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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197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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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연주자 | 밥 말리 |
자메이카. 최근 각종 육상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더 유명해진 나라. 1990년대에 나왔던 영화 〈쿨 러닝〉에서 봅슬레이를 타던 흑인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스카(Ska)나 레게 음악, 레게 파마, 드레드록(dreadlocks, 레게 스타일 머리, 즉 땋은 머리) 등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메이카가 어디 있냐는 물음에는 "아프리카……?"라고 대답하는 것이 현실이다.(자메이카는 쿠바와 남미 대륙 사이에 있는 강원도 크기 만한 섬이다.)
자메이카는 대부분의 열대 지방 나라들처럼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일 없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나라, 고로 강대국이나 선진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며 노예 산업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처절한 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별다른 국가경쟁력을 개발하지 못한 채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미국의 '비공식 60번째 주(州)'쯤으로 전락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도에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메이카는 '열정과 낭만을 꿈꾸는 태양의 나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다 라틴 음악의 숨결마저 느껴진다. 예전 보니 엠(Boney M)의 히트곡 〈Sun of Jamaica〉를 논하지 않더라도 자메이카! 이름부터 리듬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왜 '자메이카' 하면 음악이 떠오를까? 브라질 같은 나라야 워낙 라틴 음악이 융성하고 발전해서 그렇다 치지만 자메이카는 파나마,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온두라스처럼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또 하나의 중남미 국가일 뿐인데 말이다. 이때쯤 자욱한 담배 연기를 헤치고 두둥실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밥 말리(Bob Marley)다.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한다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딜레마다. 늘 착한 주인공역을 하던 배우는 개성 강한 악역이 하고 싶고, 댄스 가수는 발라드를 부르고 싶어 하며, 유화를 그리던 화가는 돌연 수채화가 그립다. 그래서 그런지 가수는 신보 홍보를 하며 으레 "이번 앨범에는 댄스, 발라드,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 어쩌고저쩌고……" 한다. 이것은 마치 다양한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물타기를 하는 경우인데, 이런 앨범은 열에 아홉 쉽게 잊히고 만다. (17년 전 우리 팀의 데뷔 앨범이 정확히 그러했다.) 그렇다고 한 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앨범에 주구장창 수록하는 것 역시 자칫 재미없고 지루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뮤지션이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다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 색깔이 배어 나와 종국에는 한 가지 스타일로 수렴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성공한 뮤지션들, 특히 연주자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스타일'이 아주 협소한 의미의 음악 장르라면? 그것은 쉽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이쯤 되면 손으로 꼽을 정도의 특정 뮤지션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밥 말리다.
팝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인디'적이면서도 강력한 아이콘 밥 말리. 4박자의 이른바 '뽕짝 리듬'으로 지극히 저항적이면서도 참여적인 메시지를 노래했던 시대의 풍운아. 레게의, 레게에 의한, 레게를 위한 자메이카의 별. 권위주의와 압제를 통렬하게 거부했던 자유의 상징. 밥 말리의 영향은 그의 죽음 이후에 더욱 강력해진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념적인 색은 다소 바랬지만, 잊을 만하면 흘러나오는 레게 리듬의 팝과 가요, 심지어는 티셔츠와 헤어스타일에서도 그의 자욱한 '주문'을 만나볼 수 있다.
밥 말리와 흑인 예수
밥 말리는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 신봉자였고 전도사였다. 라스타파리교는 20세기 초 자메이카에서 생겨난 종교로, 예수, 솔로몬, 시바 등을 성경과 합쳐 백인과 기독교 문화를 배척하고 흑인들의 고향인 이디오피아로 귀환하는 것을 꿈꾸는 종교다. 이들은 마리화나 피우는 것을 평화를 체험하는 의식이라고 믿었는데 덕분에 '밥 말리=라스타파리=마리화나'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밥 말리와 웨일러스(Bob Marley and The Wailers)'라는 밴드 이름(우리말로 하면 '밥 말리와 아우성'쯤 되겠다)과 군복의 앞섶을 풀어 젖히고 총을 든 다소 선정적인 여군의 사진을 재킷으로 하여, 말리는 26살 되던 1970년에 데뷔 앨범 《Soul Rebels》를 내놓는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앨범은 비범한 프로듀서 리 스크래치 페리(Lee 'Scratch' Perry)의 노력으로 미국 본토에 '자메이카의 모타운스러운'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가 등장했다는 이슈를 만들어 냈다.
일은 1973년에 터진다. '밥 말리와 아우성'이 앨범 세 장을 같은 해 연속 발매하며 과격하고도 달콤한 메시지와 함께 본격적인 레게 음악을 문자 그대로 '쏟아 낸' 것이다. 이 세 장의 앨범은 말리의 정수가 녹아든 마스터피스였다. 《Catch A Fire》와 《Burnin'》이 6개월 간격으로 나온 정규앨범이었다면, 《African Herbsman》은 프로듀서인 페리가 데모 테이프와 자투리 곡들을 모아 만든 편집앨범에 가까운 음반이었다.
이 세 장의 앨범은 밥 말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며, 록 음악의 중흥기가 끝나 허전했던 음악계에 춘추전국시대를 선포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Stir It Up〉, 〈Get Up, Stand Up〉, 〈Concrete Jungle〉, 〈I Shot The Sheriff〉, 〈Burnin' and Lootin'〉 등 밥 말리 사운드의 근간을 이루는 곡들이 이 앨범들에 모두 늘어서 있다. 나는 1973년 밥 말리의 3연작을 앨범의 머리글자를 따서 '밥 말리의 ABC'라고 부른다.
역설적인 것은 주류 음악계에서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자메이카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밴드의 음악이 어떻게 히트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인데, 그것은 바로 전설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막대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 클랩튼이 말리의 곡 〈I Shot The Sheriff〉를 리메이크해 팝 차트 1위에 올려놓았다. 말리의 레게에 클랩튼의 록과 블루스를 가미해 완성된 이 곡의 인기는 자연스레 "작년에 나온 원곡이 있다며?", "자메이카 출신 밴드가 부른 곡이래", "걔네 앨범에는 그런 곡 투성이더라" 식의 입소문을 내 이른바 '역홍보'를 해 주었다. 자신의 땅을 식민지배했던 나라(영국)의 후손(에릭 클랩튼)의 도움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말리의 심정을 짐작해 보는 것은 전근대적 식민사관스러운 생각이려나?
그러나 밥 말리의 전성기는 10년도 채 가지 못한다. 1981년 폐와 뇌에 흑생종이 퍼져 그만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말리의 죽음에도 음모론이 있다. 과격하고 영향력 강한 말리를 CIA가 암살했다는 것이다. '과격한' 존 레논이 암살당하고 1년도 채 안 되어 '더 과격한' 밥 말리가 죽었으니 이상하기는 했을 것이다. 36살 한창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그의 죽음은 레게 팬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고, 심지어는 그가 여러 여자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수많은 아이들의 유산 배분 문제까지 관심거리가 되었다. 말리의 공식적인 아이만 12명, 아버지가 밥 말리라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합치면 20명에 육박한다. 그것 참, 이런 것을 보고 '영웅은 호색'이라고 해야 하나?
말리의 죽음, 그 이후
1981년 5월 11일 마이애미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 말리는 임종 직전 아들 지기(Ziggy) 말리에게 유명한 유언을 남긴다. "인생은 돈으로 살 수 없다(Money can't buy life.)" 1999년 『타임』지는 밥 말리와 웨일러스의 앨범 《Exodus》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꼽았고, 2001년 그래미는 말리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다.
《Catch A Fire》
1. Concrete Jungle
2. Slave Driver
3. 400 Years
4. Stop That Train
5. Baby We've Got A Date (Rock It Baby)
6. Stir It Up
7. Kinky Reggae
8. No More Trouble
9. Midnight Ravers
《African Herbsman》
1. Lively Up Yourself
2. Small Axe
3. Duppy Conqueror
4. Trench Town Rock
5. African Herbsman
6. Keep on Moving
7. Fussing and Fighting
8. Stand Alone
9. All in One
10. Don't Rock The Boat
11. Put It On
12. Sun is Shining
13. Kaya
14. Riding High
15. Brain Washing
16. 400 Years
《Burnin'》
1. Get Up, Stand Up
2. Hallelujah Time
3. I Shot The Sheriff
4. Burnin' and Lootin'
5. Put It On
6. Small Axe
7. Pass It On
8. Duppy Conqueror
9. One Foundation
10. Rastaman C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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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의 음반과 함께 즐거운 음악의 여정,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음반 40장과 그 뮤지션들에 대한 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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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밥 말리의 3연작 《Catch A Fire》, 《African Herbsman》, 《Burnin'》 – 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권오섭,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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