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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도박 산업이 되었나

할리우드는 흥행 산업이다. 모험 산업이기도 하고 도박 산업이기도 하다. 한 영화사가 영화 열 편을 만들면 일곱 편은 적자를 감수하고 두 편은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맞출 걸 미리 예상한다. 단 한 편만 대박을 터뜨려주면 되는 것이다. 영화사의 흥망은 그 영화 한 편에 거는 도박 게임에 달려 있다. 이를 미국의 미디어 재벌이었던 테드 터너(Ted Turner)는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표현했다. "영화 사업은 마음 약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영화 한 편에 4,000만 달러를 들여 10개의 영화를 만든다면, 그중 한 편만이 돈을 벌 수 있다. 도박꾼의 심장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영화 저널리스트 피터 바트(Peter Bart)는 『할리우드 영화전략(1999)』에서 "오늘날에 영화는 잘 조율된 전략이라기보다는 발작적이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광고의 융단 폭격과 함께 개봉된다"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는 맥도날드 같은 거대 기업이 마케팅 협찬사로 참여하고, 슈퍼볼이나 올림픽 게임의 텔레비전 광고 시간을 사기 위해서 돈을 펑펑 쓴다. 이런 기계적인 작업을 거친 새 영화는 개봉 즉시 블록버스터가 되거나, 아니면 하룻밤 사이에 망해버리고 만다. 광고 전략을 바꾼다든가 하는 손을 써볼 새도 없다. 험난한 적자생존 경쟁에서 뒤지는 약한 영화 또는 문제 있는 영화들은 살아남을 여지가 없다."

5,000만 달러 내지 1억 달러의 제작 비용이 들어간 영화의 경우 평균 2,500만 달러에서 4,000만 달러의 마케팅 예산이 소요되는데, 자금이 소모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영화 개봉 직전에서 직후까지의 6~8주 동안 대부분 집행된다. 사정이 그와 같으니 영화 제작의 경제학이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바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스튜디오 경영권은 영화 전문가들에게서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들에게로 넘어갔다. 전문 경영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제작이 아니라 배급이었다. 그리고 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영은 점차 방만해져갔고, 기본적인 영화 제작 방정식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장사에서는 과도한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의 증가가 위험 부담의 확대로 되돌아왔다."

한국 영화계도 도박 산업의 성격이 강화되면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영화계의 '슈퍼 갑'인 대형 배급사 영화가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저예산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예컨대, 2012년 11월 한국 영화의 배급사별 관객 점유율은 CJ E&M과 쇼박스가 각각 64.3퍼센트와 20.0퍼센트를 차지했다. 빅2가 84.3퍼센트를 독식한 것이다. 자사 영화가 개봉하면 자신들이 소유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상당수를 배정해 지원 사격에 나서거나 티켓을 무더기로 사서 초반 예매율을 끌어올리는 편법 등은 이미 잘 알려진 대기업의 관객 유치 전략이다. 예컨대, 2012년 12월 7일 용산에 있는 대기업 영화관 상영작 9편 중 7편(77.8퍼센트)이 대형 배급사의 작품이었으며, 이 가운데 해당 영화관을 소유한 대기업의 작품만 4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비가 부족한 영화들은 제대로 관객을 만나보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와 실패한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분명 그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흥행의 성패에 따라 회사가 큰돈을 벌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하는 양극단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혹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판 근처엔 얼씬거리지 않는 게 좋다. 그게 그 바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바닥의 속성이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분야가 그렇다. 인터넷이 원래 할리우드의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지만, 할리우드의 연륜을 존중해 승자 독식 경제를 가리켜 할리우드 경제로 부르기로 하자.

인터넷은 전형적인 승자 독식 구조다. 어느 분야의 사업에서든 상위 몇 개가 실제 가치의 네다섯 배나 되는 수입을 벌어들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다른 모든 분야도 할리우드 경제 패러다임에 편입되고 있다. 디지털 전문가들은 이를 지식 혁명이니 지식 기반 경제니 지식 경영이니 하는 말로 예찬한다. 그런 예찬 분위기에 힘입어 승자 독식 문화는 조직 내부에까지 퍼졌다.

특히 기업은 할리우드를 그대로 빼박고 있다. 2006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500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보수를 분석한 결과 1960년에는 미국 대통령 연봉의 두 배에 그쳤지만, 지금은 30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05년 연간 매출 5억 달러 수준의 미국 기업 CEO들의 평균 보수는 216만 달러(21억 원)로 스위스(139만 달러), 독일(118만 달러), 캐나다(107만 달러), 멕시코(100만 달러), 일본(54만 달러), 베네수엘라(47만 달러), 인도(29만 달러), 중국(21만 달러) 등을 크게 웃돌았다. 이 신문은 CEO와 일반 근로자의 평균 보수 격차는 미국이 475배로 영국(22배), 남아프리카공화국(21배), 캐나다(20배), 프랑스(15배), 일본(11배)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475배 자본주의'라 부를 만하다.

2012년 7월 미국 실리콘밸리 일간 『새너제이 머큐리뉴스』가 실리콘밸리 내 198개 업체 199명의 CEO를 대상으로 연봉을 조사한 결과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3억 7,800만 달러(약 4,340억 원)로 1위였다. 한 시간에 5,000만 원, 하루에 12억 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일반 노동자 수천 명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받은 팀 쿡의 능력이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시간에 5,000만 원을 버는 애플 CEO 팀 쿡. 미국에서는 CEO와 일반 근로자의 평균 보수 격차가 475배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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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벌어지는 미국의 연봉 격차는 전반적인 빈부 격차의 반영이기도 하다. 2007년 기준으로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인구가 미국 전체 자산의 33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자산이 하위 90퍼센트가 가진 모든 자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AP통신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미국의 빈곤율은 1865년 이래 46년 만에 최고치인 15.7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전체 미국인 6명 중 한 명꼴인 4,700만여 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는 의미다.각주1)

한국은 어떤가? 한국 상장사들은 CEO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지 않아 현재 한국이 과연 몇 배 자본주의인지 알 길이 없다. 워낙 세인의 주목 대상이 된 탓에 삼성전자의 경우만 알려졌다. 2002년 삼성전자 CEO의 연봉은 35억 7,000만 원, 국내 상위 20개 사의 CEO의 경우는 5억 3,163만 원이었다. 2003년도 삼성전자 등기이사는 평균 58억 원의 연봉을 받았고, LG전자 등기이사도 10억 6,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2005년 삼성전자 등기 임원의 평균 연봉(89억 7,000만 원, 스톡옵션 제외)은 대통령의 57배에 달했다. 또 삼성물산과 삼성전기 등기임원의 평균 연봉은 대통령의 9배, 현대자동차와 신세계는 7배 정도로 추정됐다. 한국도 이젠 수십 배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지식을 인간의 내면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국한시켜 사실상 지식의 신비화를 시도했던 지식 엘리트층의 지식 독점에 맞서 지식의 실용성과 현실 적용에 초점을 맞춘 지식 혁명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점이 있다. 그런데 이 지식 혁명이 도박에서의 행운까지도 지식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지식의 목적을 지식 그 자체에만 국한시켰던 소크라테스 시절보다 훨씬 심한 지식의 신비화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지식 혁명은 그 누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문명사적 흐름인데, 그런 비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법하다. 일리 있는 반론이지만, 그 실천에서 할리우드 경제를 근간으로 삼고 있는 지식 혁명의 이데올로기가 모든 경우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도 괜찮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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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데니얼 버스타인·데이비드 클라인, 김광전 옮김, 『정보고속도로의 꿈과 악몽』(한국경제신문사, 1995/1996), 302쪽.
  • ・ 피터 바트, 김경식 옮김, 『할리우드의 영화전략』(을유문화사, 1999/2001), 17쪽,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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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순찬, 「"한 시간에 5000만 원 벌었다는 그 사내는…"」, 『조선일보』, 2012년 7월 17일.
  • ・ 로버트 프랭크, 권성희 옮김, 『리치스탄: 새로운 백만장자의 탄생과 붐의 비밀』(더난출판, 2007/2008), p. 335.
  • ・ 신광영,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 2004), 175쪽.
  • ・ 정혜전, 「미(美) CEO 500명의 평균연봉 대통령 30배·근로자 475배」, 『조선일보』, 2006년 1월 24일, B3면.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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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대중문화의 겉과 속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국인을 위한 최고의 대중문화 입문서로 최신 대중문화 현상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케이팝부터 웹툰까지 대중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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