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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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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연주자 | 지미 헨드릭스 |
성공한 가수나 밴드들은 대략 두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배고픈 신인 시절부터 시작해 조금씩 실력과 인기를 쌓아 나가는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형이고, 또 하나는 첫 앨범부터 큰 성공을 거두어 단박에 스타가 되는 '오버나이트 석세스(Overnight Success)'형이다. 록 가수나 밴드들은 후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대를 풍미한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부터 비교적 최근의 건즈 앤 로지즈와 너바나 등의 데뷔 앨범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록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 앨범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걸작들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1967년에 나온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Are You Experienced》의 충격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지미 헨드릭스의 출현 자체가 록 음악사에는 거대한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서구 대중음악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록, 재즈, 그리고 팝. 분리주의자가 되기는 싫지만 여기에는 묘한 흑백의 대치상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록은 백인, 재즈는 흑인, 그리고 팝은 중립 지역. 21세기가 되어 그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는 있지만 이러한 인종적인 불문율이 예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컨트리 송을 부르는 흑인이나 힙합 옷을 입고 랩 음악을 하는 백인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아론 네빌(Aaron Neville)과 에미넴(Eminem)이 있기는 하다.
이런 음악들이 장르화, 세분화되기 전에 모두 뒤섞여 그저 '로큰롤'로 불리던 1950~60년대에 미국의 흑인 뮤지션들이 록 음악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척 베리(Chuck Berry), 보 디들리(Bo Diddley), 레이 찰스,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제임스 브라운 등. 이제는 백인의 전유물이 된 록 음악의 시작에는 가스펠과 R&B를 접목했던 수많은 흑인 선배님들이 계셨다. 그러나 혹자들은 말한다. 그래도 로큰롤의 아버지는 위대한 엘비스가 아니냐고. 반쯤은 맞는 이야기겠지만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가창력과 스타 기질, 인기였을 뿐 그의 음악성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엘비스 팬들에게 혼날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록의 아버지는 이러한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1960년대에 나타난다. (엘비스 팬들에게 진짜 혼날 말이다.) 핵폭탄 같은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를 들고, 거만한 태도에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에다 양쪽에 백인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를 거느린 시애틀 출신의 흑인, 지미 헨드릭스. 28년 짧은 생애를 불나방처럼 살다 간 록 음악의 전설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들의 인권과 단합을 외치다 비명에 갔을 바로 그 무렵 지미 헨드릭스가 발표한 《Are You Experienced》는 미국 대중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기타를 이빨로 연주하는 신동 출현" 같은 평가가 "새로운 음악, 미래의 음악"이라는 찬사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헨드릭스 역시 4년 후 객사할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수많은 레코딩과 라이브 콘서트의 강행군을 소화해 낸다. 특히 1969년 역사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Woodstock)에서 연주한 미국 국가의 기괴한 해석과 기타 불태우기 퍼포먼스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1967년에 데뷔했고, 1970년에 약물과용으로 돌연사한 그 짧은 전성기 4년 동안 헨드릭스가 녹음한 각종 편집앨범이 정규앨범으로만 50여 장이나 나와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그 50여 장의 앨범 중에는 사실 조삼모사 식의 편집앨범이 많기는 하지만, 단연 중요한 앨범은 바로 데뷔작인 《Are You Experienced》다.
《Are You Experienced》 앨범은 1967년 영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이는 헨드릭스가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드럼)과 노엘 레딩(Noel Redding, 기타, 베이스) 두 영국인들과 밴드를 결성한 것도 영국이었고, 음반 계약과 녹음을 한 것도 영국, 초창기 활동 무대 역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쪽이었기 때문이다. 헨드릭스가 고향땅 미국에서 알려진 것은 폴 매카트니가 헨드릭스를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 강력 추천한 1969년이었다. 《Are You Experienced》는 그래서 영국판과 미국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나중에 나온 미국판에는 3곡이 더 들어 있고, 첫 곡이 〈Purple Haze〉다. 지금 들어도 기타-드럼-베이스의 단순한 악기 구성으로 어쩌면 이토록 깔끔하고 독특한 리프들을 끝도 없이 보여 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지미 헨드릭스에게 반한 폴 매카트니
헨드릭스는 1967년 런던에서 열린 공연에서 당시 유행하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오프닝 곡으로 연주한다. 객석에는 마침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있었는데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고 깜짝 놀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날 이후로 폴 매카트니는 동갑내기 지미 헨드릭스의 홍보대사가 되었고, 헨드릭스의 밴드가 미국에 상륙하는 데 혁혁한 도움을 주었다. 5년 전 자기네들(비틀즈)이 그랬던 것처럼.
록 음악의 고전으로 오래전에 자리매김한 〈Foxey Lady〉, 〈Purple Haze〉, 〈Hey Joe〉, 〈Can You See Me〉, 〈Fire〉, 〈Red House〉 등의 유명한 곡들이 모두 한 앨범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록 밴드 뮤지션들조차 새삼 놀란다. 전곡 작사·작곡에 노래까지 담당한 지미 헨드릭스의 재능과 열정에 '안티 헨드릭스'들은 "잘하는 노래도 아니면서 기타만 칠 것이지 굳이 노래까지 다했냐?", "영국 록 밴드들에 비해 가사가 좀 경박하고 유치하지 않냐?"라는 식의 공격도 하지만, 판타지 같은 가사와 게으르고 나른한 헨드릭스의 기타 사운드가 너무도 쫄깃쫄깃한 〈The Wind Cries Mary〉를 들으며 이런 가사에 이 정도 보컬이 또 어디 있나 하는 반문을 한다.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뿐이었을 그의 불행한 인생을 가늠해 보면 지미 헨드릭스의 폭발적인 카리스마와 자학에 가까운 행동들은 어쩌면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늘 하는 공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밴드 크림에서 활동했던 에릭 클랩튼이 죽고 지미 헨드릭스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는 에릭 클랩튼이라는 이름은 아예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지미 헨드릭스는 틀림없이 록 음악의 판도를 쥐락펴락 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을까? 역시 말도 안 되는 공상이다. 이제 에릭 클랩튼 팬들이 엘비스 팬들과 합세할 것 같다.
지미 헨드릭스의 과거
헨드릭스의 가정은 지독히 가난했다. 부모는 그가 9살 때 이혼했고,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로 몇 년 후 사망한다. 5남매였던 그의 형제자매들 중 셋은 태어나면서 장애가 있었고, 그나마 한 집에서 자라지도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헨드릭스의 아버지는 늘 블루스 음악을 들었고, 블루스는 지미 헨드릭스 음악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10대였던 헨드릭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결국 자동차 절도죄로 체포되고 만다. 군대를 가면 징역형을 면해 주겠다는 판사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헨드릭스는 1961년 군에 입대하지만 군대에서도 여전히 문제아여서 1년 만에 쫓겨나다시피 제대한다. 불행한 어린 시절은 헨드릭스 음악의 모티프였지만 동시에 자기 파멸의 단초였던 것 같다.
헨드릭스가 죽고 나서 그의 음악과 기타는 이후 거의 모든 록 가수와 밴드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흑인들은 더 이상 록 밴드를 만들지 않았다. 아니, 대중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참 후 프린스라는 흑인 청년이 '헨드릭스의 적자'라는 주장을 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그 이후에는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라는 친구도 헨드릭스 스타일로 스타덤에 오르기는 했지만, 록 음악이라고 하면 터프하고 잘생긴 백인 청년들이 긴 머리 휘날리며 반항적으로 노래하는 이미지가 굳어져서 그런지 흑인들로만 이루어진 록 밴드나 헤비메탈 밴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1. Purple Haze
2. Manic Depression
3. Hey Joe
4. Love or Confusion
5. May This Be Love
6. I Don't Live Today
7. The Wind Cries Mary
8. Fire
9. Third Stone from The Sun
10. Foxey Lady
11. Are You Experienced?
12. Stone Free
13. 51st Anniversary
14. Highway Chile
15. Can You See Me
16. Remember
17. Re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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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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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지미 헨드릭스 《Are You Experienced》 –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권오섭,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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