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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2

욕망에 대하여

벨라스케스 ‘디오니소스’와 에우리피데스 ‘바카이’

무분별한 욕망의 상징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Dionysos)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통틀어서 무분별한 인간 욕망을 상징하는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다. 라틴 이름인 바쿠스(Bacchus)로도 불린다. 술과 황홀경의 신이어서 수많은 화가가 광기 어린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서양화가들은 디오니소스를 그린 작품 하나 정도씩은 갖고 있다. 쾌락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생각이 지배하던 서구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신화의 옷을 빌려 숨겨진 욕망을 표현했고 사람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을 구했다.

벨라스케스의 〈디오니소스〉도 다른 화가와 마찬가지로 술 마시는 광경을 담았다. 디오니소스 그림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포도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머리에 썼다.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에게 포도나무 관을 씌워주는 중이다. 옆의 두 남자가 그에게 건넬 술잔을 들고 있다. 추종자를 받아들이는 행사가 마치 기독교의 세례 장면 같다. 주변에는 농부로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남성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디오니소스

벨라스케스, 1629년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를 담은 셀 수 없이 많은 그림 중에서도 유독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확 눈길을 끈다. 화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재창조되었지만 대체로 광란의 축제이거나 음탕한 수작을 부리는 망나니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추종자들도 이미 취할 대로 취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술주정꾼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친근함을 넘어서 진지함과 경건함마저 풍기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추종자들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박한 농부의 모습 그대로다. 술잔도 귀족이나 쓸법한 크고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농부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초라한 그릇과 컵이 전부로, 가난하고 투박한 농부의 소박하고 즐거운 술잔치로 그렸다. 신분과 관계없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표현한 벨라스케스의 특징이 묻어난다. 그는 대표작인 〈궁녀들〉에서 보이듯이 왕궁 안에서 궂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시녀와 광대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잊지 않았다.

디오니소스는 출생과 성장 과정 자체가 심상치 않다. 테베 왕의 딸 세멜레가 제우스의 아이를 잉태하자 격분한 헤라는 계략을 꾸며 그녀를 제우스의 불길에 타 죽게 만든다. 제우스는 뱃속의 아기를 자기 허벅지에 넣어 달이 찰 때까지 키운 뒤 아이를 낳고 세멜레의 동생에게 맡겼다. 헤라가 동생을 괴롭히자 다시 아기를 님프들에게 키우도록 했다.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책략 때문에 미치광이로 지내기도 했다. 고난에 찬 세월을 보내던 중에 포도 재배법과 과즙을 짜내는 법, 포도주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복잡한 성장 과정만큼이나 그를 가리키는 표현도 많고 요란스럽다. 대부분 거침, 시끄러움, 절규, 변덕, 광기 등 즉흥적, 격정적 상태를 반영한다.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생겨났는데, 추종자들은 집을 버리고 무리를 지어 산과 들을 헤맸다. 술을 마시고 황홀경 속에서 밤의 축제를 열었으며 사슴 가죽 옷을 입고 담쟁이덩굴 관을 쓰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들은 포도 덩굴로 장식한 지팡이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춤을 췄다. 때로는 산 짐승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기도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자나 철학자들은 디오니소스를 욕망과 광기의 화신으로 여겼다.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의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바카이》는 그 광기를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 경배를 금지한다. 현인이 신과의 반목을 피하는 것이 파멸을 면하는 길이라고 충고하지만 디오니소스를 잡아 심문하고 옥에 가둔다. 디오니소스는 사슬을 풀고 나와 계략을 세워 펜테우스를 비극의 길로 유인한다. 펜테우스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축제를 훔쳐보다가 들키자 다급하게 디오니소스 추종자 인 어머니에게 자기 신분을 밝혔지만 그녀의 눈에 펜테우스는 동물로 보일 뿐이다. 그녀는 아들의 사지를 제일 먼저 찢어낸다. 그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골짜기에 던져졌고, 어머니는 자식의 머리를 들고 성으로 돌아온다. 제정신이 들어 아들을 죽인 사실을 깨닫자 경악하며 디오니소스를 비난한다. 디오니소스는 이들 가족에게 테베를 떠나도록 명한다.

욕망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

당시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들도 디오니소스 숭배는 영혼을 갉아먹는 위험한 풍조로, 쾌락과 욕망이 영혼을 타락시키고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욕망에 대한 이성의 투쟁을 통해 육체의 사슬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는 더욱더 욕망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여겼다. 최후의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으로 평가받는 단테(Dante)조차 욕망에 대해서는 참으로 인색해서 욕망을 지옥에 이르는 길로 이해했다.

《신곡》은 단테 자신이 지옥, 연옥, 천국을 차례로 겪으면서 구원을 모색하는 내용이다. 지옥과 연옥에서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길을 인도한다. 연옥의 꼭대기에서 만난 연인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국에 이르러 삼위일체의 신비를 맛본다. 그에게 구원이란 악의 상태에서 선의 상태를 향한 기나 긴 도정이다. 오직 신에 의한 구원만을 인정하던 중세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남녀 간의 숭고한 사랑을 통해 인간에 의한 구원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에 기초한 세계관이라는 점에서는 중세의 통념, 보다 정확하게는 그리스를 출발점으로 하는 서구적 사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들라크루아의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신곡》 내용을 형상화했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의 도시 디스로 가는 흙탕물을 건너는 장면이다. 붉은 두건을 쓴 남자가 단테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끄는 이가 베르길리우스다. 등을 드러낸 채 노를 젓는 남자는 죽은 영혼을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뱃사공 플레기아스다. 흙탕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배 주위로 지옥의 저주받은 자들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몰려든다.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려는 망령들의 얼굴이 고통과 절망으로 온통 일그러져 있다. 배를 드러낸 채 기진맥진해 있거나 배 뒷전을 물어뜯고 혹은 서로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모습이 처참하다. 멀리 불타오르는 성벽은 영원히 타오르는 불길로 망령들에게 고통을 주는 지옥의 도시다.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망령과 건너편 지옥 도시에서 불길에 타는 망령의 무시무시한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들라크루아, 18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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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보들레르(Baudelaire)가 “르네상스를 잇는 마지막 위대한 화가이자 근대의 첫 화가”라 칭한 것처럼 바로크, 신고전주의 흔적과 새로운 장을 연 낭만주의 미술의 분위기가 섞여 있다. 미켈란젤로와 루벤스 등 그가 흠모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대가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근육으로 꿈틀거리는 인체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벽화, 역동적 화면 구성은 바로크 시대의 루벤스를 보는 듯하다. 그리스 조각처럼 정형화된 동작을 취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에서는 신고전주의의 영향도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낭만주의적 특징이 가득한 강렬한 색채,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담아냈다.

《신곡》에 의하면 단테는 배에 오르려는 망령 중 하나가 피렌체 출신의 거만하고 화를 잘 내는 귀족임을 알아보고 “눈물과 슬픔을 머금고 너 저주받은 영혼은 여기 남아 있어라.”라고 외친다. 베르길리우스도 “지금 저 위에서 위대한 자라 여겨도 여기서 진흙 속의 돼지처럼 무시무시한 오욕을 남기고 머무를 자 얼마나 많은가.”라고 한다. 얼마 안 되어 흙투성이 무리에게 그 망령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고 단테는 신을 찬미한다. 단순히 거만하고 화를 잘 내는 인물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옥의 흙탕물에 잠겨 있다가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러니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던 사람들의 운명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 점의 빛도 없는, 풍랑의 바다처럼 울부짖는 바람이 부는 곳에 왔다. 색욕자들이 영원을 보내는 곳이다. 죄인들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바람에 무자비하게 휩쓸려 다니며 일탈에 대한 죄의 값을 치른다. 영원히 쉬지 않는 태풍은 영혼을 집어던지고 휘두르며 돌리고 치며 괴롭힌다. 당신은 쾌락 충족을 위해 이성을 버렸으며, 따라서 이곳으로 떨어질 운명이다. 클레오파트라와 트로이의 헬레나가 당신과 함께한다.” 제2지옥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애욕의 죄를 지은 자들의 지옥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태풍의 소용돌이는 채찍이 되어 휘갈긴다. 죄인들은 고통받으며 현세에서 누린 애욕의 대가를 치른다.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클레오파트라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인 미녀 헬레나가 고통의 동반자다.

지옥의 존재는 기독교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유일신체제에서 신을 믿지 않는 자나 이교도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필요했는데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가 지옥의 존재였다. 지금도 가끔 길에서 ‘믿음 천당, 지옥 불신’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같은 이치다. 심지어 지옥의 첫 번째 단계에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다. 왜 인류의 성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지옥을 서성이고 있을까? 단테는 “이곳에 있는 자들은 위대한 철학자, 작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 등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선한 이교도들”이라고 한다. 아무리 착하게 살고 덕을 베풀었어도 믿음이 없으면 지옥으로 간다. 단테는 미안했는지 “이곳에 형벌은 없으며, 분위기는 평화로우면서도 슬프다.”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슬프다”는 말을 굳이 덧붙임으로써 이들과 거리를 둔다.

그나마 이들은 쾌락을 자제했기에 적어도 형벌은 없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았어도 쾌락과 욕망을 추구하면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스스로 성적 욕망과 무관하게 산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애욕 이외에 다른 욕망을 추구하면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세 번째 원에서 당신은 끝없는 비와 저주와 추위의 중압감에 둘러싸일 것이다. 이곳은 탐식자들이 오물이 섞인 더러운 잡탕 속에 뉘인 채 처벌받는 곳이다. 당신은 도를 넘게 먹고 쓰고 낭비했으므로, 차갑고 더러운 비가 내리는 아래 악취 나는 진흙 속에 누워 있는 다른 영혼과 함께할 운명이다. 세 개의 머리와 붉은 눈을 가진 잔인하고 포악한 개가 죄인들에게 으르렁대고 이빨과 발톱으로 살을 찢는다.” 그들은 세 번째 단계의 지옥에서 신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탐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다. 탐욕 때문에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빼앗거나 상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식탐이나 낭비하는 습관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카이》

단테가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서양의 인식체계에서 쾌락과 욕망은 배척 대상이었다. 특히 서양 철학사는 육체적 정념에 대항하는 이성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신과 육체, 이성과 욕망의 이분법적 분리 위에 서 있었다. 신학이 철학을 지배하던 중세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승리를 향한 진군은 서양 주류 철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디오니소스 신화에서도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합리적 사고로서의 이성을, 디오니소스는 육체적 감성과 욕망을 대표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카이》에는 펜테우스와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현인 테이레시아스의 논쟁이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펜테우스: 이 땅에 새로운 재앙이 닥쳤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 여자들이 집을 뛰쳐나가 디오니소스인가 무언가 하는 돼먹지 않은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미친 춤을 춘다고 들었습니다. 술독을 가운데 두고 한껏 취한 뒤에 하나둘씩 밖으로 빠져나가 성스러운 의식을 가장하고 남자와 애욕을 즐긴다고 들었습니다. ··· 그들을 빠짐없이 결박해 추잡한 놀음을 끝장낼 생각입니다.

테이레시아스: 젊은 양반, 인간 세계의 질서를 이루는 두 개의 원리가 있소. 하나는 어머니이신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로서 우리에게 빵을 공급해 주는 신이라오. 두 번째는 처녀의 몸에 잉태하여 빵에 대칭되는 술을 내리시는 신이오. 그 신은 우리를 육체의 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신이오. 포도에 흠뻑 취하고 나면 졸음이 엄습하고 하루의 피곤한 일과를 말끔히 잊게 해주니 일상생활의 번뇌를 치료해주는 그 이상의 약속이 어디 있겠소. 인간이 권력에 의해서만 통치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오. 하나의 확실한 것만으로 전체가 다스려지지는 않는 법이오. 그러한 생각은 병든 생각일 뿐 참된 지혜는 아니오. ··· 여인들을 방탕하게 하는 것은 디오니소스 신이 아니오. 타락한다면 그것은 그네들의 본성 탓일 뿐이오. 광란의 무리 가운데 가장 도가 지나친 자들 속에서라도 진정 마음이 정숙한 이는 결코 타락하지는 않을 거요.

펜테우스가 보기에 욕망 표출은 미친 짓이고 재앙일 뿐이다. 이성 부재 상태에서 나타나는 야만적 행동이기 때문에 국가 질서 유지를 위해 통제하고 억눌러야 할 대상이다. 다른 종족에서 벌어지는 디오니소스 의식은 “그들이 그리스인보다 훨씬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리스인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로 재앙을 막아야 한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펜테우스의 분노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 너희 머리를 흐리게 하였는가? 놋쇠 바라를 치고, 굽은 뿔피리 불고, 마술로 사기 치고, 여인들이 소리 지르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고 몸은 더럽구나. 전장에서 북 치고 나팔 불고, 칼을 휘두르고 창이 눈앞에 번쩍일 때 함께 있던 용사들이여, 이제 이 모든 소동에 그대들이 놀라는가? 먼바다를 항해하여 여기 도시를 세우고, 방랑하는 신을 고향으로 모셔온 노인들이여, 한바탕 싸움도 없이 포로가 된 당신을 나는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이성이다. 정신적 긴장과 전쟁을 통해 국가를 세웠는데, 욕망과 축제가 모든 성과를 무너뜨리려 한다. 투구 대신 화환, 무기와 전술 대신 향수와 술로 테베를 접수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펜테우스는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의 문제의식과 상당히 일치한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모든 악의 근원을 욕망에서 찾는다. “육체와 더불어 있는 동안, 영혼이 좋지 못한 것과 섞여 있는 동안,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하네. ··· 그것은 연정, 정욕, 공포, 공상과 끝없는 어리석음으로 가득하게 하여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것일세. 그리고 전쟁이나 분쟁이나 싸움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육체 때문에, 육신의 정욕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전쟁은 돈을 사랑함으로써 생기고, 돈이란 육신을 위해서 필요하기에 결국 육체적 욕망이 근본 원인이다. 욕망이라는 장애물이 철학의 시간을 제거하고, 무언가 생각하려 해도 탐구에 개입하여 혼란과 소동을 일으키고, 눈을 흐리게 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육체와 상관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으며 욕망에 젖지 말아야 한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에 가장 가깝다고 여긴 스파르타야말로 욕망과 전투를 벌이는 선봉대였다. 스파르타 시민은 음주도 경멸했다. 고대 그리스 국가 중 디오니소스 축제를 즐기지 않은 곳은 스파르타뿐이었다. 술은 정복지의 주민인 노예에게나 줬다.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데카르트(Descartes)도 비슷한 발상 위에 서 있다. 《방법 서설》에서 “나의 세 번째 준칙은 운명을 이기느니 차라리 나 자신을 자제하고, 세계의 질서를 바꾸느니 차라리 나의 욕망을 바꾸려고 항상 애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정념론》에서는 “의지로써 매우 쉽게 정념을 물리치고 그 정념에 동반되는 육체의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가장 강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 고대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이나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 모두 욕망에 대한 이성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코르넬리스 데 보스(Cornelis de Vos)의 〈디오니소스의 승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구제 불능의 광란 현장이고 국가 질서를 와해시키는 위험한 불장난 광경일 뿐이다. 마차 위에 거만한 모습으로 앉은 디오니소스는 매일 밤 반복되는 쾌락으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비만한 체구다. 디오니소스와 추종자들 모두 옷을 벗었거나 반쯤 풀어헤쳤다. 나귀를 타고 있는 사람은 이미 상당히 취한 듯 고개를 숙였고, 반대편에서는 북을 치고 탬버린을 흔들며 미친 듯이 춤을 춘다. 펜테우스나 플라톤이 보기에 이는 질서가 무너진 상태, 극도의 혼돈과 방종이 지배하는 현장이다. 여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개인이나 사회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디오니소스의 승리

데 보스, 16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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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이레시아스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세계의 질서는 빵과 술의 원리가 같이 맞물려 있어야 한다. 빵은 이성의 원리다. 농사는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작물을 가꾸는 등 장시간 체계적 과정을 거쳐야 수확에 이른다. 농사는 기후에 민감하므로 천문학 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거대한 강물을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통치체제로 국가가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은 심사숙고와 인내를 동반한다. 하지만 인간은 빵의 원리로만 살 수 없다. 육체의 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욕망의 원리가 살아나야 한다. 피곤한 일과를 말끔히 잊게 하고 일상생활의 번뇌를 치료해주는 술과 춤, 노래가 있어야 한다. 이성에 치중된 사고는 오히려 병든 생각일 뿐 참된 지혜가 아니다.

〈디오니소스의 승리〉에서 술 취한 사람의 흐트러진 몸짓만 보인다면 자신의 관찰력 부족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자세히 보면 흑인이 두 손을 치켜들고 환희에 찬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서구 사회에서 흑인은 노예를 상징한다. 디오니소스와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여성처럼 추종자의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점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면서 억압된 삶을 살았다. 여성은 노예와 더불어 정치, 사회 활동이 금지되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는 신분적 억압과 함께 집 안팎에서 고된 노동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이나 노예가 많이 참여했다.

고대국가는 씨족이나 부족 공동체를 힘으로 제압한 위에 성립한 강제 권력이었고 또한 가부장적 체제였다. 국가권력과 가부장제는 모두 자연 발생적 감정이나 욕망을 거세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가장 큰 적은 기존의 혈연 공동체였을 것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 엄청난 세월 동안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온 공동체는 쉽사리 인위적 국가체제에 예속될 수 없었다. 난혼에 기초한 모계 전통 역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폭력적인 해체 과정이 필요했다. 혈연 공동체나 모계 전통은 자연적 감정과 관계에 기초하고 있어서 국가를 수립하려는 지배 세력으로서는 일체의 감성과 욕망 그리고 축제를 억압하고 이성과 제도로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과 노예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 의식은 억압적 삶을 강제 받았던 노예와 여성이 현실을 거부하는 탈출구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마음껏 마시고 춤을 추면서 억눌렸던 내면의 원시적 본능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광기나 착란이 아니라, 구원과 해방을 향한 열망의 표출이었다. 여성과 노예에게 디오니소스는 ‘구원하러 오신 이’였다. 《바카이》에서 이들은 “어서 오소서, 그대 구원자여!”라거나 “우리는 구원 받았도다! 우리는 모두 혼자였고 버려져 있었건만, 당신이 오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외친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 의식은 인간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 공동체 사회로의 지향을 통해 현실의 억압에 대한 도전의 의미였다. 집을 떠나 숲에 머물며 축제를 벌이는 행위라든가 날짐승을 잡아먹는 행위는 과거 평등하던 수렵과 채취사회에 대한 향수와 지향을 상징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라든가 말리노프스키의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을 보면 원시 부족은 밤이 되면 자주 축제를 벌인다. 수렵과 채취 생활에서 재산 축적은 별 의미가 없다. 그날의 수확물을 놓고 벌이는 축제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생활이 곧 일상의 삶이자 행복이다.

디오니소스 의식은 그 연장선에 있다. 제우스로 대표되는 힘과 권위 그리고 수직적 위계구조,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균형, 조화, 절제, 질서, 이성, 지식 등이 그리스 지배 세력의 사유이자 이데올로기였다면 디오니소스는 해방을 열망하는 피지배 계급의 사유방식을 보여준다. 디오니소스가 도취, 극단, 무질서, 본능, 광란, 환상, 열광의 상징이 된 것은 이성을 강조한 지배 세력이 악의적으로 이미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고 아폴론이 그의 뒤를 잇는 신이었음에 비해 디오니소스가 신의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드물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인간에게 욕망의 자리를 찾아주려 애쓴 철학자도 있다. 에피쿠로스(Epikuros)는 영혼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기에 생활 속에서 삶을 즐기기 위해 애써야 함을 강조한다. ‘행복은 지상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은 한정된 의미에서만 긍정적이다. 그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것은 계속되는 주연이나 질탕한 잔치도, 젊은 남정네와 여인의 향락도, 떡 벌어지게 차려진 식탁 위의 요리도 아니다. 행복은 선택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관찰하고 헛된 생각으로 영혼에 큰 혼란이 일지 않도록 해주는 번뜩이는 이성으로 얻어진다.”라고 함으로써 결국 이성 우위의 편에 선다.

니체(Nietzsche)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적 사고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 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원래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적 이성과 디오니소스적 감성이 잘 조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합리성과 질서를 중시한 소크라테스 이후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무시하고 죄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냉철하고 건조한 이성만을 중시했을 뿐 열정과 도취, 쾌락이 삶에 주는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유럽 문명이 병들고 타락한 이유는 아폴론적 이성에만 집착했기 때문이고, 잃었던 생명력을 다시 찾으려면 역사 속에서 잊혀왔던 디오니소스적 자유로움과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니체의 주장은 의미심장하게 곱씹을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Freud)에 와서야 욕망을 그 자체로서 접근하고 규명하려는 본격적 노력이 전개된다. 그는 《꿈의 해석》에서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무의식의 세계이며, 무의식은 꿈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그 때문에 영혼과 육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실질적으로 무효가 된다. 영혼이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욕망 위에 서 있다. 인간의 정신생활은 무의식적 욕망에 연결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 스스로 욕망을 무조건 죄악이나 낭비로 바라보는 통념적 사고에 의문부호를 찍어봐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욕망을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을 가장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 어쩌면 우리는 욕망의 지나쳐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감옥에 갇혀서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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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Velázquez, 1599~1660년)
에스파냐의 화가로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법을 이용해 경건한 종교적 주제를 자주 그렸고, 민중의 빈곤한 일상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젊은 나이에 궁정화가가 되어, 평생 예우를 받았으며 나중에는 궁정의 요직까지 맡았다. 주요 작품으로 〈궁녀들〉, 〈왕녀 마리아 안나〉, 〈왕녀 마르가리타〉, 〈직녀들〉 등이 있다.

박홍순 집필자 소개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펼쳐보기

출처

미술관 옆 인문학 2
미술관 옆 인문학 2 | 저자박홍순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미술관 옆 인문학 2: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만나다》는 인간의 본성에서 문명의 충돌까지 삶과 죽음에서 사랑과 욕망까지, 성찰의 인문학, 상상의 인문학을 물으며 인문학..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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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욕망에 대하여미술관 옆 인문학 2, 박홍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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