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중국에서 천수백 년에 걸쳐 산스크리트 원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경전은 6천~7천에 이르고, 번역자의 수도 약 2백 명에 이른다. 그 중 뛰어난 번역자로는 5세기 초의 구마라집(344~413), 6세기 중엽의 진제(499~569), 7세기 중엽의 현장, 8세기 중엽의 불공(705~774)을 들수 있다. 이들을 4대역경가(四大譯經家)라고 한다. 이 중 많은 경전을 번역한 이는 현장과 불공이지만, 중국 · 한국 · 일본의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구마라집의 번역이다.

구마라집 이전에도 많은 경전이 번역되었지만 온전한 번역이 아니었다. 그가 번역하고 강의와 주석을 함으로써 불교의 진수가 중국에 전해졌다. 구마라집은 ⓢkumārajīv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동수(童壽)라고 번역한다. 줄여서 나집(羅什)이라 한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구자국(龜玆國, Kuchar)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구마라염(鳩摩羅炎)은 인도 대신(大臣)의 아들이었으나 출가해서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우연히 구자국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나라 왕의 누이동생 집(什, jīva)이 인도에서 온 구마라염을 보자 첫눈에 반해 그와 결혼했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구마라집이다. 구마라집의 집은 어머니의 이름이다. 나집이 7세 되던 해,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출가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편력하던 중 계빈국(罽賓國)에서 반두달다(槃頭達多)에게 초기경전을 배우고, 구자국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소륵국(疏勒國)에서 《아비달마(阿毘達磨)》의 여러 논서와 초기경전을 배웠다. 또 사차국(莎車國)의 왕자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에게 《중론》 · 《백론(百論)》 · 《십이문론》을 배웠다.

20세에 구자국의 왕궁에서 구족계를 받고 사원에서 여러 대승경론을 연구했는데, 그의 학문적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382년, 전진왕 부견이 장군 여광(呂光)에게 구자국을 정벌토록 하고 구마라집을 데려오게 했다. 여광은 구자국왕을 죽이고 그곳을 정복한 후, 구마라집을 데리고 전진으로 돌아오던 중 양주(涼州)에서 부견이 요장(姚萇)에게 피살되고 전진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여광은 곧바로 양주를 평정하고 그곳에 후량(後涼)을 건국했다. 구마라집도 그곳에서 16~17년 동안 머물렀다.

요장의 뒤를 이어 후진(後秦)의 왕이 된 요흥(姚興)은 401년 5월에 군사를 후량에 파견하여 구마라집을 데려오게 했고, 그 해 12월 20일에 장안에서 구마라집을 맞이했다. 요흥은 구마라집을 국사로 예우하고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에서 경전을 번역하게 했다. 그는 12년 동안 《대품반야경》 · 《법화경》 · 《금강경》 · 《유마경》 · 《아미타경》 ·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 ·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 《대지도론》 · 《성실론(成實論)》 · 《중론》 · 《십이문론》 · 《백론》 · 《십송률》 등 35종 294권을 번역했다.

현장은 당의 승려로,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출신이고, 성(姓)은 진(陳), 이름은 위(褘)이다. 13세에 낙양 정토사(淨土寺)에 출가한 후, 낙양 · 장안 · 성도(成都)에서 《열반경(涅槃經)》 · 《구사론(俱舍論)》 ·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배웠다. 그는 한역의 경론에 만족하지 않고 산스크리트 원전을 연구하기 위해 627년에 혼자 장안을 출발하여 인도 유학을 떠났다.

630년에 마가다 국의 나란타사(那爛陀寺)에 이르러 5년 동안 계현(戒賢, ⓢśīlabhadra 529~645)에게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여러 논서를 배우고 산스크리트 원전들을 열람했다. 635년에 나란타사를 떠나 동인도에서 남인도 · 서인도를 순례하고 638년에 나란타사로 돌아왔다. 641년에 귀국길에 올라 645년 1월 장안에 도착했는데, 그가 가지고 온 산스크리트 원전의 경 · 율 · 논은 657종에 이른다. 645년 2월에 고구려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낙양에 있던 태종(太宗)을 알현하고 장안으로 돌아와 홍복사(弘福寺)에서 번역에 착수했다.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등을 번역하고, 태종의 칙명으로 《대당서역기》를 저술했다. 그 후 홍복사 · 대자은사(大慈恩寺) · 옥화궁(玉華宮)에서 《해심밀경(解深密經)》 · 《유가사지론》 · 《섭대승론본(攝大乘論本)》 · 《순정리론(順正理論 )》 · 《구사론》 · 《성유식론》 · 《변중변론(辯中邊論)》 ·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75종 1,335권을 번역했다. 옥화궁에서 63세로 입적했는데, 《성유식론》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문하에서 법상종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