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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아

다른 표기 언어 K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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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터키 중부 코니아 주, 아나톨리아 고원 남서쪽
인구 2,403,053명 (2018 추계)
면적 41,001㎢
대륙 중동
국가 터키

요약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남서쪽 가장자리 해발 1,027m 지점에 좁고 기름진 평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 보즈키르 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중앙 타우루스 산맥의 내륙 쪽 끝부분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손꼽힌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 쇠퇴하던 코니아는 이스탄불-바그다드 철도가 완공되면서 1896년부터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차르삼바 평원의 관개시설 개선으로 농업생산이 증가하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1923년 무렵에는 앙카라를 누르고 중앙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부상했다.
오늘날 사탕을 원료로 한 제당공장과 제분소, 카펫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관광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는 코니아는 앙카라와는 항공편으로, 터키의 주요도시들과는 도로로 이어진다.

코니아(K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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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남서쪽 가장자리 해발 1,027m 지점에 좁고 기름진 평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 보즈키르 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중앙 타우루스 산맥의 내륙 쪽 끝부분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도시의 남서부지역은 새로 설계되었고, 넓은 가로수길이 서부 근교지역을 통해 철도역까지 뻗어 있다. 옛 도시는 아크로폴리스 동쪽에 펼쳐져 있다.

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손꼽힌다. 이 도시 중앙에 있는 알라에딘테페시 산에서 발굴된 유적들로 미루어 주거지가 형성된 시기는 적어도 BC 3000년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홍수에 관한 프리지아인들의 전설에서는 인류를 파멸시킨 홍수가 발생된 후에 생긴 최초의 도시라고 하며, 어떤 전설에서는 이 도시의 고대지명인 이코니움이 페르세우스가 그리스 도시를 세우기 전에 현지 주민들을 정복하는 데 사용한 고르곤의 머리인 에이콘('像'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히타이트 제국이 붕괴한 후 프리지아인들은 그 자리에 대규모 주거지를 세웠다. 이들의 새 거주지는 BC 3세기부터 점차 그리스화하기 시작하여 특히 언어·교육·문화에서 그리스와 비슷한 자치시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계속해서 고유의 프리지아 문화를 고수했으며, 47(또는 48)년에 사도 바울로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저항에 가담한 것도 이들 프리지아인들의 후예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로는 그후 50, 53년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BC 25년경 로마의 갈라티아 주에 속해 있던 이코니움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13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372년경에는 리카오니아 주의 주도가 되었다.

코니아는 변방 근처에 있어 7~9세기에 아랍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1072(또는 1081)년 세력을 확장해가던 셀주크투르크인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이 도시를 빼앗아 셀주크의 룸 술탄국 수도로 삼았다.

이곳은 코니아로 이름을 바꾼 후 셀주크 왕조의 통치 아래 최고의 번영을 누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로 평가받았다. 이 시기의 개화된 통치자들은 도시에 많은 건물을 세우는 한편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하여 훌륭한 예술품을 많이 남겼다. 셀주크 왕조 당시의 예술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몇 가지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셀주크 박물관이 된 옛 신학대학 인제미나레(1258 세움), 도자기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화려한 카라타이메드레세(1251), 셀주크 왕조와 오스만 왕조 때의 고대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시르찰리 메드레세(1242)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술탄들이 거처하던 왕궁은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다. 부근에는 알라 앗 딘 카이 쿠바드 1세 술탄의 무덤과 모스크가 있다. 알라 앗 딘 카이 쿠바드 1세의 초청으로 코니아에 정착한 이슬람교 신비주의자 잘랄 앗 딘 알 루미는 뒤에 서양에서 '춤추는 탁발승'으로 잘 알려진 마울라위야(메블레비예) 신비주의 교단을 세웠다.

루미의 무덤과 많은 건물들을 포함한 루미 수도원이 도심 남쪽에 있다. 1917년부터 이 건물은 이슬람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셀주크투르크가 쇠퇴한 후 코니아는 몽골의 일 한국(汗國)과 투르크멘의 카라만 공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다가 1467년경 마침내 오스만 제국에 합병되었다.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 쇠퇴하던 코니아는 이곳을 통과하는 이스탄불-바그다드 철도가 완공된 데 힘입어 1896년부터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차르삼바 평원의 관개시설 개선으로 농업생산이 증가하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1923년 무렵에는 앙카라를 누르고 중앙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부상했다.

오늘날 사탕을 원료로 한 제당공장과 제분소, 카펫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보크사이트 광상은 1970년대초에 세워진 알루미늄 제조 센터에 의해 개발되었다. 교육시설로는 사범대학과 1962년에 설립된 이슬람교 학원인 이윅세크 이슬람 엔스티튀쉬, 1975년에 세워진 셀추크대학교 등이 있다.

과수원·공원·기념물 등이 있는 오늘날의 코니아는 관광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마울라위야 교단이 성립된 곳이라는 이유로 순례지가 되었으나, 시내에는 오래된 암필로치우스 교회와 시 부근의 성지 몇 군데 등 그리스도교 기념물도 있다.

코니아는 앙카라와는 항공편으로, 터키의 주요도시들과는 도로로 이어진다. 터키 최대의 주인 코니아 주는 중앙 타우루스 산맥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한다. 타우루스 산맥 아래 많은 오아시스와 함께 펼쳐진 평원지대는 이 지역에서 가장 번창한 지역으로 관개사업이 진척되면서 경작지가 더욱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북쪽에 펼쳐진 아나톨리아의 광활한 스텝 지대는 봄에 목초지로 쓰이며, 건지농업용지로도 일부 이용된다. 주요수출품은 목화·곡물·양모·광물·가축·가축부산물 등이며, 불가르다 주변에서 납이 채광된다.

지도
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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