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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중국
중국땅에 3족회도(三足灰陶)가 등장한 것은 신석기시대였다.
음식을 끓이거나 찌는 데 쓰는 토기로서 부뚜막의 역할까지 겸하는 대단히 편리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농업이 시작된 것은 은(殷)나라 때부터이며, 은·주(周) 시대에는 조·수수·보리 등의 곡식과 육류를 먹었다. 한(漢)나라 때는 조가 주식이었으며, 그밖에 보리·밀·쌀·수수·콩 등의 곡물과 감자류, 참외·파 등의 채소류, 밤·복숭아·밀감 등의 과일, 그리고 조류·어류·양·돼지 등의 고기를 먹었다. 후한 때는 밀가루가 등장하여 분식이 시작되었고, 조나 쌀 등은 낱알인 채로 시루에 쪄서 먹었다.
당나라 때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생겼으며, 송나라 때는 사탕수수의 재배가 시작되었다. 전매제도에 의해 보급되는 소금·술의 소비량이 급증했으며, 또한 식생활의 향상과 함께 음식점이 등장하고,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요리가 발달해 오늘날의 중국요리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면류(麵類)가 다양해지고 생선이 곁들여지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게 된 것은 명(明)·청(淸) 시대의 일이나, 대개는 고구마·콩 등의 잡곡을 섞어먹었다.
오늘날 세계 제일로 칭송되는 중국요리가 정착한 것은 청대의 일이다.
세계 면적의 1/4을 차지하는 광대함으로 인해 중국요리는 지방마다 기후·풍토·산물(産物)이 달랐으며, 따라서 청조 궁중요리를 포함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쑤저우[蘇州]지방, 광둥[廣東]·푸젠[福建] 지방, 쓰촨[四川]·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 지방 등의 요리와 맛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이들 요리는 크게 차이[菜:요리]와 뎬신[点心:가벼운 식사]으로 나뉘었으며, 메뉴도 궁정요리·접대요리·가정요리에 따라, 그리고 계절·행사·기호 등에 따라 달랐다.
전반적인 공통점은 주객(主客)에 엄격한 구별이 있었고, 식사는 생활과 사교의 중심이 되는 일로서 식사시에 말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조미료로는 각종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남쪽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밥과 죽을, 북쪽에서는 보리·옥수수·조·수수 등의 잡곡식을 일상식으로 했는데, 빈부와 신분의 차이에 따라 음식도 크게 달랐다. 농촌에서는 보통 하루 2식을 먹었고, 남녀가 따로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화민국시대의 농촌에서는 하루 3식이었고 농번기에는 4식이 행해졌다고 하나, 빈농은 아침밥·저녁죽의 2식이었으며 여기에 감자단자나 쌀겨 등을 먹었다.
부식은 채소·두부 등이었고, 생선과 돼지고기 등은 서민들로서는 맛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인도
인도는 지리적 조건, 많은 종교, 수천 가지로 갈라지는 카스트 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각각 다른 식생활 양식을 유지해온 나라인데, 특히 힌두교·자이나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그리스도교 등이 침투해 온 시기에 따라 식생활 양식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식생활 관습에서 종교나 종파를 초월하여 공통성을 가진 것은 손가락은 신이 내려준 젓가락이라는 믿음 아래 모든 음식을 오른손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것과, 음식에 카레 가루로 대표되는 풍부한 향료와 기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 식사가 사교(社交)에 이용되는 일은 동일교파·동일계급 내에서만 가능하며, 가정에서의 식사는 보통 주부가 뒷바라지한다. 문헌에 의하면, 1930년대 인도 봄베이 주 농촌의 지주·자작농의 식사는 하루 2식이었으며, 전날밤의 음식을 조금 남겨 두었다가 이른 아침에 그것을 먹고 들에 나갔다.
오전 11~12시에 먹는 첫번째 식사의 주요 메뉴는 키차디라고 하는 죽 종류와 망고절임이었고, 때로는 버터를 먹기도 했으며 축일이나 잔치 때는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 2번째 식사는 저녁 8시경에 하는데, 바자리 또는 코도라라고 하는 음식에 우유를 섞은 빵, 야채, 채소절임 등을 먹었다. 그러나 소작인의 경우 아침은 아예 없었으며 점심과 저녁만을 먹었는데, 흉년이 든 해에는 횟수가 더 줄어들기도 했다. 또한 식료품을 모두 구입해야 하는 도시노동자의 경우, 탄수화물 위주의 농촌에 비해 지방질 위주의 음식을 먹는 편이었다.
현재 인도의 서북 지방은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고, 동서 벵골과 첸나이 지방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데, 금주(禁酒) 및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힌두교도의 주식품은 곡류·우유·과일, 그리고 물을 타서 묽게 한 엉긴 우유 등이다.
이처럼 엄격한 방침을 가졌음에도 시바파는 그 반대여서 브라만·바이샤층에서도 오늘날에는 부자와 마찬가지로 은밀하게 술과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농민들은 야자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시지만, 일반적인 음료는 과일 주스·홍차·커피·우유·물 등 이다. 또한 힌두교나 자이나교에서도 음식물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교의(敎義)에 따라 고기와 채소의 종류를 선택해서 먹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쇠고기·돼지고기를 모두 먹으며 술도 자유롭게 마신다.
옛날에는 남녀가 식탁에 함께 앉지 않았다고 하나 현재는 함께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인도에서 가장 근대화한 식생활 문화를 가진 종파로 꼽힌다.
종교의 지배에 따른 식생활의 영향은 식기(食器)에도 나타난다. 힌두교도는 놋쇠접시나 바나나잎, 또는 다른 나뭇잎을 접시 모양으로 엮은 그릇을 앞에 놓고 상에 앉아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 토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한번 더럽혀진 것은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신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는 토기나 알루미늄제 용기를 사용하며,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여기에 포크와 나이프도 사용한다. 현재 인도의 신헌법은 종교·인종·카스트·성(性)·출생지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인도의 식생활은 점차 근대화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식생활 중 공통점은 대부분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수렵채집, 밭농사 위주의 농경문화, 논농사 위주의 농경문화 등 역사적 발달에 차이가 있듯이 식생활도 지역·종족·문화에 따른 차이가 있다. 동남아시아 반도부에서는 중국의 식생활 영향이 강하고, 이슬람교도가 많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의 식생활이 도입되었다. 또한 인도식 조리법의 영향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지만, 인도의 우유 이용 관습은 전래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향신료의 발달, 발효식품의 발달도 동남아시아 식생활의 특색 중의 하나이다.
이밖에 콩을 삶아서 세균이나 그밖의 균류로 발효시킨 음식, 쌀밥에 생선이나 육류를 섞어서 유산발효시킨 초밥 등이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이다. 또한 내륙부에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이며, 그 침출액을 조미료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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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동양 식생활의 변천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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