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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인간의 조건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어 하고, 그 범위 안에 들어가려 노력한다. 문제는 훌륭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동양에서는 흔히 어떤 사람의 특징을 구분할 때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조조 등을 기준으로 놓고 어떤 형 인간에 속하는지를 가늠한다. 서양에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영웅이 비교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서양인의 사고 속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표본으로 통하는 영웅이 헥토르(Hector)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로 파리스의 형이다. 그리스어로 ‘지탱하는 자’, ‘저항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그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트로이 총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솔직함과 용기,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절망하지 않고 기개를 지키는 트로이 제일의 용사였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네를 납치한 동생 파리스에게 분노했지만 일단 그리스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선두에 서서 전쟁을 지휘했다. 트로이 전쟁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장면이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이다. 그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투 기술에도 불구하고 아테나 여신의 계략에 휘말려 아킬레우스의 창에 맞아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를 주도한 화가답게 유럽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인 《일리아스》에 주목했는데, 헥토르에게 애착이 갔는지 그와 관련된 그림을 몇 점 그렸다.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는 헥토르 시신 앞에서 슬픔에 빠진 부인 안드로마케와 아들을 묘사했다. 음울한 검은 장막을 배경으로 주검이 된 헥토르가 침대에 누워 있다. 목 아래 부분에는 아킬레우스의 칼에 찔린 상처가 선명하다. 침대 밑으로는 주인을 잃은 투구와 칼이 슬픔을 같이 느끼는 듯 놓여 있다. 머리에 쓴 월계관은 그가 비록 죽었어도 트로이의 영원한 영웅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앞으로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넋이 나간 듯 공허한 시선의 안드로마케가 있다. 헥토르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그녀의 빈손은 남편과의 영원한 이별을 상징한다. 어린 아들은 비탄에 잠긴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리려고 한다.
그리스인에게 훌륭함은 자기 분야에서의 기능적 탁월함을 전제로 한다. 덕을 뜻하는 영어 virtue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그리스어 아레테(arete) 개념과 만나는데, 사물이 잠재된 본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능력으로서 훌륭함과 탁월함을 의미한다. 훌륭함을 뜻하는 아레테는 언제나 최고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어떤 일의 기능적 유용성과 연관이 있다. 《일리아스》를 보면 속도는 ‘발의 훌륭함’으로, 비옥함은 ‘땅의 훌륭함’으로 표현된다. 즉 자기가 맡은 일을 기능적으로 잘하는 것이 곧 훌륭함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대표되는 영웅시대 이전에는 헤라클레스(Herakles)가 훌륭함의 상징이었다. 네메아의 사자를 맨손으로 죽이거나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를 곤봉으로 쳐서 죽이는 등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뛰어남을 훌륭함으로 여겼다. 당연히 전사의 훌륭함은 전투를 수행하는 기능적 능력, 즉 용맹무쌍함과 말이나 무기를 다뤄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뛰어난 전투력을 의미한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와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전투 수행 능력을 지녔기에 훌륭함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호메로스 시대에는 신체 각 기관의 기능이나 심지어 사물의 상태 등에 대해서도 훌륭함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주로 인간에게 한정된 의미로 사용한다. 또한 훌륭함의 종류와 관계를 체계화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해 필수적인 네 개의 아레테로 규정한다. 통치자는 지혜, 군인은 용기, 평민은 절제가 각각 적용되는데, 이것이 국가 안에서 조화를 이룸으로써 정의에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구분했는데 《수사학》에서 신체의 훌륭함을 건강, 미, 강함, 크기, 운동능력 등 5가지로 구분했다. 또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지적인 아레테는 교육의 결과이며, 이것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규정한다. 훌륭함은 훈련과 습관이 만들어낸다. 훌륭한 사람이라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강조점은 다르지만 훌륭함이 특정한 일의 숙달과 능통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일리아스》의 무대가 전쟁터였고, 전투에 임하는 전사에게 용맹과 전투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때 헥토르는 시대를 불문하고 훌륭함의 상징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 한 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전투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가 훌륭함에서 앞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아킬레우스가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더 앞선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킬레우스도 그리스인에게 훌륭함의 명예를 얻은 영웅이기는 하다. 싸움 기술에 관한 한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하지만 호메로스나 그리스인이 보기에 훌륭함을 위해서는 용맹함과 함께 공동체 이익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굳은 의지가 필요했다.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가하면 트로이 성 함락 직전에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피하려고 리코메데스 왕의 궁전에서 여장을 하고 아홉 명의 공주 사이에 숨어 살았다. 아킬레우스가 동참하지 않으면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그리스군은 설득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자들의 궁전에 숨어버려서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혜롭기로 유명한 오디세우스가 기지를 발휘하여 아킬레우스를 찾아내고 참전 설득에 성공한다.
브레이(Bray)의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 있는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낸 지략을 담았다. 그는 방물장수로 변장하여 궁전에 들어가 공주들 앞에 아름다운 옷가지, 장식품, 화장품과 함께 칼, 활, 방패, 투구 등 무기류도 섞어 물건을 풀어헤쳐 놓았다. 공주들이 보석과 옷에 관심을 보일 때 아킬레우스 혼자 무기를 만지작거리다 신분이 들통 난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설득에 넘어간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연합군에 동참한다. 그림을 보면 탁자 위에 고급 옷감과 온갖 보석류가 펼쳐져 있다. 문으로는 하인이 보석과 함께 투구가 들어 있는 물건을 옮겨오고 있다. 중앙의 공주는 보석을 들었는데, 여장을 한 아킬레우스는 칼을 손에 쥐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디세우스가 그의 어깨를 짚자 머쓱해하는 표정이다. 주위의 공주들은 ‘이걸 어쩌나’ 하면서 놀라는 표정이다.
바로크 미술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의 사실적 재현 복구와 더불어 현장성을 통해 회화적 생동감을 추구했는데 이 그림에는 그런 현장성과 역동성이 잘 드러나 르네상스 미술보다 더욱 과격해진 운동감과 극적 연출 효과가 두드러진다. 브레이는 감상자의 시점을 계단 아래쪽에 두었다. 마치 그림 바로 아래에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쳐다보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짐을 들고 문으로 들어오는 하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듯이 순간 동작을 잡아냈다. 칼을 잡은 아킬레우스의 어깨를 오디세우스가 짚는 순간 주변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했다. 티치아노를 비롯하여 카라바조, 루벤스 등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들이 감상자 시점을 발밑에 두어 현장의 긴박함을 극대화한 시도와 비슷하다.
죽음을 피하려고 여성들 사이에 숨은 아킬레우스 일화는 호메로스나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 훌륭한 태도는 아니었다. 물론 아킬레우스가 항상 죽음을 회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예 영웅의 지위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단 전투에 임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투 중 목숨을 구걸하는 리카온에게 아킬레우스는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있어서 누군가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갈 아침이나 저녁 혹은 한낮이 다가오고 있다.”라며 전쟁터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는 추한 짓이며 전혀 훌륭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헥토르만큼 견고한 의지가 있지는 않았다. 전사의 진정한 훌륭함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공동체 이익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태도에서 와야 했다.
헥토르 역시 아무런 갈등도 없던 것은 아니다. 헥토르도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와 수치심을 느꼈다. “아킬레우스가 일어서던 저 끔찍한 밤에 부대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라던 그의 말을 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을! 내가 어리석어 백성에게 파멸을 가져다주었으니, 트로이인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 여인을 볼 면목이 없구나.” 그는 성안으로 돌아가자는 옳은 권고를 무시하여, 무적의 아킬레우스와 싸워야 하는 절망적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헥토르가 두려워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다. 트로이 운명에 해를 끼칠 그릇된 선택에 대한 후회일 뿐이다. 전사로서의 기능적 우수함만이 아니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초지일관 공동체 이익에 복무하는 태도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보다 한 수 아래였기 때문에 훌륭함의 최고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만큼 용맹함은 단순하고 무분별한 폭력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성을 지녀야 했다. 공동체 이익과 연관된 목표의식과 헌신성이 뚜렷해야 했다. 나아가서 단순한 폭력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냉철한 분별력이 필요했다. 아킬레우스는 용감성과 기백에서는 최고였지만 분별력에서 헥토르에 뒤진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인 후 그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고 여러 날을 끌고 다니자 아폴론은 아킬레우스의 행위를 비난한다. “그 사나이는 마음에 분별력이 없고 가슴속의 생각조차도 전혀 양보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있는 것은 다만 사자와 같은 흉포한 생각뿐입니다. ··· 운명의 여신은 인간에게 참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씩씩한 헥토르의 목숨을 빼앗고 게다가 그의 시체를 마차 뒤에 매달고는 사랑하는 친구의 무덤 주위를 끌고 다닙니다. 이것은 도저히 훌륭한 행위라고도 또 점잖은 일이라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판단과 행동은 충동적 감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억제력을 발휘하는 이성적 태도야말로 인간에 속한 능력이며 훌륭함의 근간이다. 《일리아스》에는 용맹함과 함께 분별력을 강조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아테네와 함께 완전한 전사이자 전쟁의 신인 아레스가 디오메데스에게 상처를 입고 아버지 제우스에게 징징대자 제우스가 호통을 친다. “내 곁에 앉아 징징대지 마라. 나는 올림포스에 사는 모든 신 중에서 네가 가장 밉다. 너는 밤낮 말다툼과 전쟁과 싸움질만 좋아하니 말이다.” 단순한 무력은 불화와 유혈과 살육을 조장할 뿐이다. 공동체 이익과 일치되는 분별력을 가질 때 비로소 훌륭함을 갖춘다. 훌륭함, 즉 덕을 감정과 구분된 이성의 영역과 연결하는 그리스 철학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훌륭한 사람들의 운명
공동체 이익을 위한 헌신, 그것도 용맹함으로 무장한 추종은 필연적으로 희생을 동반한다. 그리고 희생이 크면 클수록 더욱 훌륭한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당사자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 가족의 희생으로 확대된다. 국가 이익을 위해 희생을 요구받았던 대부분의 훌륭한 사람이 겪는 결과였다.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는 고대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Livius)의 《로마 건국사》에 실린 일화를 담은 그림으로 자신과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가 이익 수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로마가 영토 확장을 통해 제국의 꿈을 키우면서 첫 번째로 넘어야 할 관문이 바로 알바 왕국이었다. 두 왕국의 전력이 만만치 않아 장기전으로 부담이 커졌고, 무엇보다 전쟁으로 전력이 약화한 틈을 타 주변 왕국의 침입이 우려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로마 왕국과 알바 왕국은 소모적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전면전 대신 각 왕국을 대표하는 3명의 전사가 결투를 벌이고 그 결과에 승복하기로 합의한다. 알바 쿠리아티우스 가문의 삼 형제에 대적할 전사로 로마는 호라티우스 가문의 삼 형제를 선발한다. 전쟁에 출전한 삼 형제 중 형 둘은 먼저 죽고 막내가 기지를 발휘하여 쿠리아티우스 형제의 목을 차례로 자르고 승리한다. 그리하여 알바 왕국을 합병한 후 로마 제국을 향한 강력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림은 로마의 명운을 걸고 결투에 나서는 호라티우스 세 형제가 결의하는 장면으로 아버지와 칼을 앞에 두고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오른편의 늙은 아버지가 승리를 향한 맹세와 함께 세 아들에게 칼을 건네고 있다. 세 아들을 피의 제단에 바치면서도 아버지는 어떤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자세다. 세 형제도 서로의 허리를 굳게 껴안고 힘차게 팔을 내뻗어 결연한 죽음의 맹세를 한다. 배경의 소실점을 칼자루 근처에 두어서 감상자의 시선이 형제들의 맹세하는 손과 칼을 든 아버지의 손으로 모이도록 연출하여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도록 했다.
루이 16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애국적 희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고전주의 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도 로코코 스타일의 아기자기함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기하학적 조형을 통한 안정된 구도, 배경을 통한 깊은 공간감을 실현했다. 어두운 배경에 밝은 빛을 받는 인물을 설정하여 집중점을 분명히 하면서 연극 무대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들의 몸은 정형화된 동작과 근육이 강조되어 신고전주의 특징 그대로 그리스 · 로마 시대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 · 로마 조각에 나타나는 고전적 규범미를 추구한 다비드의 의도가 십분 발휘되었다.
그림 오른편으로는 비탄에 잠긴 여인들이 나오는데, 결투를 벌일 두 집안은 사돈 관계여서, 여인들은 남편이나 오빠가 친정 혹은 시댁과 결투를 벌이는 비극 앞에 망연자실해 있다. 이미 상대 가문의 여인이 아내가 되어 함께 살고 있고, 딸은 상대 가문의 아들과 약혼을 맺은 상태다. 결투로 가문과 국가 간의 승패는 있을지언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될 운명이었다. 다비드는 국가의 운명 앞에서 가족 이익은 사소하며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단지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로마의 엄격하고 애국적인 도덕심을 회복하고,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강건한 국가 건설을 호소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한껏 결의를 다지는 남성들의 과장된 동작보다 구석에서 바닥을 모르는 슬픔에 잠긴 여인들이 더 눈이 밟힌다. 오른쪽 흰옷을 입은 여인이 알바 왕국의 아들과 약혼을 맺은 호라티우스 가문의 딸 카밀라다. 그 옆은 알바 왕국에서 시집온 사비나다. 이 여인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오직 남편의 죽음이냐, 친정 오빠의 죽음이냐의 갈림길밖에 없다. 사비나 옆으로는 어린 두 아들이 영문도 모른 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있다. 옆에서 할머니가 달래지만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무언가 자기 가족에 닥칠 어두운 그림자를 직감하는 듯 불안한 기색이다.
형제들의 맹세와 결의가 단호할수록 여인들의 절망감은 깊어만 간다. 이미 며칠 낮과 밤을 울다가 지친 듯 두 여인의 몸은 기력을 잃고 축 처져 있다. 팔을 들 힘조차 남지 않은 듯 서로에게 기댔다. 나중에 호라티우스 형제의 승리로 결투는 막이 내리고, 카밀라가 사랑하는 약혼자를 죽인 오빠를 저주하자 분노한 오빠는 여동생을 칼로 찔러 죽인다. 살인죄로 기소된 아들을 아버지가 변호해 목숨을 구한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과 가족의 희생과 비극은 그것이 아무리 크더라도 철저하게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이 과정에서 빚어진 부당한 살인 행위조차 용인된다.
국가를 위해 요구되는 훌륭함으로 인해 가족이 받아야 하는 절망적 고통은 헥토르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비드의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에는 오른쪽에 큰 규모의 촛대가 있는데, 그 기둥에 《일리아스》에 나오는 안드로마케의 독백이 적혀있다. “남편이여, 당신은 젊은 나이에 나를 과부로 남기고 죽었구려. 당신과 내가 세상에 내놓은 아들은 불행하게도 아직 너무 어리다오.” 헥토르 역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전쟁에서 죽고 난 뒤에 아내와 자식이 겪을 고난을 슬프게 예언했다. “그 무엇보다 슬프게 하는 것은 당신이 받을 고통이오. 누군지도 모를 청동갑옷을 입은 그리스 병사가 울며불며하는 당신을 데려다가 자유의 태양을 빼앗고 노예로 삼겠지. 당신이 아르고스에 끌려가서 그들 부인의 명령을 받아 길쌈에 바쁘고 낯선 샘에서 무서운 채찍에 쫓기며 물을 길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 원망스러운 일이여!”
헥토르가 죽고 트로이가 전쟁에 패한 후에 안드로마케는 아들과 함께 아킬레우스가 왕으로 있던 에페이로스 왕국에 포로로 잡혀간다. 그런데 그리스인은 트로이 전쟁에서 죽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복수를 대신하기 위해 헥토르 아들을 그리스로 데려와 절벽에서 던져 죽이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린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봐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에페이로스의 왕 푸로스가 안드로마케에게 연정을 느낀다. 그는 약혼녀 헤르미온이 있었지만 안드로마케가 자신과 결혼하면 아들을 그리스로 보내지 않겠다며 압박한다. 안드로마케는 헥토르에 대한 사랑과 아들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헤르미온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기회만 노리다, 헥토르 아들을 그리스로 데려가기 위해 파견된 특사를 이용한다. 헤르미온을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특사는 그녀의 계략대로 안드로마케의 아들을 납치해 가고, 푸로스는 살해당한다. 헥토르나 호라티우스 형제만이 아니라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아니 적어도 이름을 남기려 희생의 대열에 서려던 대부분 사람과 가족에게 천벌처럼 끔찍한 고통이 뒤를 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화랑 관창과 계백에 얽힌 이야기가 각각 국가를 위한 개인과 가족의 극적 희생을 보여준다. 신라군의 사기를 위해 초개와 같이 자기 목숨을 버린 관창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1000년을 넘어 지금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비록 역사적으로는 패장이 되었지만 계백은 아내와 자식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배수진을 치고 필생의 의지로 전쟁에 임한 장군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국 사람이라면 교육 과정에서 이들을 이른바 훌륭한 사람의 전형으로, 누구나가 본받아야 할 애국자로 배워왔다.
하지만 공식적 역사 기록 말고,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이나 갈등을 알 수 있는 어떤 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황산벌〉이라는 영화 한 편이 애국주의, 국가주의에 물든 우리의 경직된 머리를 두들겨댔다. 비록 희극 형식을 띠었지만, 영화 장면이나 대사가 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책보다도 우리의 관성에 균열을 내기에 적합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대사가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여서 다소 생경하고 희극적인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훌륭함 뒤에 감추어진 허위와 비극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관창과 계백의 희생에 관련된 대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소년 관창에게 희생하라고 아버지가 설득하는 대목이다. “관창아, 우린 진골 정통에 빼다구 있는 가문이데이. 김유신이 같은 가야파 개빽따구한테 밀리서야 되겠나. 오늘부로 붕우유신 임전무퇴 화랑도 세속오계 다 개소리다. 화랑 하면 관창, 관창 하면 화랑 이거면 끝! 니는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는기라.” 관창은 “아부지, 이거 누가 시켜가 이러는 거 아이지예? 이거 진짜 개죽음 아니지예?”라며 묻는다. 두려워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설득한다. “장난하나? 니는 뜬데이. 반드시 뜬데이. 화랑 관창 역사에 길이 남으리. 꿈은 이루어진데이. 그럼 니는 그냥 죽으면 안 된데이. 정신 바짝 차리고 죽어야 된데이. 폼나게 비장하게 장렬하게. 니 몬 뜨면 니가 내 애비다.”
가족을 죽이고 전쟁에 참여한 계백의 회상은 더욱 극적이다. 계백은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재! 그거 마시고 먼저 가소.”라며, 길게 끌면 추해지니까 깨끗하게 가자고 요구한다. 그러자 부인은 “머시라고라이? 그럼 우덜이 아이구 서방님, 아부지 우리 이 약사발 마시고 디져불라요. 이럴 줄 아셨소? 예끼 이 양반아. ··· 씨만 뿌려놓고 밤낮 칼싸움하고 다녔던 인간이 인자 와서 어쩌고 저쪄? ··· 전쟁을 하든가 말든가, 나라가 처 망해불든가 말든가 아 그것이 무엇인데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라며 반발한다. 이에 계백이 “호랭이는 죽어서 거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냄긴다 혔다. 제발 깨끗하게 가장께.”라며 재차 설득하자, 부인은 “뭣이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호랭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여! 이 인간아!”라며 통렬하게 반박한다.
관창의 아버지와 계백 모두 역사의 보상을 근거로 논리를 편다. 오늘의 희생이 국가 이익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의로운 행위임을 강조한다. 국가와 역사 앞에서 개인이나 가족은 거리낌 없이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역사에 남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결단이다.
루소의 《에밀》
헥토르는 국가를 위한 개인의 일방적 희생을 강제하는 국가주의 의식을 견고하게 지녔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능도 갖추었기에 훌륭함의 대명사로서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는 전쟁에 나서는 트로이아군을 향해 다음과 같이 열렬하게 호소한다. “모두 힘을 합하여 그리스군의 배를 향해 진격하라. 상처를 입고 쓰러진 자는 죽게 놔두라. 조국을 위해서 싸우다 죽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군이 물러간다면, 그자의 처와 아이, 집과 대지는 먼 장래까지 온전하게 되리라.” 국가 이익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개인이나 가족의 안위는 사소하고 부차적이다. 특히 고대국가 형성기에는 국가주의 의식이 더욱 폭력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후 대부분의 기간을 차지한 씨족, 부족 중심의 소규모 공동체 관계가 두터운 관성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공동체 관계의 해체야말로 고대국가 형성을 위한 절대 과제였기에 더욱 폭력적으로 나타났다.
루소(Rousseau)는 국가의식을 기준으로 한 훌륭함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에밀》에서 공동체 이익에 충실한 사람을 시민, 즉 국민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국민이라는 발상을 넘어서는 자율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선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타락한다. ··· 인간 자체까지도 조련장의 말처럼 인간 자신을 위해 길들인다. 마치 정원수와 같이 자기 취향에 맞추어 구부러뜨린다. ··· 자연과 싸우느냐 사회제도와 싸우느냐, 그 어느 편인가를 취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며, 한 인간을 만드느냐 한 시민을 만드느냐의 어느 한 쪽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동시에 두 부류의 사람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자연인은 완전히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는 절대적인 정수(整數)이며, 단지 자기 자신이나 동료하고만 관계를 가진다. 시민적 인간은 분모에 좌우되는 분수의 분자에 불과하다. 그 가치는 정수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정수란 결국 사회 공동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회 제도란 인간을 가장 부자연스럽게 하고 개인에게서 절대적 존재를 탈취하여 상대적 존재로 만들어 자아를 한 공동체 속에 몰입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그 결과 개인은 자기를 한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분으로밖에 의식하지 않는다. ··· 우리 지혜는 모두 노예적 편견으로 되어 있다. 모든 습관은 굴종과 고문의 구속물에 불과하다. 시민적 인간은 노예적 상태에서 태어나고 살고 또 죽는 것이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국가주의에 철저한 국민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인간 자체에 충실한 자연인을 만들 것인가? 국민은 자기 열망보다 국가나 공동체 이해관계에 철저히 복종하는 존재다. 국가나 전체가 개인에 항상 우선하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찌든 인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자연인은 자율성에 기초하여 자기 문제를 욕구에 기초하여 결정하는 인간이다. 국가주의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개인의 주체성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두 가지의 동시 실현은 불가능하다. 국가주의란 본질적으로 주체성을 거세한 것이 특징이기에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소는 자기 생명을 구제해주려는 로마인의 시도를 의연히 물리치고, 카르타고로 돌아가 고문과 사형의 길을 선택한 레굴루스(Regulus)를 전형적인 국민으로 꼽는다.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일어난 제1차 포에니전쟁 때의 로마 집정관이다. 전투 결과 로마군은 궤멸당하고 레굴루스도 포로가 되었다. 카르타고는 평화조약을 체결하도록 로마 정부를 설득할 것과 설득에 실패하면 카르타고에 돌아올 것을 조건으로 그를 로마로 돌려보냈다. 로마는 이미 전의를 잃고 평화조약을 받아들일 분위기였다. 그런데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와의 약속과 달리 조약에 반대하는 연설로 로마인을 감동하게 했고, 다시 전쟁을 개시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레굴루스 자신은 평화조약 설득에 실패하면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켜 카르타고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생을 마감한다.
렌스(Lens)의 〈카르타고로 돌아가는 레굴루스〉를 보면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길을 가로막고 레굴루스에게 로마에 남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만류하는 로마 시민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나는 카르타고로 돌아가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목숨보다 로마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망가든지 그냥 로마에 있지 왜 카르타고로 가려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카르타고인에게 돌아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비록 적에게 한 맹세일지라도 절대 깨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맹세를 지키면 나 혼자만 재앙을 겪으면 되지만, 지키지 않을 때에는 모두가 재앙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와 로마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고문과 사형이 기다리는 카르타고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루소는 또한 스파르타의 한 아낙네 사례를 들면서 가족 희생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국민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녀는 다섯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노예가 당도하자 떨면서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노예가 “마님의 다섯 아드님은 전사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못난 놈 같으니, 내가 너에게 그것을 물었느냐?”라며 호통을 친다. “우리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신전으로 달려가 신들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 역시 전형적인 국민의 특징이다.
호메로스 시대 이래 훌륭한 인간의 조건은 자신보다 국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태도였다. 루소가 보기에 이는 국가를 모든 판단과 행동의 변하지 않는 정수로 두고, 자신은 그에 의해 좌우되는 변수로 취급하는 노예적 사고 방식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인간을 훌륭함이라는 인습의 사슬에 묶어놓았다. 동물이나 작물을 자연이 만든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의 이해에 맞도록 기형으로 만들어놓듯이, 인간 자신조차도 국가 이익에 맞도록 기형으로 변질시키고 여기에 국민 영웅이니, 훌륭한 국민이니 하는 칭호를 붙였다는 것이다. 훌륭한 국민이란 진정한 개인으로서의 자율성과 절대성을 포기한 존재다. 형식적으로는 강제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자발성의 허구적 틀을 쓴 노예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간은 항상 자기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를 외부의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로 결정하는 존재다.
루소가 국가나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사회계약론이니 뭐니 주장할 이유 없이 개인이 알아서 살자고 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국가이고 사회여야 하는가이다. 개인을 위해 국가가 필요한 것이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이 국가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우리만 하더라도 한국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애국주의 앞에서는 합리적 논박이나 비판도 힘을 잃는다. 정부는 비판해도 한국은 비판하면 안 되는 분위기다. 도대체 ‘한국’이란 무엇일까? 정부와 구별되는 한국은 결국 흔히 국가나 민족으로 부르는 단위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한국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국가나 민족은 비판 대상이 될 수 없는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국가나 민족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문하면 왜 안 되는가? 훌륭함의 기준을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에 두는 것이 정말 황당한 발상이기만 할까?
국가 질서를 무조건 우선순위로 놓는 주장에 의문을 품으면 곧바로 혼란이 우려된다는 협박을 통해 오늘의 억압을 어쩔 수 없이 인내하라고 요구하곤 한다. 하지만 혼란이 무서워 불의를 선택하기보다는 불의를 극복할 수 있는 혼란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반대로 혼란이나 불안정이 두려워 현실에 주저앉는 사람은 백척간두 위의 위태로움을 운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원래 모든 새로운 시작은 앞날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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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자크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년)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역사화를 그려 신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한편,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이자 프랑스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였고, 프랑스 공화국 아래에서 사실상 예술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마라의 죽음〉,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등이 있다.
글
출처
《미술관 옆 인문학 2: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만나다》는 인간의 본성에서 문명의 충돌까지 삶과 죽음에서 사랑과 욕망까지, 성찰의 인문학, 상상의 인문학을 물으며 인문학..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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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훌륭함에 대하여 – 미술관 옆 인문학 2, 박홍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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