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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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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연주자 | 팻 메스니 |
헝클어진 파마머리, 줄무늬 꿀벌 티셔츠, 흰 운동화와 청바지, 그리고 바짝 올려 맨 기타. 30년 넘게 변하지 않는 그의 음악 스타일처럼 늘 그대로인 뮤지션 팻 메스니(Pat Metheny)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40여 장의 레코딩, 수백 회의 콘서트, 20개에 달하는 그래미상 트로피로 부와 명성을 한몸에 얻은 음악가라기보다는 홍대 앞 클럽 입구에서 마주칠 법한 악사 이미지의 팻 메스니.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던 〈Are You Going with Me〉를 듣고 홀딱 반해 버린 지 어언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구도자처럼 음악을 향해 정진하는 그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진정한 뮤지션이다.
20여 년 전에는 혼자만의 특권인 양 팻 메스니 그룹의 음악을 듣고 주변에 우쭐대며 추천했지만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두터운 마니아 층을 확보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의 내한공연 티켓은 여느 10대 아이돌 스타들의 공연보다도 빨리 매진된다. 그런 높은 인기 때문일까? 우리 '업자'들 사이에서는 팻 메스니를 친근하게도 그냥 '박만순'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1975년, 스물두 살 먹은 박만순이 첫 앨범 《Bright Size Life》를 녹음할 당시 이미 그의 곁에는 게리 버튼(Gary Burton), 폴 블레이(Paul Bley), 그리고 '괴물'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이 있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라일 메이즈(Lyle Mays)를 만나 팻 메스니 그룹(Pat Metheny group, 이하 PMG)의 첫 앨범을 낼 무렵만 해도 그와 그의 밴드는 그저 수많은 '촉망 받는 신예들' 중 하나였다.
대박은 1981년에 터진다. 깜깜한 밤거리 나들목에 '좌회전 하시오' 신호가 그려진 앨범 《Offramp》가 재즈 차트를 석권하면서 드디어 모든 음악가들이 꿈꾸는 상업성과 음악성, 두 마리의 토끼를 보기 좋게 잡아낸 것이다. 이후 팻과 PMG의 행보는 순풍에 돛단 배였다.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을 절묘하게 병행하면서 팻은 재즈와 록, 포크와 월드뮤직의 중간 어딘가에 자기만의 집을 짓고 예쁘게 인테리어 공사를 한 후 손님 끌어 모으기에 성공한다. 거의 40년에 육박하는 그의 음악 인생을 거치며 이제는 추종자, 표절자, 광신자, 안티에 둘러싸인 거대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Offramp》 앨범의 〈James〉는 누구를 위한 곡인가?
《Offramp》는 메스니와 PMG를 대중과 평단에 널리 알린 히트작이었다. 수록곡 중에 〈James〉라는 상큼하고 예쁜 곡이 있는데, 이 제임스는 다름 아닌 포크 가수 제임스 테일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메스니가 어릴 적부터 제임스 테일러를 좋아해서 그를 위해 만든 곡이다. 한참 후에 재즈 피아니스트 밥 제임스가 이 곡을 자신의 트리오와 연주해 앨범에 수록했기에 그 제임스가 밥 제임스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
팻 메스니의 팬들도 종종 헷갈리는 것이 있으니 바로 '팻 메스니'와 '팻 메스니 그룹'의 차이점이다. "팻 메스니 새 판 나왔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솔로야 그룹이야?"라는 질문을 한다. 비슷해도 다르기 때문이다. 앨범 재킷에 쓰여 있기도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앨범을 구별하는 방법은 수록곡들을 누가 작곡했는지 보는 것이다. 라일 메이즈의 이름이 있으면 팻 메스니 그룹의 앨범, 없으면 팻의 솔로 앨범이다.
팻 메스니의 '따로 또 같이' 앨범들
좀 더 자세하게 분류한다면 솔로, 듀엣, 트리오, 그룹으로 나눌 수 있겠다. 짐 홀(Jim Hall), 찰리 헤이든,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오넷 콜맨 등과 함께 만든 듀엣 앨범들과 자코에서 헤이든, 크리스천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로 이어지는 베이스 주자들, 밥 모지스(Bob Moses),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 등의 피아니스트들과 작업한 트리오 앨범들에서는 좀 더 어쿠스틱하고 재즈적이며 학구적인 메스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메스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몇몇 유럽 여성 가수들의 '반주자' 겸 프로듀서로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 가수들[실리에 네르가르드(Silje Nerggard), 안나 마리아 요펙(Anna Maria Jopek) 등]은 팻의 명성에 힘입어 곧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했다.
기다란 얼굴과 기다란 손가락으로 피아노와 신시사이저를 성큼성큼 연주하는 라일 메이즈, 그를 만나면 늘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라일 형님, 왜 나이도 한 살 많으면서 밴드 이름을 팻 메스니 그룹이라고 지었나요? '팻-라일 그룹'이나 '메스니-메이즈 그룹'이라고 했으면 공평했을 텐데……."
바보 같은 질문이고, 30년간 팻의 그림자에 가려 묵묵하게, 그러나 멋지게 건반을 연주해 온 그의 모습을 보면 이름쯤이야 무엇이 됐든 상관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메이즈도 여러 장의 솔로 앨범과 공동작업으로 그만의 색깔을 꾸준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팻 메스니 혹은 PMG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나만의 영원한 노스탤지어 《Offramp》를 비롯해 가슴 설레는 라이브 앨범 《Travels》(1982), 상큼하고 기분 좋은 《Letter from Home》(1989), 1990년대 PMG 식 업그레이드 《We Live Here》1994 등 내가 좋아하는 앨범들은 모두가 PMG다. 그러나 거기에 팻의 솔로 앨범 하나가 더해지는데, 바로 1992년도 앨범 《Secret Story》다. 앨범 재킷 한가운데에 풀쩍 뛰어오르는 강아지가 인상적인 이 CD에 아무래도 손이 갈 것 같은 이유는, 대학 시절 이 CD를 플레이어에 꽂고 등하굣길 222번 또는 113번 좌석버스 뒷자리 어딘가에서 늘 꾸벅꾸벅 졸던 한가로운 추억이 더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Secret Story》는 개인적으로 팻의 모든 앨범 중 가장 '팻다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하고, 환상적이면서도 명료한 곡들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다. 제목이 'Secret'이나 'Story'였어도 좋았을 것을 'Secret Story'가 아닌가!
3중주나 4중주 등의 '특공대 식' 시도를 하던 이전의 솔로 앨범과 다르게 이 앨범에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짝꿍인 라일 메이즈는 물론, 트럼펫 주자이자 팻의 친형 마이크 메스니(Mike Metheny), 오랜 음악 동료들인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스티브 로드비(Steve Rodby), 윌 리(Will Lee), 하모니카의 거성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 퍼커션의 귀재 나나 바스콘셀로스(Nana Vasconcelos) 등 수많은 대가들이 여기저기에서 팻 메스니를 도와 각각의 곡을 빛내 주고 있다.
독특한 톤과 효과 처리로 구별되는 팻의 기타는 어느 곡, 어느 부분을 들어도 단번에 그임을 알 수 있어 악기를 사람의 목소리처럼 특화시켰다는 점에서 라틴록의 대부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나 고독한 기타 협객 제프 벡(Jeff Beck) 등에 비견될 정도다.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플레이를 지향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톤을 갖고 싶어 하는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듣는 사람을 지구 깊숙한 원시림으로 인도하는 듯한 첫 곡 〈Above The Treetops〉를 듣자마자 월드뮤직 같은 분위기, 록 느낌의 구성, 재즈적인 연주에 독특한 팻 메스니의 기타가 더해지며 앨범은 마치 '이제부터 네 감성을 마구 매만질 테니 안전벨트를 꼭 붙들어 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이 곡은 캄보디아 민요를 편곡한 것이다. 작곡·연주·녹음·믹싱이 재미있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한 〈Finding and Believing〉, 〈Are You Going with Me〉의 속편격인 〈The Longest Summer〉가 가슴을 후려치고 나면 〈Always and Forever〉에서 팻의 또 다른 주특기인 나일론 기타 솔로가 잔잔한 감동을 몰고 온다. 이 앨범의 백미는 후반부에 포진한 곡들이다. 아름다운 아코디언 인트로의 발라드 〈Antonia〉에 이어 비장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명곡 〈The Truth Will Always Be〉, 슬픈 영화에 흐르는 애잔한 사운드트랙 같은 〈Tell Her You Saw Me〉와 〈Not to be Forgotten〉 등 네 곡은 언제나 고요한 사색의 바다로 인도하는 트랙들이다.
팻 메스니의 음악이 대체적으로 그러하지만 특히나 《Secret Story》 앨범은 그 감상적인 감도가 정도를 지나쳐 사람을 다소 '다운'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심자들에게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1. Above The Treetops
2. Facing West
3. Cathedral in A Suitcase
4. Finding and Believing
5. The Longest Summer
6. Sunlight
7. Rain River
8. Always and Forever (Dedicated to Metheny's parents)
9. See The World
10. As A Flower Blossoms (I Am Running to You)
11. Antonia
12. The Truth Will Always Be
13. Tell Her You Saw Me
14. Not to be Forgotten [Our Final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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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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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팻 메스니 《Secret Story》 –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권오섭,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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