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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대제는 종래의 공작 대신 백작을 중심으로 지방행정을 개편하고 이들에게 토지와 특권을 수여함으로써 봉건제의 기틀을 다졌다. 843년에는 로타르 왕과 두 아우 사이의 베르됭 조약으로 영토가 분할되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원형이 이루어졌다.
887년 카롤링거 왕조가 막을 내린 후 제후들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그치지 않았으나 이를 평정한 독일 왕 오토 1세는 샤를마뉴 대제 시대의 부흥을 꿈꾸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임을 선포했다(962). 11세기 후반에는 성직자의 서임문제를 둘러싸고 교황과 황제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공격해 로마를 점령하는 사태를 낳기도 했다.
한편 9세기초부터 아랍인이 지배하고 있던 시칠리아에는 이즈음 노르만족이 밀고 들어와 1130년 시칠리아와 반도 남부를 통일해 시칠리아 왕국을 세우고 그리스·아랍·노르만의 요소가 융합된 강력한 왕권제도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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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중세 이탈리아의 확립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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