 그는 다시 서방으로 관심을 돌려 로마와 화해하고 이탈리아를 게르만인 왕보다도 그리스도교 황제의 통치하에 두고자 했다. 또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완성하고 군주권을 중앙집권화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건설을 완성시켰다.

533년에는 북아프리카의 반달족을 공격하여 카르타고의 가톨릭교도를 보호했다.

그후 시칠리아의 고트족을 정벌하고 라벤나에 비잔티움의 총독부를 설치했다. 페르시아와 제국의 경쟁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는 '비단길'의 확보에 관한 문제였다. 중국에서 페르시아를 거치거나 인도양을 거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르는 페르시아의 독점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비잔티움 황제들은 남쪽 에티오피아의 상인들의 교역료를 이용하거나 북쪽 카프카스 흑해 상인들의 교역료를 이용했다.

제국의 활력에 때맞추어 발칸 북방에 새로운 이민족인 남슬라브인·아바르인들이 남하하여 제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했다. 제국의 사방 변경을 수비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포섭·융화해 수비대로 복무시키는 정책을 썼지만 잡다한 이들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서로마와는 달리 비잔티움은 외교적인 방법으로 이들을 제도적·문화적으로 포섭하는 기술을 발휘했다.

이에 그리스 정교회의 신앙과 정통 황제의 관료적 권한은 좋은 방편이었다. 6세기 비잔티움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민중문화가 더욱 발달하고 있었다. 개종을 위한 세례관행 이외에도 각종 전례, 연도 성사(聖事), 신앙고백, 성서 이외의 전설·기적, 종교적인 음악·미술, 수도원 성직자들의 생활이나 생애기록 등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점차 확산되어 유대교나 동방 이교를 밀어내고 있었다.

또 제국의 대주교들은 제국 내의 행정·군사·사법·외교·상업·복지사업의 기능까지 행함으로써 민중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했다. 단성론과 칼케돈의 정통 교리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와중에도 성상(Icon)은 널리 보급되어 민중적 그리스도교 문화의 활력을 나타냈다(도상학). 성상은 예수나 성모·성인들의 추상적이고도 단순화된 이미지를 나타낸 것으로 일반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신플라톤주의 철학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에 의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묵상함으로써 눈으로 볼 수 없는 예수의 본질에 대한 묵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라클리오스의 통치시대에는 다시 시련이 닥쳐왔다. 수도 내에서의 왕조간의 암투와 종교적 분리주의 경향의 강화 속에서 영토가 줄어들고 상업과 도시의 활동이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 시련 속에서도 왕조는 내부적으로 견고한 지방행정상의 개혁을 실시하고 용병제보다는 농민 보병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군사 보유지를 할당해서 소토지소유자 계층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무렵 동방의 적 페르시아와 아바르족 이외에도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피신해 이슬람 공동체를 설립한 뒤 그의 후계자 칼리프들은 632년부터 대규모의 정복·개종사업을 벌여 페르시아를 격퇴하고 키프로스·로도스·크레타·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

페르시아와 비잔티움이 그처럼 쉽게 굴복한 것은 첫째, 오랜 전쟁으로 힘이 고갈되어 있었고, 둘째, 아랍 변경지대의 군소 국가에 대한 원조를 소홀히 했으며, 셋째, 비잔티움의 경우는 종교적·왕조적 내분으로 충성심과 통합성이 매우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승장구한 이슬람 세력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특히 우세한 해상 능력을 이용해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먼저 침공했다. 비잔티움은 이때 도나우 강을 넘어오는 북방의 불가리아인과 서유럽 영역에 대한 통제로 힘이 분산되어 아랍인의 진출을 막아낼 수 없었다.

드디어 698년 이슬람 세력은 아프리카의 총독부를 공략하고 아르메니아와 소아시아를 포위해 제국의 양면을 조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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