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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인도에 떨
어져도 음악

클라투 《Klaatu》

비틀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평가되는 명작

요약 테이블
창작/발표시기 1976년
가수/연주자 클라투

1976년 캐피털 레코드(Capitol Records)에서 한 장의 앨범이 발매된다. 앨범 재킷에는 'Klaatu'라는 이름과 그림만 있을 뿐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런데 음악을 들어보니 왠지 귀에 익은, 무수히 들어본 듯한 느낌이다. 영국식 악센트, 오케스트레이션과 록 밴드 조합의 편곡, 이런저런 음향효과들, 친숙한 목소리와 하모니……. 이게 뭐였더라? 가만, 이 사운드는 설마…… 비틀즈?

비틀즈는 예전에도 앨범 재킷에 아무런 글도 사진도 없는 일명 '화이트 앨범'을 낸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해체한 지 5년이 넘은 비틀즈에 대한 엄청난 그리움과 향수는 삽시간에 "클라투는 비틀즈의 컴백 앨범이다"라는 루머로 번지게 되었다. 캐피털 레코드와 비틀즈 멤버들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와중에 언론을 통해 의문은 증폭되었고, 앨범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평론과 대중은 형편없어진 대중음악계를 다시금 바로잡고자 비틀즈가 홀연히 '재림했다'는 둥, 비틀즈의 음악이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둥 입방아를 찧었고, 심지어는 "1975년에 자살한 배드핑거(Badfinger)의 리더 피트 햄(Pete Ham)을 위한 비틀즈의 추모앨범이 바로 《Klaatu》"라는 그럴듯한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명곡 〈Without You〉의 저주
배드핑거 역시 대표적인 '포스트 비틀즈 밴드'로 인기를 구가했던 그룹이다. 비틀즈와 전혀 상관없었던 클라투와는 달리 배드핑거는 폴 매카트니가 프로듀싱과 작곡을 해 준 진짜 후계자 밴드였다. 많은 사람들은 피트 햄이 "우리는 비틀즈가 아니다"라며 자살한 줄 알지만, 사실은 재정난과 빚 독촉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피트 햄이 작곡한 불후의 명곡 〈Without You〉 역시 '부른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노래'라는 이상한 징크스로 회자된다. 피트 햄은 자살, 해리 닐슨(Harry Nilson)은 심장마비 돌연사, 머라이어 캐리는 이 곡을 부르고 슬럼프에 빠져 역시 징크스가 들어맞는다고 떠들어 댔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성공적으로 컴백해서 요즘은 영화에도 나오고 하니 이걸 더 두고 봐야 하나 어쩌나.

어찌 됐든 이듬해 클라투(Klaatu)가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3인조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클라투 돌풍은 이내 잠잠해졌고, 그간 속은 것이 억울했는지 매체와 대중 모두가 '사기극' 운운하며 일제히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비틀즈의 반사 인기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혹자들은 "그들의 사진을 보고 나면 내가 제작자라도 얼굴 없는 가수 시키겠다"라고 말한다. 너무나 자유롭게 생긴 그들의 외모는 꽃미남 아이돌 스타 같은 비틀즈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투는 꿋꿋하게 매년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다지 큰 히트 없이 '비틀즈 짝퉁'이라는 꼬리표에 시달리다 1980년대 초에 해체하고 만다.

도대체 비틀즈의 영향이 얼마나 크기에 멀쩡한 밴드들이 해체한 지 한참 지난 비틀즈의 그늘 속에서 '아류'와 '답습'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결성되고 활동하고 해체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예수 다음으로 인기가 많다는 비틀즈. 확실히 1960년대가 '비틀즈의 10년(The Beatles Decade)'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냉전과 반전(反戰), 고도성장, 동성연애, 시위와 집회, 프리섹스, 문화의 다변화 등이 전염병처럼 퍼지던 때가 1960년대였다면, 1970년대는 그런 것들이 일반화되어 부작용이 생기고 사람들이 싫증을 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대중음악계도 절대강자 없이 많은 가수와 밴드가 명멸을 거듭하며 장르의 세분화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클라투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좀 더 단순하고 화려하며 강렬했던 196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클라투는 최근에도 리메이크되었던 1951년의 SF 영화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의 착한 외계인 캐릭터 이름이다. 나중에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Star Wars Episode VI: Return of the Jedi)〉에도 잠깐 등장하는데, 지구인에게 평화에 대한 우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이는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원작에 헌정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앨범 《Klaatu》의 타이틀곡인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를 들어보면 '우주적인 평화스러움'이 느껴지면서 클라투의 팀 색깔이 명확히 드러난다.

긴 제목으로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따뜻한 하모니, 변화무쌍한 오케스트레이션에 힘입어 클라투의 대표곡이 되었고, 인기 듀오 카펜터스가 1977년 앨범 《Passage》에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California Jam〉, 〈Anus of Uranus〉, 〈True Life Hero〉는 록에 기반을 둔 멜로디컬한 비틀즈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 주는 반면, 〈Sub-Rosa Subway〉는 비틀즈라고 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롭다. 후반부에 반복되는 트럼펫 연주를 들으면 괜히 〈All You Need is Love〉가 생각나지만 말이다. 뮤지컬 곡 같은 〈Sir Bodsworth Rugglesby III〉에서는 클라투의 음악이 여타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보다 밝고 위트가 넘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클라투를 장르 구분상 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분류하게 만드는 곡 〈Little Neutrino〉는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었을 '보이스-쉬프트(Voice-Shift, 목소리를 기계로 조작하여 왜곡시키는 녹음 기술)'를 사용해 우주적인 분위기를 한껏 낸다.

클라투

ⓒ 황가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말 많았던 데뷔 앨범을 낸 다음 해에 클라투는 역시 비슷한 분위기의 2집 앨범 《Hope》를 발매한다. 앨범 마지막 곡인 〈Hope〉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희망적인 가사로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사랑받는 노래이지만, 클라투는 이미 비틀즈 마니아와 안티 비틀즈 모두와의 길고도 지루한 싸움을 시작한 터였다. 데뷔 앨범이 나오고 5년 후인 1981년,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낸 클라투는 그만 소리도 없이 해체했는데, 그것은 클라투의 세 멤버 모두가 레코딩 스튜디오 출신의 뮤지션들이라 대중과 만나기를 극히 꺼렸기 때문이다. 앨범을 계속 발매하던 중 제작사 측에서는 라이브 밴드 멤버를 보강해 그들을 무대에 세우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밴드는 '합의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버린 것이다.

Lady와 Woman
1988년에 뜬금없게도 클라투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디지털 싱글'을 한 곡 발표한다. 요즘처럼 정보가 공개되고 공유되던 시대가 아니라서 그 곡이 발표된 지 2~3년이 지나고 대학 시절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라투의 '광팬'도 아닌데 이 곡이 어떤 곡일까 너무 궁금해서 들어보려 만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아마 라디오 방송국에까지 엽서를 보냈던 것 같다. 인터넷이 보급되어 '개명천지'가 된 10여 년 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철썩같이 알고 있던 제목은 분명 'Lady'였는데 진짜 제목은 〈Woman〉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곡 자체가 너무 달짝지근한 발라드여서 전혀 '클라투스럽지가' 않았다. 역시 옛날 애인은 다시 안 만나는 것이 좋은가 보다.

1998년, 클라투는 불명예를 씻고자 '3:47 EST'라는 새로운 앨범 제목을 달고 데뷔 앨범이었던 《Klaatu》를 재발매했다. 새로운 앨범이 아니라서 클라투의 재결성을 고대하던 클라투 마니아들에게는 '좋다가 만' 해프닝이었지만 그런 마니아들을 위해 드러머 테리 드레이퍼(Terry Draper), 베이시스트 겸 키보디스트 존 월로슉(John Woloschuk), 기타리스트 디 롱(Dee Long) 세 명의 클라투 멤버들은 2005년 토론토에서 깜짝 공연을 열기도 했다.

뮤지션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울 때가 "OO랑 음악이 비슷하다", "XX를 따라한다"라는 식의 비판일 것이다. 비틀즈가 해산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이지만 그 어떤 록 밴드도 비틀즈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더 거슬러 올라가 어떤 장르의 음악가이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음악이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소통하고, 생명을 얻어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다운 음악'과 표절·샘플링·벤치마킹의 '얄팍한 음악'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래도 듣는 사람의 몫일진대, 부디 클라투에게 만큼은 이제 그만 선처를 베풀어 주시길…….

클라투 《Klaatu》, 1976

ⓒ 시공아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1.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
2. California Jam
3. Anus of Uranus
4. Sub-Rosa Subway
5. True Life Hero
6. Doctor Marvello
7. Sir Bodsworth Rugglesby III
8. Little Neutr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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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섭 집필자 소개

1994년 그룹 웬즈데이(Wednesday)로 데뷔. 뮤지컬 <루나틱>, <비애로>, <그녀만의 축복>, TV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콩깍지>, TV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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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저자권오섭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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