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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2

죽음에 대하여

뵈클린 ‘죽음의 섬’과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

뵈클린의 대표작 〈죽음의 섬〉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언뜻 보면 그냥 어둡고 음울한 느낌의 풍경화지만, 세밀하게 관찰하고 전체를 종합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게 된다. 전체 배경은 어둡고 침침한 하늘이 맡았다. 섬의 중앙은 짙은 나무로 덮여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처럼 보인다. 그 앞으로 으슥한 느낌의 섬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작은 배가 보인다. 그런데 이 배도 자세히 보면 심상치 않다. 시신을 안치하러 가려는 듯, 하얀 소복을 입은 사람과 하얀 천에 덮인 관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통해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배에 탄 흰옷의 인물, 혹은 관 속의 시신이 우리일 것이다. 살아가는 일상이 죽음과 같은 고통의 연속일 수 있다. 관을 실은 배는 삶의 순간 속에서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맞닥뜨려야 하는,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우울함과 음산함은 생에 대한 집착이 허무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죽음의 섬

뵈클린, 1880년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뵈클린의 그림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도덕적 메시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도 자연은 작품의 한 구성 요소로 자주 등장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자연은 주로 등장인물 강조를 위한 배경 성격이 강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폐허가 된 도시나 무덤 등의 배경이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는 도덕적 상징 역할을 했다.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태풍, 화재, 눈사태 등 대자연의 재앙이 자아내는 두려움을 통해 숭고의 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18세기 말 독일 초기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광대하고 무한한 자연을 통해 숭고함과 정신적 고양을 추구함으로써 근대 철학이 추구한 보편 이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뵈클린으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주의로 접어들면서는 풍경이 개인의 내밀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대자연의 위용에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함과 보편적 정신보다는, 개인의 마음속에 숨겨진 공포나 열정 등의 감정과 심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개별성, 상징성의 강화로 나아간다. 〈죽음의 섬〉은 어둡고 침침한 풍경을 통해 절망적이고 우울한 염세적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뵈클린은 죽음을 그린 화가다. 〈죽음의 섬〉도 같은 주제와 형식으로 다섯 점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다. 다른 작품에서도 죽음을 친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자화상에도 죽음의 선율을 들려주는 사신을 등장시킨다. 혹은 또 다른 대표작인 〈페스트〉처럼 풍경을 통한 상징을 넘어 무차별적인 죽음의 위협을 직접 묘사하기도 한다. 〈페스트〉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무시무시한 모습의 용을 타고 골목을 날아다니는데, 낫을 휘두르며 곡식을 수확하듯이 닥치는 대로 생명을 거둔다.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하여 서유럽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3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의 공포를 담아, 자연의 위력 앞에서 결국 무력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인간의 불안한 운명을 보여준다. 그가 죽음의 문제에 천착한 데는 개인의 아픈 경험이 상당히 작용했다. 화가로서 출세작이 없어 극도로 가난에 허덕이는 과정에서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등 각종 질병으로 부인과 여섯 명의 자녀와 사별한 경험이 죽음에 대한 공포 형성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죽음의 문제를 응시한 뵈클린의 그림은 충족 불가능한 욕구 때문에 결핍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을 강조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문제의식을 잘 반영한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이성주의가 강조한 조화와 균형은 허구이고 이 세계는 무질서로 가득하다. 이런 무질서에 의한 고통의 극적 귀결이 죽음이었다. 인간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철학은 다만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부분적으로라도 평정을 유지하는 삶이 유일한 위안이다. 뵈클린의 그림은 죽음을 매개로 일상적 공포와 고통이라는 운명을 표현하되, 죽음에 대한 격렬한 부정이 아니라 수용을 통해 일시적 평정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뵈클린 스스로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까지도 놀라운 눈을 뜰 만큼 고요와 침묵의 감명을 틀림없이 받을 것”이라고 했다. 고요와 침묵은 공포와 고통의 긍정적 수용으로 얻어지는 평정의 순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싫거나 낯선 표현을 찾으라고 한다면 손가락에 꼽을 단어가 죽음이다. 보통 기차여행을 할 때는 출발부터 도착할 역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마지막 역인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부정하려 한다. 어찌 보면 죽음이라는 주제는 미술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고대 미술은 주술이나 종교 행위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종교는 인간이 맞닥뜨린 죽음의 문제에서 시작된 사고 작용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무수한 화가에 의해 죽음이 미술의 소재로 쓰였다. 서양미술에서 예수의 죽음은 회화나 조각의 단골 소재였고, 전쟁이나 신화를 다룬 작품에서도 죽음은 친숙한 소재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죽음을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누군가가 죽은 장면을 묘사하거나 아니면 부활 혹은 새로운 환생을 기리는 의미가 보통이었다. 죽음의 ‘확인’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은 아주 드문 편이다.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그렇게 죽음을 응시하면서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죽음이 우리에게 그만큼 가깝고 친근하다는 점을 표현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천년만년 살듯이 생각하는 경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살아가면서 죽음을, 특히 자기 죽음을 가까운 그 무언가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죽음의 문제가 곧 삶의 문제라는 것을, 한순간의 차이이고 한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갈까?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그린 화가로 뵈클린보다는 뭉크(Munch)가 더 먼저 떠오를 것이다. 흔히 그를 절망과 죽음의 화가라 부르기도 한다. 뭉크가 죽음을 가장 밀접한 작품 주제로 설정한 데는 뵈클린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아픔이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뭉크가 다섯 살이었을 때 서른 살의 나이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열네 살에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존재였던 누이도 결핵으로 사망한다. 또 다른 누이동생도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가 어렸을 때 죽었다. 뭉크 자신도 불행한 연애 때문에 생긴 권총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고, 신경 발작으로 평생을 정신병에 시달린다.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난 병이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예술에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죽음은 의식과 무의식 양 측면에서 언제나 뭉크를 괴롭혔으며, 죽음에 대한 일상적 두려움과 공포는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나타났다.

뭉크의 〈병든 아이〉는 결핵을 앓아 죽어가던 누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왼쪽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누나 소피에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슬픔에 젖어 고개를 숙인 이모 카렌의 모습이 보인다. 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핵은 어머니를 앗아간 병이기도 했다. 누이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뭉크를 돌보아주던,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뭉크의 나이가 열네 살이었으니 병마에 시들어가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소녀는 자꾸 감기려 하는 눈꺼풀을 이겨낼 힘도 없어 보인다. 겨우 뜬 눈으로 비탄에 잠긴 이모를 멍하니 바라본다. 소녀나 이모 모두 집 안을 서성이는 죽음의 그림자를 직감하는 듯하다. 침대나 벽도 죽음을 준비하는 듯 음울한 분위기고 방 안의 공기도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뭉크는 그림에 표현된 자신의 슬픔을 아프게 토로한다. “이 그림은 어린 시절, 우리 집안의 일이다.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만이 이 작품 제작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어린 시절의 체험이 도움이 되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어떤 화가도 내가 〈병든 아이〉에서 경험한 것처럼 깊은 슬픔을 작품 주제에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병든 아이

뭉크, 18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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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녀〉는 더 비관적이다. 소녀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포옹한다. 해골은 몸을 뺄 수 없도록 소녀의 등 뒤로 팔을 휘감고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왼쪽으로 솟아오르는 정자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엄마 자궁 속의 모습인지 갓 태어난 모습인지 모를 아기가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괴물이 출생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님을 보여준다. 또한 나체의 여성과 해골의 포옹이 뭉크를 괴롭힌 또 하나의 고민인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조차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뭉크는 라르센이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가정이라는 구속을 꺼렸기에 집요하게 결혼을 요구하는 그녀를 피했다. 권총을 들고 자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는 그녀와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권총이 발사되어 총알이 뭉크의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관통했다. 이 경험이 사랑조차 죽음의 공포와 맞물려 다가오도록 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일상적으로 사로잡힌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다.

죽음과 소녀

뭉크, 18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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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에게 죽음은 일상을 둘러싼 두려움이자 절망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가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베개와 병상과 이불의 나날’이었다. 죽음의 무거운 공기로 가득한 집 분위기가 마치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산파의 역할처럼 자신의 예술을 규정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죽음과 광기가 피할 수 없는 유전적인 것이라고 보았으며, 평생을 극도의 피해의식과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의 삶은 죽음과 함께한다. 여동생,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그들은 죽고 스스로를 죽였고 모든 것이 그렇게 끝났다. 왜? 왜 사는 것인가?” 두려움에 묶인 운명을 저주했고 그림을 통해 절규를 토해냈다. 뭉크의 그림은 어쩌면 프로이트적인 접근으로 볼 때 성장기의 불행이 무의식으로 형성된 것이리라. 그러한 의미에서 뭉크는 뵈클린과 함께 무의식, 내면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화가라 할 수 있다. “예술은 자연에 대립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다만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온다. 예술은 인간의 결정(結晶)에의 충동이다.”라는 생각도 이를 잘 반영한다.

죽음은 미술만이 아니라 문학 · 음악 등 예술 분야 전반에서 나타나는 핵심 주제였다. 죽음에의 두려움을 간접 체험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문학 작품으로 톨스토이(Tolstoy)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존경받는 재판관인 이반 일리치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지적이고 세련되고 활기차고 사교적인 인물이어서 승진 가도를 달렸다. 어느 날 옆구리 통증에서 시작된 병이 점차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에 절규하며 운명을 저주한다. 병이 깊어가자 법원 사람들은 오직 그가 재판관 자리에서 언제 물러날 것인지를 생각한다. 부인은 연금 규모가 줄어들까 걱정이고,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결혼 계획이 엉망이 될까 걱정한다. 하인들은 언제 불편에서 해방될 것인지에만 관심이 쏠린다. 이반 일리치는 주변 반응을 보면서 믿고 있던 신념과 인생관을 송두리째 의심하고 나아가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갈 때쯤 두려움과 고통은 사라지고 죽음이 찾아온다. 다음은 소설 내용 중에 죽음을 대하는 이반 일리치의 생각이 변해가는 주요 대목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줄곧 절망에 빠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 생각에 익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는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어야 한다.’는 삼단논법도 카이사르한테 적용되었을 때는 옳지만 자신한테 적용되었을 때는 타당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것은 죽음뿐이야.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일 리가 없어.” ··· 이제는 가족을 해방시키고, 자신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얼마나 좋고 얼마나 단순한가! 그런데 통증은 어떻게 됐지? 통증은 어디로 가버렸지? 그래 여기 있군.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통증이야 있든 말든 상관 말고 그냥 내버려둬. 그리고 죽음은 어디 있지?’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았지만, 이미 익숙해진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이 없으니까 두려움도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이게 바로 그거였구나!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음도 끝났어. 죽음은 더 이상 없는 거야.”

처음에 죽음을 예감했을 때 이반 일리치는 죽을 수 있다는 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카이사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했지만, 그는 카이사르도 아니고 추상적 인간도 아닐뿐더러, 다른 모든 인간과 완전히 구별되는 별개의 존재였다. 타인 혹은 인류에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인정하지만, 구체적으로 자기 문제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죽음이 현실이 된 순간에도 격렬하게 거부한다.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거부는 곧바로 주변 사람에 대한 증오로 나타난다. 법원 동료는 물론이고 의사, 나아가서는 부인도 의심과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부인의 하얗고 포동포동하고 깨끗한 손과 목,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생기 있게 반짝이는 눈조차도 반감과 증오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거부와 증오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더욱 극심해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바짝 다가온 순간, 죽음을 현실로 조금이나마 인정하기 시작한 순간에 삶을 되돌아보는 문이 열린다. 오르막길 인생이라고 자부했지만 죽음을 앞둔 자신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다.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며 생각되던 일, 즉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미미하거나 아주 가벼운 충동에 불과했음을 느낀다. 그런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고 나머지 직무, 생활, 가족에 대한 약속은 모두 가짜일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끝까지 자신을 변호하려 했지만 결국 변호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죽음을 현실로서 인정하고 인생에 대한 성찰에 도달하자 매 순간 조여오던 고통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두려움과 죽음조차도 끝났음을 느끼면서 숨을 멈춘다.

죽음에 대한 정면 응시와 성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을 갉아먹고 증오를 통해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다가, 죽음을 현실로서 인정하는 순간 이반 일리치에게 성찰과 평안함이 찾아왔다. 죽음 앞에서는 사람이 솔직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솔직함은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앞만 보고 전력질주 하듯이 헐떡거리며 달려가는 사람에게 겸손을 찾기 어려운 것은 과거에 대한 천착이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오만의 씨가 자라나고 타인에 대한 무례함이 커진다. 첫 출발은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 죽음을 타인이나 인류의 문제로 추상화하지 않고 구체적인 자신의 문제로 직시하는 마음이다.

콜비츠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작품 활동을 한 대표적 화가다. 그녀는 말년에 죽음을 소재로 수십 개에 이르는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죽음에의 초대〉에서는 자화상 형식을 빌려 죽음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림의 노년 여성은 화가 자신이다. 옆에서 죽음의 손이 어깨를 두드린다. 죽음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날 문득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소리 없이 찾아와 어깨를 툭 치며 ‘자, 이제 그만 가지······’라고 할 것만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때야 마치 전혀 모르던 사이처럼 ‘아 죽음이라는 것이 있었지’라고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한다. 그리고 닥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 찾아온 불행을 저주한다. 하지만 그림 속의 콜비츠는 소스라치며 놀라기는커녕 익숙한 친구의 손인 듯 조용히 고개를 돌리며 응대하고 있다.

죽음에의 초대

콜비츠, 1934년

ⓒ 서해문집 |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죽음 연작에 몰두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맹렬한 반대를 한 직후였다. 그녀 역시 뵈클린이나 뭉크가 그러했듯이 가족의 죽음이라는 끝 모를 고통을 체험했다. 처음에는 인류의 무작위적인 죽음이 괴롭혔다. 그녀가 살았던 빈민가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일상의 모습이었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짓밟히며 죽어가는 수많은 인간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죽음의 문제에 몰두하게 한 것은 추상적 인간의 죽음이 아닌, 항상 같이 호흡하며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던 아들의 죽음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한 그녀는 전쟁을 몰아내기 위한 몸부림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반전화(反戰畵)의 대명사로 꼽힐 정도로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낸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기 10여 년 전인 1934년부터 죽음 연작을 내놓기 시작한다. 이미 국가의 반역자로 낙인이 찍힌 그녀는 자연적 생명과는 무관하게 자신에게도 언제든지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고 삶에 대한 애착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바로 죽음을 마주했을 때다. 진실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송두리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속에서 거듭날 때 진정 강해지고 또한 동시에 부드러워질 수 있다. 대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죽음을 현실로 정면에서 마주하는 체험을 전제로 할 때 말이다. 두려움은 처음에 외부에서 찾아오지만 결국 해결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원효대사가 해골 앞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표정이 그림 속의 콜비츠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지 않은가. 원효대사가 어린 시절 불교 공부를 위해 당나라로 가다가 날이 저물고 몸은 지쳐서 벌판에서 자게 되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매다가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물을 더 마시려고 찾아갔더니 웅덩이가 아니라 사람의 해골이 들어 있는 관이었으며 물은 관 속에 고여 있던 빗물이었다. 그는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토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모든 것은 마음이다.” 그러고는 발길을 돌려 고국으로 돌아와 마음을 닦는 데 정진하여 훌륭한 스님이 되었더라, 뭐 이런 이야기 말이다. 죽음 혹은 해골에 대한 공포도 실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 생각 달리하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교훈이다. 또한 죽음이 끝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성찰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가 원효와 같은 깊은 깨달음에 모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효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소크라테스나 장자와 같은 성인의 경지에 누구나 다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에게 “정화란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참다운 철학자는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덜 무서워하는 자일세.”라고 충고한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가 합쳐진 존재인데, 죽음을 통해 육체의 간섭에서 벗어나 순수한 영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과 더불어 순수해지기를 원하는 철학자라면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지혜를 향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죽음을 싫어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환희 속에 저승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약을 늦게 마셔서 목숨을 좀 연장하려고 매달리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장자의 《장자》에는 아내의 죽음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는 아내가 죽었는데 곡은커녕 질그릇을 두들기고 노래를 하는 행동은 심한 것 아니냐고 질타한다. 그러자 장자가 대답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 그저 흐릿하고 어둠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해서 삶을 갖추게 된 거요. 이제 다시 변해서 죽어가는 거요. 이는 춘하추동이 되풀이하여 운행함과 같소. 그런데 내가 소리를 질러 따라 울고불고한다면 하늘의 운명을 모르는 거라 생각되어 곡을 그쳤단 말이오.” 장자가 보기에 죽음은 계절이 바뀌듯 자연 운행의 일부일 뿐이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의 질서에 들어가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와 장자, 원효의 죽음을 통한 깨달음 내용은 각기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발상 위에서 정신의 해방을 추구한다. 장자는 오히려 정신이든 육체든 모두 자연의 질서 속에서 하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원효는 한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깨달음을 주고자 한다.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지만 기본적으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집착을 떨치고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 나아가서는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에는 대체로 일치한다. 평범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성인 각자의 깊은 깨달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죽음을 현실로 마주함으로써 공포에서 벗어나 평온을 구하고, 이를 계기로 후회 없는 삶을 고민하는 정도는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뵈클린이나 콜비츠의 그림을 볼 때면 생사관이 분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요즘에야 그 뜻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듯하다. 죽어야 살 수 있고, 작아져야 커질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시련을 겪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시련이라면 죽음일 것이다.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적어도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고민할 때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상록수로 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이 잠든 사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아름다운 유서를 써보세요.”라며 몇몇 시민단체에서 추진하는 ‘유서쓰기운동’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유서를 쓰는 순간 자기의 죽음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의 하나로 유서쓰기를 추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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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작품 활동을 했고, 독일 후기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암시적 상징을 통해 과거와 현재, 신화와 실제를 혼합한 그림을 즐겨 그렸고 그림은 이야기를 통해 감상자에게 시나 음악 같은 감흥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요 작품으로 〈죽음의 섬〉, 〈페스트〉,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등이 있다.

박홍순 집필자 소개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적·사회적 영역으로 ..펼쳐보기

출처

미술관 옆 인문학 2
미술관 옆 인문학 2 | 저자박홍순 | cp명서해문집 도서 소개

《미술관 옆 인문학 2: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만나다》는 인간의 본성에서 문명의 충돌까지 삶과 죽음에서 사랑과 욕망까지, 성찰의 인문학, 상상의 인문학을 물으며 인문학..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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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죽음에 대하여미술관 옆 인문학 2, 박홍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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