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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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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재용 |
가을과 겨울을 관통할 패션의 키워드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블랙이다. 색감이 모두 빠져버린 모노톤의 블랙과 그레이가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부터 거리를 질주하곤 한다. 모노톤이 가장 잘 어울린 우리 영화가 있다. 바로 이재용 감독의 1998년 작품 〈정사〉다. 열 살이나 연하인 동생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파격적인 내용과 ‘情事’라는 직설적인 제목을 달고 “성인 취향의 격조 있는 애정영화”라는 문구로 소개되었다.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디가드 백재희로 뭇 여성을 사로잡았던 이정재가 우수 어린 남자로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단아한 모습으로 스크린에 컴백한 이미숙의 조화가 차분한 모노톤의 배경 아래 아름답게 그려졌다. 초등학교 과학실과 오락실에서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은 필자가 꼽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타일에 대해 얘기하자면, 선(禪)적인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디자이너 정구호가 의상은 물론 전체적인 아트 디렉터로 참여하여 패션에서 공간에 이르기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리된 느낌을 주고 있다. 영화를 위해 대다수가 특별히 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이정재와 이미숙의 의상은 색과 장식을 최대한 절제하여 화이트, 그레이, 다크 네이비와 블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삶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등장한 아파트도 벽지와 소파, 장식장에서 바닥재에 이르기까지 색감과 질감 또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모델 출신답게 그야말로 멋진 옷걸이의 소유자인 이정재의 화이트 셔츠와 블랙에 가까운 슈트, 고전미를 풍기는 생머리에 군살 하나 없는 균형 잡힌 몸매를 과시한 이미숙의 H라인 코트와 투피스는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최근 몇 년간 득세하고 있는 로맨티시즘과 빈티지 스타일을 넘어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보여줬듯 다시 미니멀리즘이 인기를 끌 것 같다.
미니멀리즘 패션의 교과서가 되어버린 〈정사〉는 두 주인공의 선문답 같은 대사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잿빛 하늘 같은 영화다.
“바보처럼, 왜 날 좋아하죠? 난 나이도 많고 아이도 있는데······.”
“당신은 왜 날 좋아하죠? 난 나이도 어리고 아이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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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숨 쉬는 일과 같다. 아담과 하와 이후, 혹은 유인원에서 털을 퇴화시키고 인간으로 진화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패션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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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정사 – 패션에 쉼표를 찍다, 김정희, RHK,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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