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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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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페르난도 트루에바 |
2000년, 쿠바의 할머니 할아버지 뮤지션들을 소박하게 담아낸 빔 벤더스(Wim Wenders)의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이 거의 2년이나 늦게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당시, 한창 4인조 남자 보컬그룹의 앨범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래미상도 받은 영화라 일종의 '현장학습' 차원에서 팀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영화 관람 전후에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멤버들에게 음악적인 부연설명을 해 주어야 했는데, 도대체 쿠바의 무명 클럽 뮤지션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궁색하게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음악감독인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에 대한 이야기만 떠벌렸던, 그러나 모처럼 즐거운 소풍 같은 오후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서 "우와! 한물간 쿠바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실력이 저 정도인데, 날고 긴다는 남미 무림의 고수들로 다큐를 찍는다면 정말 환상이겠다"라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이듬해 이런 생각을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 감독이 실천에 옮겼다. 다큐멘터리 영화 〈칼레 54(Calle 54)〉. 재즈 마니아들이 두 손 모아 경의를 표하는 필름이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은?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1993년, 영화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스페인의 영화감독이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의 러브 콜에 넘어가 〈투 머치(Two Much)〉 같은 상업영화를 만들기도 해서 좀 실망스러웠지만, 2010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 Rita)〉는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칼레 54〉와 비슷한 색깔이 나는데, 그것은 1940~50년대의 시대 배경에 주인공들이 재즈 뮤지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칼레 54〉로 늘그막에 글로벌 스타가 된 비보 발데스와 그의 재즈 오케스트라가 몽크, 파커, 포터 등의 재즈 레전드들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만화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에 헤어누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칼레 54'의 시시한 비밀?
'칼레 54'는 라틴아메리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목이지만, 사실은 뉴욕에 있는 한 스튜디오를 가리키는 말이다. 'calle'는 스페인어로 '길(street)'이라는 뜻이다. 〈칼레 54〉 대부분의 스튜디오 녹음과 녹화가 미국 뉴욕 54번가에 있는 소니뮤직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져 붙인 이름이란다.
재즈는 그 발상지인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출발해 LA를 기점으로 한 웨스트코스트 재즈, 뉴욕을 중심으로 한 이스트코스트 재즈가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발전했다. 미국 밖에서는 유럽 대륙의 유러피언 재즈, 멕시코와 중남미의 라틴-브라질리안 재즈가 본토 재즈와는 또 다른 성향으로 일가를 이룬다. 고급스럽고 자유분방한 유러피언 재즈와는 또 다르게 라틴 재즈는 토속적인 인디오들의 전통음악과 맞물려 리듬과 템포가 가공할 만한 세포 분열을 일으키면서 원조보다 더 화려한 재즈로 거듭났다.
자타공인 세계 제일의 미국 대중음악은 1950~60년대를 거치며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세 번의 침공을 받았다. 그 선봉에 선 것이 바로 '브라질의 거슈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보사노바였다. 다른 둘은 밥 말리(콜롬비아)의 레게, 카를로스 산타나(멕시코)의 라틴록이었으니 모두 성공한 침략이었던 셈이다. 조빔 이후 수많은 라틴계 재즈 뮤지션들이 미국에서 또는 중남미에서 다양하고도 심도 있는 활동을 하면서 라틴 재즈는 더 이상 '변방의 음악'에 머물지 않았다.
내한공연까지 했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영화 흥행에서는 신통치 않았던 전례를 더듬어, 일찌감치 〈칼레 54〉의 DVD가 나오자마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했다. 역시나 우리나라에서 개봉은커녕, 소개조차 되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역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국내에서 히트한 것은 음악보다는 스토리였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기대에 부풀어 〈칼레 54〉를 본 소감은 뭐랄까……, 어려웠다. 뭔가 영화적인, 아니 최소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마저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녹음하고 녹화한 뮤지션들의 실황 테이프와 내레이션 몇 개의 짜깁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같이 보던 사람들은 30분도 안 되어 모두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평소 라틴 재즈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도 없었으며,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왔던 바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올스타들의 경이로운 연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음악의 취향과는 별개로 일종의 경외심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면 뚫고 나오게 된다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과 중남미 대륙. 삼바, 룸바, 맘보, 메렝게, 살사, 보사노바……. 귀에 익은 것같기도 하지만 도대체 뭐가 뭔지 구별조차 힘든 지구 저편의 음악이 이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특혜이기도 하니 브라질의 아마존에도 인터넷의 아마존에도 감사할 따름이다.
〈칼레 54〉의 사운드트랙은 영화에 나온 곡들을 순서대로 수록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오히려 영상에서 놓친 디테일들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영화와 CD의 프롤로그로 사용된 파키토 드리베라(Paquito De Rivera, 쿠바)의 〈Panamericana〉를 필두로, 맨발의 미녀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엘리아니 엘리아스(Eliane Elias, 브라질)의 〈Samba Triste〉, 작은 거인 미첼 카밀로(Michel Camilo, 도미니카공화국)의 〈From Within〉,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잘 알려진 정열적인 색소폰 연주자 가토 바르비에리(Gato Barbieri, 아르헨티나)의 〈Llamerito y Tango/Bolivia〉, 등장인물 중 가장 유명하지만 〈칼레 54〉 OST가 그만 유작이 되어버린 조 페시 닮은 타악기 주자 티토 푸엔테(Tito Puente, 미국)의 〈New Arrival〉, 모두가 인정하는 '괴물' 추초 발데스(Chucho Valde, 쿠바)의 〈Caridad Amaro〉, 추초의 아버지 베보 발데스(Bebo Valdes)의 〈Lagrimas Negras〉, 이 두 부자가 함께 연주하는 감동의 도가니 〈La Comparsa〉, 라틴 재즈의 대중화 전도사인 트럼펫 주자 제리 곤잘레스(Jerry Gonzales, 미국)의 〈Como Fue〉, 그리고 위의 올스타가 함께 연주하는 〈Creditos Finales〉까지 총 16곡이 수록된 이 앨범의 화력은 실로 무지막지하다. 왜 미국의 성공한 재즈 뮤지션들이 브라질로 유학을 가는지 이해가 간다.
테크닉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아슬아슬함이 서커스를 방불케 하여 과유불급의 안타까움도 느껴지지만 그들의 연주가 '지상 최고의 연주'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식은 소화불량을 낳는 법. 그래서 음악 하는 후배나 동료들에게 〈칼레 54〉 OST는 한 번에 다 들으려 하지 말고 하루에 한 곡씩 반복해서 들으라고 충고한다. 라틴 재즈는 록으로 치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과 같아서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소음'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샘플러'라는 메뉴가 있다. 그 집의 잘나가는 메뉴들을 몽땅 모아 한 접시에 담아내는 컴필레이션 메뉴인 셈인데, 〈칼레 54〉 OST는 모던 라틴 재즈의 완벽한 샘플러라고 할 수 있다.
1. Panamericana / Paquito D'Rivera
2. Samba Triste / Eliane Elias
3. Oye Como Viene / Chano Dominguez
4. Earth Dance / Jerry Gonzalez & the Fort Apache Band
5. From Within / Michel Camilo
6. Intorduccion. Llamerito y Tango/Bolivia / Gato Barbieri
7. New Arrival / Tito Puente
8. Caridad Amaro / Chucho Valdes
9. Afro-Cuban Jazz Suite / Chico O'Farrill
10. Lagrimas Negras / Bebo Valdes Y Cachao
11. Compa Galletano / Puntilla Y Nueva Generacion
12. La Comparsa / Chucho Valdes, Bebo Valdes
13. That's All It Was / Eliane Elias
14. Como Fue / Chano Dominguez, Jerry Gonzalez
15. Parisian Thoroughfare / Paquito D'Rivera
16. Creditos Finales / Jerry Gonzalez & the Fort Apache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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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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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칼레 54〉 OST –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권오섭,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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