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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이후 나폴레옹의 등장은 이탈리아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계몽군주의 미온적 개혁에 반발하고 있던 자코비노(이탈리아의 자코뱅파)들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환호하고 각지에서 혁명 이념의 전파에 앞장섰다.
1792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사르데냐를 필두로 이탈리아 각지의 지배자들은 대(對) 프랑스 동맹에 가담했다. 그러나 나폴레옹군은 1796년 이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에 침공, 중북부의 소국들을 묶어 치스파다나라는 혁명공화국을 세우고 밀라노에는 치살피나 공화국을 세웠다. 한편 각지의 자코비노들을 선동, 소란을 일으켜 이를 구실로 개입하는 수법으로 제노바·베네치아·피에몬테 등을 손에 넣었다. 또 나폴레옹군에 의해 로마에는 괴뢰정부가 서고 교황은 유배되었다.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4세가 저항, 프랑스군과 일전을 벌였으나 패배하고 파르테노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소수의 급진적 지식인을 제외한 이탈리아 민중은 점령군의 횡포와 교황의 유배에 적대감을 품었다. 특히 농민은 공동체의 전통적 권리를 제한하는 토지 부르주아지의 세력 확대에 반발했다. 곳곳에서 반프랑스·반혁명의 소요가 일어났다. 특히 남부에서는 무장대의 반란이 극심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중에 결성된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은 한때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이탈리아를 장악하는 듯했다. 그러나 1800년 원정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은 브뤼메르 쿠데타로 통령정부를 수립하고 제2차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다. 이 제2차 원정군은 약탈을 삼가해 민심을 누그러뜨리고 봉건제 폐지, 나폴레옹 법전의 도입, 행정개혁, 종교의 자유 등을 추진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직후, 롬바르디아인들은 코르시카 출신의 이 황제를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이탈리아의 상황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고 나폴레옹을 왕으로 하는 이탈리아 왕국을 수립했다(1805). 나폴레옹 체제에서 산업의 싹이 트고 부르주아지의 입장이 강화된 한편, 반도 전체에 걸쳐 시행된 공통의 행정·군사·교육 제도는 이탈리아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해 이후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대두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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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의 등장과 이탈리아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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