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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중엽 이전에 지어진 모스크로는 담간에 있는 타리크하네와 나인에 있는 모스크 2개만 남아 있다. 전자에서는 원형 피어로 받쳐진 아케이드와 볼트 천장이 키블라 벽에 직각으로 서 있으나 후자에서는 평행을 이루며, 사마라의 영향을 받은 치장벽토 장식이 있다. 셀주크왕조 치하의 11세기말 에스파한에서 모스크의 새로운 형식이 등장했다.
미흐라브 앞에 지름 15m나 되는 커다란 돔을 얹어 예배실에 있는 9개의 내민창(bay window)을 덮고 3방향으로 아치를 연 형식이 그것이다. 12, 13세기에는 채도(彩陶) 장식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패널은 무늬가 없는 바탕에 황갈색 유약을 칠한 별 모양의 타일을 써서 구성했고 보기 좋게 장식화된 아랍 문자로 이루어진 띠가 미흐라브를 둘러쳤다. 카샨의 마이단 사원에 있던 유명한 1226년의 미흐라브가 그 좋은 예이다. 13세기에 시작된 몽골의 위협은 페르시아 건축가나 기술자들의 대거 이주를 일으켰다. 이주처는 소아시아에서 카이로까지 이르렀다. 페르시아의 모스크는 일반적으로 기념비적인 문을 갖고 있는데, 이 문에는 깊은 직4각형 앨코브(오목한 곳)가 무수히 많고, 종유장식을 갖춘 반 돔으로 덮여 있는 것이 많다. 바라민에 있는 대사원(1324)이나 에스파한에 있는 샤 아바스 1세의 마스지드 샤가 그러한 예다. 티무르 왕조시대에는 채도 타일과 채도 모자이크가 점차로 많이 쓰이게 되었고 전례가 없을 만큼 넓은 벽면을 덮기에 이르렀다.
사파위 왕조시대(1501~1736)에서는 아바스 1세에 의한 에스파한의 장대한 도시계획이 주목된다. 대규모 광장 주위를 바자르의 가게들이 둘러쌌으며 남쪽 한가운데에 왕의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서쪽에는 알리카푸 궁전이 건설되었다.
총길이 3㎞를 넘는 큰 길도 만들어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유명한 다리를 조성했다. 이 시대에는 또한 많은 금빛 돔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돔에 사용될 동판은 세로 40㎝, 가로 25㎝ 정도였고 동판 1장에 각기 10크라운의 가치가 있는 금박을 입힌 것이 3,000장이나 발주되었다고 한다. 금빛 돔은 나자프와 칼바라·카지미야·콤·사마라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또한 훌륭한 카라반사리(대상 숙소)도 많이 건설되었다. 18세기 초엽까지는 에스파한의 샤 술탄 세인이 건립한 마드라사(1700~10)처럼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졌지만 그뒤 아프간족이 침입함에 따라 페르시아 건축은 급속히 쇠퇴했고 18세기말에는 완전히 침체되고 말았다.
페르시아의 미나레트는 모두 비슷하다. 몸체는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 가늘어지는 높은 원통형인데 꼭대기 근처에 작은 지붕이 있는 발코니가 있다. 확실히 페르시아는 건축사상 위대한 창조적 중심지였다.
볼트 천장·돔·펜덴티브 등의 건축이 돋보였으며 장대한 스케일로 다채로운 장식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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