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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남자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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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TV와 거리의 남성들이 온통 꽃무늬로 도배를 한 것 같은 풍경을 연출한 것을 기억하는가. 2004년 가장 눈에 띄는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은 바로 꽃무늬 셔츠였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화려한 꽃무늬가 근육질의 남성들에게로 옮아간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패션, 몸치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남성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지배적인 문화규범이 되었다. 여성이 입은 옷은 대개 부드럽고 색이 화려하며 장식적인 것이 많은 반면, 남성의 의복은 튼튼하고 활동적이며 칙칙한 색의 옷이 대부분이었다. 출산용품의 경우도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이라는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가.

그러나 동물의 세계를 한번 살펴보자. 동물들은 수컷이 훨씬 화려하고 다채로운 경우가 많다. 밋밋한 암사자에 비해 화려하게 흩날리는 수사자의 갈기, 꿩이나 공작새의 오색찬란한 꼬리 깃털, 그리고 눈에 띄게 붉은 수탉의 벼슬을 떠올려보라. 인간도 원시부족시대에는 남자가 훨씬 더 장식적인 치장을 했었다. 서양에서도 18세기 이전에는 가장 사치스러운 차림을 한 부류는 기사(騎士), 성직자, 군주였는데 그들의 옷에 달린 리본이나 레이스를 여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차차 ‘칙칙한 남성복과 화려한 여성복’의 이분법에 익숙해졌는데, 그러면서 남자들은 자신의 부를 부인의 화려한 옷차림을 통해 과시하게 되었다.

윌리엄 라킨, 〈Richard Sackville〉, 1613년

ⓒ RHK, 알에이치코리아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왜 남자들이라고 멋지고 화려한 것이 싫기만 했겠는가. 남성들이 몸치장과 패션에 관심을 갖고, 옷차림이 다채로운 경향을 보이는 현상을 일컬어 ‘공작새 혁명(Peacock Revolution)’이라고 부른 역사적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는 1950년대에 비해 경제, 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었다. 남성들의 옷차림도 전면적으로 달라지면서 긴 머리와 화려한 프린트 셔츠, 인도 수상의 이름을 딴 네루 재킷(Nehru jacket) 등이 크게 유행하였다. 잡지 《에스콰이어(Esquire)》의 칼럼니스트였던 조지 프레지어(George Frazier)는 이런 현상을 ‘공작새 혁명’이라고 지칭하면서 1960년대 남성들의 멋내기 혁명을 정의하였다. 시대를 거슬러 19세기 말 유럽의 남성들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옷차림을 선호하면서 몸치장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현상을 이렇게 지칭하기도 한다.

1960년대 비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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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한 번의 ‘공작새 혁명’이 여기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패셔너블한 남성들이 증가하면서 개성 있고 세련된 캐주얼웨어를 선호하며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추구하고,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지나치게 트렌디하지 않은 스타일을 찾는 남성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복에서나 보인 핫 핑크나 오렌지색 등이 남성복에 사용되고 실크나 속이 비치는 시폰 소재, 플라워 패턴 등이 애용되기 시작했다. 정장에서도 소매는 슬림해지고 허리선은 들어가며, 엉덩이는 꼭 맞게 재단해 몸의 Y라인을 섹시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이 증가하는 추세다.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에서 테크노섹슈얼(technosexual), 위버섹슈얼(ubersexual)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남성들이 TV와 광고에 넘쳐난다.

BEAN POLE, 2005년 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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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을 지칭하던 ‘○○섹슈얼’이라는 단어들이 남자들의 패션감각을 자극하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패셔너블한 남성을 선호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 그렇지 않은 남성을 지칭하는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과거 동성애자들의 여성적인 패션취향은 보편적인 남자들에게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베컴과 안정환, 비와 조인성으로 연결되는 메트로섹슈얼의 등장은 성적인 정체성을 의심받지 않으면서 눈썹을 손질하고 마스크 팩으로 피부 관리를 하며, 꽃무늬 셔츠를 입고 핑크색 타이를 맬 수 있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부각되기 시작한 위버섹슈얼은 메트로섹슈얼에 남아있는 여성성을 좀 더 들어내고 심플한 스타일로 복귀하여, 보편적인 남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컨셉인 듯하다.

ROCATIS GREEN, 2006년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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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도시(Metro)에 살면서 여성적(Sexual) 감성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을 일컫는 트렌드 언어. 1994년 영국 문화비평가 마크 심프슨이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남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언급하며 기고한 글에서 처음 사용함.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
외모나 라이프스타일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으며 미적 센스가 둔한 남자들을 지칭함. 메트로섹슈얼의 반대.

테크노섹슈얼(technosexual)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애정을 가진 남자. 메트로섹슈얼 성향에 최신 IT기기나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투자하는 성향이 더해진 사람들.

위버섹슈얼(Ubersexual)
‘~의 위에, 초월한(super)’ 등의 뜻을 가진 독일어 ‘위버(ueber)’를 넣어 만든 합성어로 ‘메트로’나 ‘레트로’ 섹슈얼 등을 뛰어넘는 최고의 남성이라는 뜻. 강인하고 자신감이 흐르지만 스타일리시한, 긍정적인 남성성과 신사적인 매너가 결합된 남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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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집필자 소개

1971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에서 패션마케팅 및 의상사회심리를 전공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96년부터 삼성패션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자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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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쉼표를 찍다
패션에 쉼표를 찍다 | 저자김정희 | cp명RHK, 알에이치코리아 도서 소개

패션은 숨 쉬는 일과 같다. 아담과 하와 이후, 혹은 유인원에서 털을 퇴화시키고 인간으로 진화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패션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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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패션 읽기, 패션으로 영화 읽기 5,500벌의 드레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우주로 나간 오리엔탈리즘 〈스타워즈〉 한 벌의 옷이 백 마디 대사를 커버하다 〈스캔들〉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의 조우 〈하오의 연정〉 유럽을 강타한 모피 열풍 〈닥터 지바고〉 포스트모던 섹시 아이콘 〈오스틴 파워〉 여장남자의 원조 〈뜨거운 것이 좋아〉 장만옥의 1인 패션쇼 〈화양연화〉 134캐럿짜리 소품 〈물랑루즈〉 남장여자의 매력 〈모로코〉 캐릭터를 앞질러 가는 패션 〈올드보이〉 정지된 욕망의 영원함, 리타 헤이워드의 〈길다〉 초록빛 신비주의 〈위대한 유산〉 숨 막히는 정장의 세계 〈가타카〉 할리우드가 사랑한 의상 〈시카고〉 패션을 주도한 신데렐라 〈프리티 우먼〉 영화야? 패션쇼야? 〈오션스 일레븐〉 베레모를 유행시킨 바로 그 장면 〈보니 앤 클라이드〉 실화가 아닌 패션을 복원한 영화 〈에비에이터〉 트렌치코트와 보머재킷의 어울림 〈월드 오브 투모로우〉 옷 한 벌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막시무스! 막시무스! 〈글래디에이터〉 패션으로 패션을 웃긴 〈쥬랜더〉 섹시한 잔 다르크 〈레지던트 이블 2〉 흑백 화면 속의 광채, 잉그리드 버그만의 〈가스등〉 꽃무늬 위에 빚어진 호러 〈장화, 홍련〉 영원한 신데렐라의 꿈 〈마이 페어 레이디〉 의상비만 84억! 〈타이타닉〉 유럽의 따사로운 햇살 〈전망 좋은 방〉 색을 밝히는 남자 장예모의 〈연인〉 일본도를 든 여자 이소룡, 우마 서먼의 매력 〈킬빌〉 모래바람 속의 금빛 패션 〈미이라〉 1980년대 뉴욕 패션의 교과서 〈문스트럭〉 뽕재킷과 멜빵바지의 추억 〈아메리칸 사이코〉 우아한 스릴러, 히치콕의 〈새〉 스타일리스트들이 펼치는 비장미 〈달콤한 인생〉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패션 영화 〈패션쇼〉 이 남자의 맵시 〈마이너리티 리포트〉 생에 주어진 단 한 벌의 옷이 있다면? 〈드레스〉 패션은 자유의 필수조건 〈아일랜드〉 당당하고 도발적인 아줌마 패션 〈에린 브로코비치〉 블랙&화이트의 세련미 〈키핑 더 페이스〉 촌스러움마저 피해가는 영애 씨 〈친절한 금자씨〉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스타일 〈리플리〉 모노톤의 불륜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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