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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건축

다른 표기 언어 Islamic architecture

요약 이슬람교를 믿는 여러 민족의 건축.

정복지의 기술과 건축전통에 크게 의존하면서 이슬람적 특색을 가미한 이슬람 건축의 범위는 아랍 세계는 물론 터키, 서방 이슬람,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포괄한다.

초기 이슬람 건축

초기 이슬람교도들의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청렴한 환경에서는 미적 가치나 예술이 발전할 수 없었다.

622년 마호메트는 메디나로 이주해 사방 45㎡에 걸쳐 볕에 말린 벽돌로 담을 둘러치고 집을 지었다. 칸막이 없이 야자나무가지에 흙을 발라 만든 집이 대부분이었고 집집마다 입구에는 검은 모직 커튼을 드리웠다. 지붕은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마호메트의 집조차 이 정도였으나 마호메트는 '신자의 부를 소비하는 가장 쓸 데 없는 것이 건물'이라고 하면서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베두인족 정복군은 미술이나 건축에 완전히 무지했다.

그들의 정복범위는 부채꼴로 퍼져서 북쪽으로는 1,000년 동안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땅, 동북쪽으로는 1,000년 이상이나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 있던 땅에 각각 침입했다. 시리아를 침략한 이슬람군은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아케이드, 삼목으로 짠 경사지붕, 눈부신 금빛 바탕에 색유리 모자이크가 있고 벽면이 커다란 석조 성당 등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로 진출한 군대는 벽돌이나 볕에 말린 벽돌을 쌓고 야자나무 가지와 잎, 진흙으로 만든 수평지붕을 인 건물들을 보았다.

이리하여 초기 이슬람 건축은 정복지의 건축전통과 결합해 이원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초기에 시리아에서는 마을이 정복당하면 반드시 그리스도교 성당 하나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키블라(메카 쪽 방향)는 남쪽인데 성당은 동향으로 서 있었으므로 서쪽 입구를 막고 북쪽으로 새로 문을 내 과거의 축선에 직각 방향으로 예배를 보았다. 637년 모스크로 개조된 하마에 있는 대사원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신도시를 건설한 이라크에서는 기존건물을 이용할 수 없었다. 635년경 바스라 마을에 건설된 최초의 모스크는 땅 위에 직4각형을 그려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트 최초의 모스크, 곧 641~642년에 지은 암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도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것이었다. 건축으로서 중요한 최초의 모스크는 바스라에 2번째로 건설된 대사원(665)과 쿠파의 2번째 대사원(670)이다.

바위의 돔

예루살렘에 있는 '바위의 돔'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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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은 691년에 완성된 예루살렘의'바위의 돔'으로, 이 건물은 지름 20.4m의 목조 돔을 얹은 중앙집중식 건축이다.

돔은 높은 드럼 위에 얹혔고 피어(주기둥) 4개와 원기둥 12개로 받쳐져 있다. 이 원주 주위에 정8각형으로 벽이 둘러져 있고 벽마다 5개의 창이 나 있다. 바깥쪽 8각형과 안쪽 원형 사이에는 8각형 아케이드가 있고 아치를 지탱하기 위해 모두 8개의 피어와 16개의 원기둥이 늘어서 있다. 이 건물은 모스크가 아니라 마슈하드(성소)이며 세계의 '배꼽'이라고 생각되는 신성한 바위 위에 지었다.

장식은 매우 아름답다. 원래 하반부는 대리석 패널로 덮여 있었고 상반부에는 빛나는 금빛 바탕에 유리 모자이크를 했다. 마찬가지로 내부도 모든 아케이드를 모자이크로 장식했고 벽을 대리석 패널로 만들었다. 바위의 돔을 완성한 지 20년쯤 후 왈리드(705~715 재위)가 예루살렘의 아크사(마스지드 알아크사) 사원과 다마스쿠스 대사원을 지었다(알아크사 모스크). 이 두 건물의 아케이드는 다른 건물에서 가져온 비교적 짧고 작은 기둥을 사용해 높은 천장을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으로 만들었다.

다마스쿠스 사원은 일찍이 다신교 사원의 테메노스(성역)였던 동서 157m, 남북 100m쯤 되는 넓이의 부지에 세워졌다. 남쪽 벽에 나란히 3열의 아케이드를 짓고 그 가운데에 트랜셉트(교차복도)를 설치했으며 나머지 3방향의 벽을 따라 아케이드 한 줄을 둘러쳤다. 테메노스 4면의 입구 중 3개는 모스크로 계속 쓰였지만 입구 1개는 미라브(메카 쪽을 향해 있는 예배벽감)로 쓰였기 때문에 폐쇄되었다. 고대 테메노스의 네 귀퉁이에는 각각 정4각형 탑이 있었는데 이 탑들이 이슬람 최초의 미나레트가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여러 채의 훌륭한 궁전을 세웠다.

대부분 요새와 같은 모습이었으며 대리석판과 모자이크로 풍부한 장식을 한 것이 보통이다. 갈릴리(티베리아스) 해 근처 미느야에 있는 궁전, 메프지르(젤리코 북쪽 약 6㎞)에 있는 궁전 등이 좋은 예다. 카스르암라의 궁전을 비롯한 약간의 예에서는 인물상을 그린 프레스코 장식을 볼 수 있다. 인물표현에 대한 금기가 800년경까지는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750년에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진 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인 알 만수르는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옮겼다.

바그다드는 원형으로 설계된 도시였다. 목조 기둥이 편평한 지붕을 받치고 있는 100㎡의 모스크가 도시 중심부에 건설되었고 200㎡의 칼리프 궁전이 키블라 쪽을 향해 서 있다. 이어 바스라·쿠파·와시트·메르프 등 그밖의 도시에서도 이런 설계가 이루어졌다. 대략 이무렵 38개의 첨두 아치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아케이드 위에 볼트형 천장을 덮은 구조의 건물로서는 세로 처음으로 라물라의 저수지(789)가 건설되었다. 827년 암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알푸스타트 소재)이 2배 크기로 증축되어 세로 109m, 가로 120m에 이르렀다.

지금 남아 있는 장식은 얼마 안 되는 이음들보나 목조 프리즈에 남은 부조만을 들 수 있다. 이 장식은 시리아의 헬레니즘 미술에서 유래한 말기 아칸서스 무늬로 구성되어 있다. 암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과 마찬가지로 알카이라완의 대사원도 초기 이슬람 시대에 창설되었다. 아바스 왕조는 836년 바그다드 북쪽 약 110㎞, 티그리스 강가에 사마라를 건설했다.

강바닥에서 약 17m 높이의 언덕 끝에 대규모 궁전이 세워졌다. 장식으로는 부조 스투코(치장벽토)를 한 패널이 일반적이었지만 왕의 거실만은 예외로 대리석 패널을 썼다. 이 궁전에 이어 사마라 대사원이 건립되었다. 852년의 모습으로 복원하면 이슬람 최대의 모스크가 된다. 외벽은 거대한 직4각형을 이루는데, 길이 240m, 너비 156m로 당시 애용된 3대 2의 비율이다.

면적은 약 3만 8,000㎡에 달했다. 수평지붕은 벽돌로 쌓은 8각형 주기둥 위에 직접 얹었고 아치는 쓰지 않았다. 동북쪽에는 한 바퀴를 돌 때마다 6.1m씩 나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너비 약 2.3m의 경사로를 갖춘 마루위야라고 불리는 유명한 미나레트가 서 있다.

이집트에서는 864년 사마라 출신의 투르크인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모스크 건설을 발원했다.

이 모스크의 외벽이나 창은 이집트풍으로, 827년에 건조된 암르 이븐 알 아스 모스크의 겉모습을 답습했으나 장식은 사마라에 기원을 두었다. 모스크 본체는 광대한 직4각형이다. 사흔(sahn:안마당)은 한 변이 약 92m인 정4각형을 이루고 키블라 쪽에는 5열, 다른 3면에는 모두 2열로 첨두 아치를 갖춘 아케이드가 늘어서 있다.

페르시아 건축

11세기 중엽 이전에 지어진 모스크로는 담간에 있는 타리크하네와 나인에 있는 모스크 2개만 남아 있다. 전자에서는 원형 피어로 받쳐진 아케이드와 볼트 천장이 키블라 벽에 직각으로 서 있으나 후자에서는 평행을 이루며, 사마라의 영향을 받은 치장벽토 장식이 있다. 셀주크왕조 치하의 11세기말 에스파한에서 모스크의 새로운 형식이 등장했다.

미흐라브 앞에 지름 15m나 되는 커다란 돔을 얹어 예배실에 있는 9개의 내민창(bay window)을 덮고 3방향으로 아치를 연 형식이 그것이다. 12, 13세기에는 채도(彩陶) 장식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패널은 무늬가 없는 바탕에 황갈색 유약을 칠한 별 모양의 타일을 써서 구성했고 보기 좋게 장식화된 아랍 문자로 이루어진 띠가 미흐라브를 둘러쳤다. 카샨의 마이단 사원에 있던 유명한 1226년의 미흐라브가 그 좋은 예이다. 13세기에 시작된 몽골의 위협은 페르시아 건축가나 기술자들의 대거 이주를 일으켰다. 이주처는 소아시아에서 카이로까지 이르렀다. 페르시아의 모스크는 일반적으로 기념비적인 문을 갖고 있는데, 이 문에는 깊은 직4각형 앨코브(오목한 곳)가 무수히 많고, 종유장식을 갖춘 반 돔으로 덮여 있는 것이 많다. 바라민에 있는 대사원(1324)이나 에스파한에 있는 샤 아바스 1세의 마스지드 샤가 그러한 예다. 티무르 왕조시대에는 채도 타일과 채도 모자이크가 점차로 많이 쓰이게 되었고 전례가 없을 만큼 넓은 벽면을 덮기에 이르렀다.

미흐라브

ⓒ Radomil talk/wikipedia | CC BY-SA 3.0

사파위 왕조시대(1501~1736)에서는 아바스 1세에 의한 에스파한의 장대한 도시계획이 주목된다. 대규모 광장 주위를 바자르의 가게들이 둘러쌌으며 남쪽 한가운데에 왕의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서쪽에는 알리카푸 궁전이 건설되었다.

총길이 3㎞를 넘는 큰 길도 만들어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유명한 다리를 조성했다. 이 시대에는 또한 많은 금빛 돔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돔에 사용될 동판은 세로 40㎝, 가로 25㎝ 정도였고 동판 1장에 각기 10크라운의 가치가 있는 금박을 입힌 것이 3,000장이나 발주되었다고 한다. 금빛 돔은 나자프와 칼바라·카지미야·콤·사마라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또한 훌륭한 카라반사리(대상 숙소)도 많이 건설되었다. 18세기 초엽까지는 에스파한의 샤 술탄 세인이 건립한 마드라사(1700~10)처럼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졌지만 그뒤 아프간족이 침입함에 따라 페르시아 건축은 급속히 쇠퇴했고 18세기말에는 완전히 침체되고 말았다.

페르시아의 미나레트는 모두 비슷하다. 몸체는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 가늘어지는 높은 원통형인데 꼭대기 근처에 작은 지붕이 있는 발코니가 있다. 확실히 페르시아는 건축사상 위대한 창조적 중심지였다.

볼트 천장·돔·펜덴티브 등의 건축이 돋보였으며 장대한 스케일로 다채로운 장식을 구사했다.

튀르크 건축

11세기말에 성립되어 페르시아의 전통을 이은 튀르크건축은 13, 14세기에 시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코니아의 알라에딘에 있는 모스크(1220)는 시리아의 건축가 무하마드 이븐 바흐란이 지은 것이다. 양질의 석회암이 산출되어 고도의 석조기술과 풍부한 조각장식으로 이루어진 건축을 시바스·디브리기·코니아·카이세리·아마시아·마루딘·니그데 등의 건축에서 볼 수 있다. 시바스의 티프테 미날레(1271)나 괴쿠 마두라사(1271)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시대의 작품으로는 술탄 한(1229)과 아크 한(13세기) 등 2개의 거대한 카라반사리를 들 수 있다. 튀르크 건축의 현저한 특징 중 하나는 종유장식으로 윗부분을 장식한 기념비적인 문을 들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아랫부분 좌우로 반원형 앨코브가 붙는다. 미나레트는 입구 양쪽에 2기(基)를 1쌍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포함해서 페르시아 전통을 따르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석조기술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내부에 돔을 얹고 그 바깥쪽에 원추형 지붕을 얹은 형식의 원형, 8각형 성소 건축도 많은데, 이것은 아르메니아의 성당 돔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한편 에페소스 근처 아야스루크에 있는 대사원(1375)은 분명히 다마스쿠스 대사원을 모방한 것이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점령을 계기로 튀르크의 건축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튀르크 건축가들의 창작욕은 비잔틴 건축의 정점인 하기아 소피아의 우수성을 인식했고, 그결과 새로운 수도에 세운 중요한 모스크는 대부분 하기아 소피아와 같은 테마의 변주였다. 17세기 초엽의 술탄 아흐마드 사원과 쉴레이만 사원 및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에 있는 셀림 사원은 그 좋은 본보기이다. 이 시대의 모스크에는 4기의 미나레트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때로는 6기를 지닌 예(술탄 아흐마드 사원)도 있다. 미나레트에는 일반적으로 2층, 경우에 따라서는 3층의 발코니가 있었다.

이집트 건축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알푸스타트 북쪽으로 약 5㎞ 떨어진 땅에 카이로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969년의 일이다. 이듬해에는 알 아자르 사원이 착공되었다. 20년 뒤 또 하나의 대규모 모스크가 착공되었고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하킴이 1003년 이를 완성했다. 이 모스크의 서북쪽 한가운데에 기념비적인 입구가 있다. 옆쪽에도 2개의 커다란 출입구가 있고 작은 출입구가 여러 곳에 있다. 시가가 팽창했기 때문에 1087~92년에 카이로의 시벽이 개축되었다. 당시의 유적으로서 뛰어난 석조기술을 보여주는 3개의 탁월한 시문과 약 370m에 이르는 파티마 왕조시대의 시벽이 현존한다. 파티마 왕조 건축의 한 특색은 쿠피체로 쓴 비문과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무늬의 장식이다.

알 아자르 사원

이집트 카이로 알 아자르 사원

ⓒ Daniel Mayer/wikipedia | CC BY-SA 4.0

아이유브 왕조시대(1174~1250)에 카이로의 굳건한 성채와 더불어 시벽 일부가 건설되었다. 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으로는 밀려 들어오는 적병의 기세를 꺾기 위한 장치로서 굴절시킨 입구, 즉 성문 안에 네모진 빈터가 마련되었다(성채에 3곳, 시벽에 2곳). 그밖에 이 시대의 특색으로는 마드라사의 도입, 모서리를 다듬은 돌을 자주 쓴 점, 대리석 패널로 미흐라브를 마무리한 점, 두드러지게 정밀해진 스투코 장식의 발전, 창틀에 처음으로 유리를 쓴 점, 그리고 종유장식과 펜던티브의 초보적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아이유브 왕조의 뒤를 이은 것은 바흐리 맘루크 왕조(1257~1382)이다. 이 시대에는 모스크의 설계에 중요한 발전이 나타났다. 미흐라브 앞쪽의 작은 돔을 대신해서 예배실에 달린 9개의 내민창을 덮는 커다란 돔이 등장했다. 카이로에서는 성채 안에 있는 나스르 사원(1335)과 그의 술잔을 받들어 모시는 자인마리다니 사원(1340)에 이 형식이 쓰였다. 채도 모자이크는 나스르 사원, 이슬람알바하이 사원(1345), 왕녀 토가이(1349 죽음)의 묘에 처음 쓰였으며 급속히 소멸했다. 이 시대의 특색으로는 스투코 장식이 마지막 발전상을 보여주고는 이윽고 서서히 쇠퇴한 점이다. 다채롭고 아름다운 대리석 패널이 쓰였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부르지 맘루크 왕조(1382~1517)의 건축은 단절 없이 현대로 이어져 발전해왔다. 정교한 부조 스투코 장식은 이미 과거에 소멸했고 대리석 패널이 주요한 장식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새 재료를 쓰는 조각술이 개발되자 다시 정교한 부조장식이 일반적인 특징이 되었다. 종유장식과 펜던티브는 변화했고 오목한 벽감이 시리아풍으로 3각형 틀 위에 배열되기에 이르렀다. 돔은 모두 석조였는데 윤곽이 경쾌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이 풍부했다. 이 시대 말기에는 채도장식이 다시 쓰였으나 이전처럼 강한 효과를 지닌 채도 모자이크는 쓰지 않았다.

투르크 시대(1517~1798)의 건축은 별로 높이 평가되지 않는데 건축작품의 질이 실제로 떨어졌다기보다는 자금이 부족했던 점이 심각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카이로에서는 성채 안 시디살리야 사원, 브라크의 시난파샤 사원, 말리카사피야 사원 등이 이를 입증한다. 카이로의 주택은 2층 짜리가 많고 그 이상의 주택은 드물었다. 1층에는 남성들의 거실인 살람리크, 2층에는 여성들의 거실인 하렘이 있었다. 외관 입면의 눈에 띄는 특징은 마슈라비야 또는 무샤라비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내민창이다. 19세기 전반에는 무하마드 알리 왕조 치하에서 스탄불(이스탄불) 양식이 채용되었다.

서방 이슬람 건축

스페인이슬람 건축의 효시는 787년경 코르도바에 건립된 석조 모스크이다. 안마당 남쪽에 마련된 예배실은 11개의 복도로 되어 있고 12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아케이드 10열이 키블라 벽에 직각으로 늘어서 있었다.

기둥은 코린트식과 콤포지트식의 다종다양한 대리석 기둥으로서 다른 건물에서 가져온 전용재였다. 예배실의 각 복도는 서로 평행하게 맞배지붕으로 덮여 있다. 아치는 석조 '부수아'(쐐기꼴로 다듬은 아치돌)와 다소 비녀장꼴로 마무리한 붉은 벽돌을 4겹으로 쌓아올린 콤포지트 부수아를 교대로 써서 만들었다. 이처럼 색깔을 교대로 반복시키는 것을 아블라크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코르도바 대사원은 787년경에 지은 원래 건물을 3번 증축한 것이다.

코르도바 대사원 (Great Mosque of Córdoba)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 사원

ⓒ Toni Castillo Quero / wikipedia | CC BY-SA 2.0

스페인 이슬람 건축의 걸작은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이다. 북아프리카에서는 12세기 트렘센의 대사원(1135~36) 장식이 주목할 만하다. 이 장식은 각별한 아름다움과 풍요함을 보여주는데, 특히 돔의 구성과 미흐라브가 멋지다. 한 세기 반이 지난 뒤에는 타자 대사원에 화려한 장식이 나타났다.

알람브라 궁전(Alhambra)

아랍어 말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 bernjan/wikipedia | CC BY 2.0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슬람 건축

인도는 8세기초와 11세기초에 이슬람 정복군에 의해 장악되었으나 오래된 이슬람 건축은 없었다. 12세기말에야 비로소 쿠와트울이슬람 사원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 착공되었다(1193). 이 모스크는 세로 32m, 가로 43.3m의 안마당을 핵으로 삼아 둘레를 열주 회랑으로 에워싼 형식이다. 힌두교 사원에서 따온 짧은 기둥을 필요한 높이까지 이어 썼고 전체의 규모는 바깥쪽 기준으로 약 세로 45.5m, 가로65.3m넓이에 이른다. 모스크 전체가 준공된 것은 1196년이었다.

2년 뒤 예배실 앞쪽에 커스프가 5개 있는 아치의 아름다운 정면벽이 건설되었다. 힌두풍의 장식띠나 나스히체로 쓴 비문띠로 구성되었으나, 힌두의 석공들은 제대로 된 아치 구조를 몰랐기 때문에 돌을 수평층으로 쌓았다. 진정한 아치식 구조는 바르반의 성소(1280경)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 쿠와트울이슬람 사원은 3면의 한가운데에 각기 입구를 만들었고 인도 최초의 미나레트를 갖추었다.

바로 유명한 쿠트브 미나레트인데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에 있는 미나레트나 20세기에 잠무에서 발견된 미나레트(1163~74)와 관계가 깊다. 대략 3면에 출입구가 있고 안마당에 복도를 둘러쳤으며 예배실 한가운데에 큰 아치를 세운 형식의 모스크가 인도의 표준형식(델리·아그라 등지의 모스크)이었으나 때로는 가운데 큰 아치의 양쪽에 묵직한 느낌을 주는 기초가 만들어졌고 거기에 1쌍의 미나레트가 있는 수도 있었다(아흐마다바드·두르카·참파네르 등). 일반적으로 인도의 미나레트는 원형 또는 8각형의 높은 탑인데, 탑 중간에 여러 층의 발코니가 있고 꼭대기에 돔을 얹은 파빌리언(작은 정자)이 있는 예가 많다.

인도대륙의 이슬람 건축에서 또하나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영묘이다. 정4각형 방에 돔을 얹은 것, 돔을 얹은 주실(主室) 주위에 4개의 작은 돔을 붙인 것(한 하난 묘, 후마윤 묘, 타지 마할 등), 집중식 8각형으로 설계된 것(셰르 샤 수르 묘 등)으로 구분된다. 인도의 이슬람 건축은 공들여 쌓은 조적조 구조와 정교한 부조장식이 특징이지만 종종 황색 혹은 적색의 사암을 썼기 때문에 매력적인 색조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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