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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인도에 떨
어져도 음악

들국화 《들국화 1집》

활짝 피기도 전에 져 버린 가요사의 꽃

요약 테이블
창작/발표시기 1985년

1980년대 중후반 고등학교 시절,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밴드의 연주를 보기 위해 신촌의 크리스탈 백화점에 있던 한 소극장 객석에 친구와 앉아 있었다. 당시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푹 빠져 있었던 때라 무대에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온 멤버들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보고 "야! 이거 완전 레드 제플린 짝퉁이잖아?" 하며 시큰둥했다. 하지만 너무 '하드하지도' 너무 '소프트하지도' 않은, 팝 같기도 하고 록 같기도 한 음악을 들으며, 그들이 별 볼 일 없는 라이브 밴드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기에는 너무나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나 자신들 곡 사이사이에 들려준 스틱스(Styx), 위시본 애쉬(Wishbone Ash), 홀리스(Hollies)의 곡들 또한 비록 커버곡이었지만 아주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밴드라면 보여 주어야 할 고음의 파워 보컬, 현란한 속주 기타, 개인기 드럼 솔로, 펑키한 슬랩 베이스(엄지손가락을 이용한 피치카토 주법)의 공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덤덤하고도 편안하게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한낱 고교 카피밴드만 봐 오던 나에게는 우물 밖의 고수들이 아닐 수 없었다.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LP판을 구입해서 보니 재킷 그림은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와 거의 유사하지만 밑에 들국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어 어린 마음에도 "이 밴드가 한국의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을 동시에 꿈꾸는 야망을 가진 밴드로구나"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들은 TV에 출연하지 않고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점점 인기를 얻더니 어느 순간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었다. 들국화의 라이브를 본 사람은 고급문화의 혜택을 누린 사람인 양 자랑을 하던 시절이었고, 허구한 날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만 카피하던 아마추어 밴드들도 들국화의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2년간 앨범 20장 내고 해체한 비틀즈, 10년간 10장 내고 해체한 레드 제플린과 달리, 들국화는 고작 정규앨범 2장, 라이브 앨범 1장만을 내고 그만 지리멸렬해 버린다. 실로 가요사의 안타까운 장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앨범을 최소한 서너 장만이라도 더 냈더라면 모두가 서슴지 않고 '한국의 비틀즈'로 불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들국화나 서태지를 가요사의 신화와 전설로 이야기해야만 하는 한국 가요계의 '두텁지 못한 선수층'에 한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들국화의 프론트맨 전인권과 최성원. 이 둘의 조합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비교되기도 한다. 독특한 보컬과 '헤비메탈스러운' 카리스마의 전인권, 대중적이면서도 작·편곡에 능한 최성원의 음악성이 그 무게중심을 들국화라는 밴드로 표출한다고 보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쩌면 들국화라는 밴드의 진정한 캐스팅보트[의회에서 가부(可否)가 똑같을 경우에 장이 가지는 결정권를 쥐고 있었던 인물]은 비교적 덜 알려진 멤버 조덕환이 아니었나 싶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훨씬 더 좋은 여건에서 만든 《들국화 2집》(1986)이 "1집만 못하다"는 평가를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덕환의 부재'다. 그는 1집을 낸 후 얼마 되지 않아 돌연 미국행을 택해 팬들을 궁금하게 만든 인물이다. 멤버들조차 그의 탈퇴 이유에 대해 뚜렷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조덕환은 신비스러운 이미지의 오리지널 멤버로 남아 있다. 1집의 정식 멤버에는 위의 세 사람 외에도 피아니스트 허성욱이 있다. 클래식한 그의 연주는 들국화 사운드가 너무 '날아가는' 것을 묵직하게 잡아 주었고, 객원 세션맨인 주찬권, 최구희, 손진태의 연주도 한국적인 포크록 사운드에 큰 기여를 했다. 세션들과 정규 멤버의 구별도 2집부터는 없어진다.

'들국화'의 탄생
전인권은 1970년대 말 강인원, 이주원, 나동민과 함께 '따로 또 같이'라는 포크 그룹으로 활동하며 〈맴도는 얼굴〉을 발표했다. 들국화의 전신은 전인권(보컬), 최성원(베이스), 허성욱(키보드) 세 명이 의기투합한 이른바 '전인권 트리오'였다. 이들은 통기타 업소나 무도회장 같은 곳에서 활동하다가 만나 팀을 결성, 팝송과 록발라드를 부르며 내공을 키워나갔다. 이들의 첫 자작곡 히트는 최성원이 작곡한 〈매일 그대와〉였는데, 정규앨범도 나오기 전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히트한 곡이 되었다.

비록 정치적 메시지는 강하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들국화는 한국식 문화혁명이 횡행하던 신군부 치하에서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TV 출연을 거부하며 "행진하는 거야!"를 외친 상징적인 밴드였다. 그들 이후 비로소 젊은이들은 팝에서 눈을 돌려 우리 가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들국화의 음반을 제작했던 동아기획의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어떤날, 동물원 등은 그 입지를 더욱 넓히게 되었다.

들국화 1집의 가장 큰 히트곡은 아마도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이 아닐까 싶다.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친구들과 술 마시고 "그것 무안이~ 눼 세~사앙~"을 목청껏 불러보지 않은 자 없을 것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전인권이 작곡한 곡 〈행진〉은 그 메시지와 분위기 때문에 팀의 주제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곡이다.

들국화

ⓒ 황가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덕환이 쓴 〈세계로 가는 기차〉는 전형적인 로큰롤 넘버로, 신이 난다기보다는 예쁘다는 느낌이 어울리는 재미있는 노래다. 아마도 메인보컬을 조덕환과 최성원이 담당해 일종의 '고음 불가' 상황이 빚어진 듯하다. "차라리 전인권이 불렀더라면 훨씬 록 같았을 텐데……"라는 가정도 해 보지만, 이들은 하드록이 아닌 포크록을 지향하는 밴드였기에 〈매일 그대와〉, 〈더 이상 내게〉 등에서는 홀리스나 크로스비(Crosby), 스틸스(Stills), 내시 앤 영(Nash and Young) 같은 화음과 기타 진행을 들려주기도 한다. '어떤날'의 이병우가 만든 곡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유일하게 팀원이 아닌 외부인이 쓴 곡으로, 아트록적인 분위기가 들국화의 아우라를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듯하다.

같은 곡, 다른 느낌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다음 해 조동익과 이병우가 결성한 듀오 '어떤날'의 데뷔 앨범에도 실린다. 스코어[score, 연주에 관한 모든 파트를 종합해서 기록한 보표(譜表)]는 거의 같지만 들국화의 앨범에서는 피아노 반주이고 어떤날 앨범에서는 기타 반주다. 우울하기는 두 곡이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들국화 버전을 '낮잠 자다 깬 일요일', 어떤날 버전을 '낮잠 들기 전 일요일'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어어부밴드 출신의 백현진이 리메이크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발산하기도 했다.

최성원의 트레이드마크인 록발라드의 전형을 보여 주는 〈사랑일 뿐이야〉는 최성원과 전인권이 교대로 보컬을 맡아 이들의 감성을 동시에 감상해 볼 수 있고,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 〈축복합니다〉는 기념일이나 생일이면 요즘도 자주 불린다. 대학 시절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이 곡을 친구들과 부른 적이 있는데, 살짝 분위기가 우울해져서 난감했던 기억도 난다.

군부 정권 하에서 모든 음반에 강제로 넣었던 '건전가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아카펠라로 편곡해서 앨범 제일 뒤에 실은 재치도 돋보인다. 버릴 곡이 한 곡도 없는 《들국화 1집》은 그 어느 국내 대중음악 평론가도 피해갈 수 없는 가요사의 명반임에 틀림없다.

들국화는 1986년 라이브 앨범을 한 장 내는데, 녹음기술 미비로 진짜 라이브를 하는 대신 녹음실에 관객 몇 명을 불러 놓고 실황을 녹음해야 했다. 같은 해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제발〉, 〈조용한 마음〉 등의 좋은 곡들이 담긴 2집 앨범도 많은 기대 속에서 발매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들국화는 허무하게도 해산해 버리고 만다.

그 후로 전인권과 최성원은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어쩌다 다시 모여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으며 전인권이 주축이 되어 《들국화 3집》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들국화는 더 이상 들국화가 아니었다. 게다가 허성욱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하는 불행까지 겹쳐 들국화는 그만 가요사의 뒤안길로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들국화는 이 땅 모든 뮤지션의 로망이었다.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더 이상 촌스럽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밴드이기도 했다.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검열과 통제의 철창 사이를 비집고 싹을 틔워 고고하게 피어난 꽃, 들국화. 우리는 그 들국화가 만발하는 들판을 보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노래처럼 한 송이 저 들국화는 그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되고 말았다.

들국화 《들국화 1집》,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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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진
2. 그것만이 내 세상
3. 세계로 가는 기차
4. 더이상 내게
5. 축복합니다
6. 사랑일 뿐이야
7. 매일 그대와
8. 오후만 있던 일요일
9.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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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섭 집필자 소개

1994년 그룹 웬즈데이(Wednesday)로 데뷔. 뮤지컬 <루나틱>, <비애로>, <그녀만의 축복>, TV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콩깍지>, TV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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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저자권오섭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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