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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인도에 떨
어져도 음악

데이비드 샌본 《Straight to The Heart》

색소폰은 섹시하다!

요약 테이블
창작/발표시기 1984년
가수/연주자 데이비드 샌본

색소폰처럼 사람들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악기도 없을 것이다.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그 시끄럽고 '돼지 멱따는' 소리에 잠을 설쳐 본 사람도 많을 것이고, 한물간 어두침침한 카바레에서 더 한물간 유행가에 맞춰 들리는 그 능글맞은 소리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재즈나 팝송에서 간주 부분을 멋스럽게 '후리는' 연주나 콘서트에서의 라이브 연주를 보면 색소폰처럼 섹시하고 화려한 악기가 또 있을까 새삼 느낀다. 우리 주변에는 색소폰을 배우다가 고전을 면하지 못해 흐지부지 중도포기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이 악기의 매력과 흡인력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빌 클린턴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대통령에 연거푸 당선된 이유 중 하나가 유세 때 심심찮게 보여 준 그의 '섹시한 색소폰 연주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으니 이쯤 되면 정치적인 영향력까지도 겸비한 악기가 색소폰이라 하겠다.

재즈라는 장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악기, 색소폰. 그 유구한 역사만큼 전설적인 연주자들도 많다. '색소폰의 아버지들'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 찰리 파커(Charlie Parker)를 위시해서 레스터 영(Lester Young),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스탄 게츠(Stan Getz),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조 헨더슨(Joe Henderson), 리 코니츠(Lee Konitz), 폴 데스몬드(Paul Desmond) 등 이미 1950~60년대에 색소폰에 관한 테크닉과 스타일은 정리가 끝났다고 봐도 좋을 만큼 수많은 '초절정' 고수들이 이미 그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색소폰이 비로소 대중에게 폭넓게 사랑을 받았던 것은, 1980년대 소프라노 색소폰을 입에 비뚜름하게 문 케니 지라는 라면 머리 청년 때문이었으니, 재즈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도 "와! 색소폰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다니……" 하며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재즈 마니아나 재즈 뮤지션들이라면 케니 지를 몹시 싫어한다는 점이다.

케니 지의 경음악들과 더불어 댄스음악계를 평정한 블랙 머신(Black Machine)의 〈How Gee〉가 색소폰의 위용을 한창 뽐내던 1980년대에 정작 나의 귀를 사로잡은 색소폰은 바로 톰 스콧(Tom Scott)과 데이비드 샌본(David Sanborn) 같은 이른바 퓨전 재즈(fusion jazz)에서의 솔로와 섹션들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다소 어렵고 지루한 정통 재즈를 벗어나 전자 악기들과의 크로스오버(crossover, 여러 장르가 교차한다는 의미로 특히 재즈와 록, 팝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혼합한 연주 형식) 형태를 취하고 있어 무척 신선했을 뿐더러, 그렇다고 케니 지처럼 너무 달짝지근한 수준까지는 가지 않아 재즈에 막 입문하려던 내게 안성맞춤인 음악이었다. 특히 데이비드 샌본이 불어 내는 고음의 현란한 애드리브는 그 어떤 록 음악의 기타 솔로보다도 강하고 자극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형이 잘 가던 돈암동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데이비드 샌본의 라이브를 영상으로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카페 이름부터 범상치 않게 핑크 플로이드의 '어스&뎀(Us & Them)'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DVD를 통해 웬만한 콘서트나 뮤직비디오는 모두 구해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복사하고 또 복사해서 원래의 영상과 소리가 뿌옇게 변한 비디오테이프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스 & 뎀에서는 말로만 듣던 레이저 디스크로 깨끗한 영상의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실황을 시종 틀어 주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멋졌던 것은 단연 데이비드 샌본의 〈Love & Happiness〉 라이브였다. 《Straight to The Heart》 앨범의 뮤직비디오 격인 이 콘서트의 멋진 영상과 사운드를 입을 반쯤 벌린 채 보고, 다시 틀어 달라고 해서 또 보기를 반복했다. 확실히 당시 심취해 있던 하드록이나 헤비메탈과는 별천지의 세상이었다. R&B, 블루스, 펑키, 그리고 재즈를 귀가 아닌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음악의 바다란 넓디넓은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얻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보너스로 말로만 듣던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와 기타리스트 하이럼 블락(Hiram Bullock)의 연주도 감상할 수 있었으니,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의 호젓한 카페 어스 & 뎀은 나와 친구들의 소중한 아지트가 되었다.

데이비드 샌본은 아마도 유명 가수들과 가장 많은 녹음을 한 세션맨일 것이다. 1945년 미국 플로리다 출신인 샌본은 세션 연주자로 그 명성을 이어가다 1975년 솔로 앨범 《Taking Off》를 발표한다. 그는 수백 장의 앨범에 색소폰 세션으로 참여했고, 20여 장에 달하는 솔로 앨범에다가 영화음악, TV와 라디오 쇼 호스트로도 활동하며 지금도 재즈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화려한 업비트(빠른 템포, 강렬한 템포의 리듬)의 전자 사운드보다는 좀 더 사색적인 소규모의 프리재즈(free jazz, 기존의 재즈 흐름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을 통한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재즈)로 회귀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1945년생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샌본은 2010년 조이 드프란체스코(Joey DeFrancesco), 스티브 갯(Steve Gadd), 제임스 테일러, 조스 스톤(Joss Stone) 등이 피처링한 24번째 솔로 앨범 《Only Everything》을 발표하며 아직도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샌본의 화려한 오지랖
샌본은 1960년대 후반 폴 버터필드(Paul Butterfield)의 앨범을 시작으로 데이빗 보위, 폴 사이먼, 스티비 원더, 비비 킹(B.B. King), 이글스, 제임스 브라운, 엘튼 존 등 슈퍼스타들은 물론이고 길 에반스(Gil Evans), 론 카터(Ron Carter), 밥 제임스(Bob James), 조지 벤슨(George Benson),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스틸리 댄,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 같은 인기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레코딩을 했다. 그의 알토 색소폰은 대중적이면서도 멋스러워 금방 알아챌 수 있는데, 최근 인기 절정인 영국의 R&B 가수 조스 스톤의 곡에서 '샌본스러운' 색소폰 리프가 있어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데이비드 샌본이었다. 곧 칠순 할아버지인데 참 대단하시다.

데이비드 샌본

ⓒ 황가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 여덟 곡 중 첫 곡과 마지막 곡을 뺀 여섯 곡을 스튜디오 라이브 연주로 담은 앨범 《Straight to The Heart》는 소규모 퓨전 재즈 밴드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 물론 연주자들의 동급 세계최강 실력과 사운드 엔지니어의 깔끔한 라이브 믹싱 덕이기도 하지만, 이후 비슷한 편성으로 비슷한 녹음을 시도해 본 나로서는 '정말 실감나는 레코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알 그린의 유명한 펑키 넘버 〈Love & Happiness〉의 감칠맛 나는 색소폰 인트로, 〈Run for Cover〉의 등골 오싹하게 하는 마커스 밀러의 슬랩 베이스, 〈Lisa〉의 달콤하고 나른한 분위기, 그리고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격정의 블루스 〈Smile〉의 불꽃 튀는 일렉트로닉 기타와 알토 색소폰의 연주 대결 등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구식 느낌을 주지 않는, 세련됨이 살아 있는 앨범이다.

샌본보다 더 섹시한 하이럼 블락?
《Straight to The Heart》 앨범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하이럼 블락은 데이비드 샌본보다 훨씬 더 섹시하다. 민소매 티셔츠 바람으로 근육질의 건장한 몸매를 과시하는 (나중에는 살이 많이 찌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Smile〉에서 샌본과 길고 긴 솔로 임프루브를 교대로 들려주는데, 나중에는 무대에 아주 드러눕기까지 한다. 블락은 〈Straight to The Heart〉의 이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는지 몰라도 그 이듬해부터 솔로 앨범을 내기 시작해 2006년까지 총 14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블락은 2008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 더 이상 그의 섹시하고도 펑키한 블루스 기타와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단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샌본이 앞섶을 훌훌 풀어헤친 채 모델처럼 묘한 포즈를 취한 앨범 재킷이다. 다른 재즈 뮤지션들과 다르게 샌본은 유독 외모에 자신이 있는지 얼굴 사진을 매번 앨범 재킷으로 쓴다. 잘생긴 얼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970년대 남성화장품 광고 같은 《Straight to The Heart》의 재킷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 이야기 나온 김에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샌본보다 한참 뒤에 등장한 알토 색소폰 주자인 데이브 코즈(Dave Koz)의 생김새가 샌본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영상이나 사진에서 코즈를 샌본으로 착각하고 "데이비드 샌본은 늙지도 않네?" 하는 사람도 있다. 연주 스타일마저 비슷하니 혼동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나 둘의 나이 차는 거의 20년이다.

데이비드 샌본 《Straight to The Heart》,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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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ideaway
2. Straight to The Heart
3. Run for Cover
4. Smile
5. Lisa
6. Love & Happiness
7. Lotus Blossom
8. One Hundred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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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섭 집필자 소개

1994년 그룹 웬즈데이(Wednesday)로 데뷔. 뮤지컬 <루나틱>, <비애로>, <그녀만의 축복>, TV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콩깍지>, TV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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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저자권오섭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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