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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밀라노의 야심가 로도비코와 나폴리의 아라곤 왕가 사이의 불화를 틈타 나폴리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탈리아로 남하했다(→ 이탈리아 전쟁).
샤를의 침입은 피렌체에서 프랑스와 동맹관계의 공화정 수립을 외친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반란을 가져왔을 뿐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이후 잇따른 외세 개입의 서곡이 되었다. 샤를의 뒤를 이어 루이 12세가 나폴리에 개입,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와 함께 나폴리 분할에 합의했으나 곧 프랑스와 스페인의 불화로 프랑스인은 추방되고 페르난도에 의해 시칠리아와 나폴리가 재통합되었다(→ 양시칠리아 왕국). 외세를 등에 업고 세력의 확장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는 프랑스군의 지원을 얻어 로마냐 정복에 나섰으나 교황이 급사함으로써 국가 수립에는 이르지 못하고 정복지를 교회에 남겼다. 다음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프랑스·스페인·독일과 캉브레 동맹을 맺어 베네치아에 대항, 교황령의 확대에 성공했으며 이후 교황령은 이탈리아 정치에서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이어서 그는 프랑스 세력의 축출을 위해 영국·스페인·스위스 등과 신성동맹을 맺고 프랑스군과 싸웠으나 이즈음 이탈리아 땅에는 프랑스 대신 스페인 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1521∼44년 이탈리아 전쟁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카를 5세가 발루아 왕가의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굴복시켜 이탈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권에 떨어지게 되었다. 1559년에는 카를의 아들이며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가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이탈리아의 주요지역에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확립함으로써 이탈리아는 독립을 잃었다. 그나마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베네치아도 신항로의 발견으로 무역상의 우위를 잃고 해외 식민지도 투르크에 빼앗겨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지중해 무역의 상대적 쇠퇴는 스페인 지배 시대 이탈리아의 다른 대(大)상업도시에도 그늘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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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이탈리아에 대한 열강의 진출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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