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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장식 본능이야말로 패션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화려한 스타일에서 극도로 절제된 심플한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패션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치와 자원남용을 막기 위해, 때로는 엄격한 신분제도나 사회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법령으로 옷차림을 규제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상하가 있으며, 지위에는 존비가 있고, 이름도 같지 않으며 의복 또한 다르다. 풍속이 점점 천박해져 백성들은 다투어 사치를 좇고, 다만 이방의 것을 진기하다 하여 숭상하고 도리어 토산품을 속되고 천하다 하여 싫어하니, 분수를 지나쳐 예의를 거스르고 풍속이 쇠락해가고 있다. 감히 구장에 따라 써 밝힐 것을 명하노니, 만약 고의로 이를 범하면 상형이 있을 것이다.” 이는 신라 흥덕왕 때 제정했다고 하는 ‘복식금제령(服飾禁制令)’의 앞부분이다. 신분에 따라 옷감의 종류나 색깔, 귀금속 장신구 등을 제한했던 제도인데, 사치 금지라기보다는 신분 표시와 계층 구별을 위한 목적이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음양오행설이나 신분제에 따라 황색 · 백색 · 홍색 · 자색 · 회색 · 옥색 · 녹색 등을 착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예를 들어 자색은 임금의 색인 동시에 염료가 왜(倭)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여 금하였다. 회색이나 옥색도 길조가 못 되고 망국의 징험이 있다 하여 금하였으며, 녹색은 궁에서 즐겨 입고 아래에서 따르니 상하가 무별하다 하여 금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1970년대의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예로 들 수 있다. 미풍양속을 명분으로 1973년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는데, 무릎 위 20센티미터가 법이 정한 한계였다. 경찰들이 기다란 자를 들고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을 쫓아다녔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서양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시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옷에 대한 규제가 행해졌다. 당시 영국의 의복은 옷감의 양, 포켓과 단추의 수까지 제한된 정책으로 인해 ‘실용적 의상(utility cloth)’이라 불렸고, ‘CC41(civilian clothing 1941)’ 또는‘clothing control 1941’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이 규정에 의해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해진 배급권 안에서 옷을 충당했으며, 옷을 생산하는 업체에서도 각 아이템별로 정해진 양만큼의 옷감을 사용해야 했다. 이에 따라 치마 길이는 짧아지고, 재킷이나 칼라의 폭도 좁아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물 사용량은 15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었으나 패션의 발전에 있어서는 일종의 암흑기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도 ‘좀 더 적게, 좀 더 단순하게, 좀 더 낫게’라는 슬로건을 걸고 L-85 규제를 도입하여 스타일을 제한했다.
현재까지도 다양하게 응용되어 유행하는 바로 이 밀리터리(military) 스타일이,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장식적 본능을 제한하여 생겨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패션의 근원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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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숨 쉬는 일과 같다. 아담과 하와 이후, 혹은 유인원에서 털을 퇴화시키고 인간으로 진화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패션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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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패션과 자유, 권력과 저항의 함수관계 – 패션에 쉼표를 찍다, 김정희, RHK,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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