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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매스 컬처와 파퓰러 컬처는 어떻게 다른가
20세기 중반 대중문화 비판자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좌파적인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대중의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고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체제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가했다. 그러한 시각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노동계급의 수동성과 무관심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해야 할 '아편'과도 같은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일컬어지는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는 1940~60년대에 걸쳐 좌파적 관점에서 대중문화에 대해 그런 비판을 했는데, 이들은 파시즘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 기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경제적으로 '모순'이 격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연결되기는커녕 반대로 파시즘의 승리로 귀착된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는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각주1)
그러나 그들의 대중문화 비판이 단지 좌파적 관점 때문만이었을까? 조안 홀로우즈(Joanne Hollows)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그들이 대중문화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데, 그러한 혐오는 교양 있는 부르주아지라는 그들의 특권적인 위치에서 생겨난 것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나 음미해볼 가치는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념의 좌우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비판자의 개인적인 입지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대중문화의 장점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대중문화를 매스 컬처(mass culture)가 아닌 파퓰러 컬처(popular culture)로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말로는 둘 다 '대중문화'로 번역하지만 그 숨은 뜻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매스 컬처에서 '매스'는 한 집단의 성원이나 개인이라기보다는 무차별적인 집합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경멸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심지어 폭력을 휘두르거나 말썽을 일으킬 것 같은 군중(mob)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스 컬처에는 상업주의, 획일성, 저속성 등의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반면 '일반적으로 넓게 확산되어 있으며 동의되고 있는'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파퓰러'라는 단어에는 "인기가 있다"와 "민주적이다"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뜻이 있다. 요컨대, 파퓰러 컬처에는 민주적 성격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는 파퓰러 컬처를 기존의 대중문화와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 '민중 문화'라고 번역하는데, 그러나 민중 문화라는 개념은 기존 사회 체제의 '지배 문화'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저항 문화'라는 뜻에 가까우며,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매스 컬처나 파퓰러 컬처를 모두 '대중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똑같은 문화적 현상을 보더라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느냐 또는 긍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매스 컬처 또는 파퓰러 컬처라고 달리 부르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저항 문화라는 개념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배 문화 대 저항 문화' 또는 '대중문화 대 민중 문화'니 하는 이분법적 분류는 우리의 문화 현실을 설명하는 데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예컨대, 10대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대중문화에도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한 저항성이 어느 정도 담겨 있으며 10대들은 그 저항성을 읽어내고자 한다. 대중문화의 주요 기능으로 비판받아온 '현실 도피'도 수용자의 의지가 앞선다면 능동적인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한 개인에 의해 문화 상품이 소비되고 수용되는 과정과 상황이다.
예컨대, 미국 상류층의 음모와 사랑을 다뤘던 텔레비전 드라마 <댈러스>를 보자. 90개 이상의 국가에서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거짓말같이 거리가 텅 비고 수도 사용량이 극적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1983년 2월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크 랑(Jack Lang)은 <댈러스>가 "미국 문화 제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람에게 미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프로그램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댈러스>를 시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은 만약 그 프로그램의 '위험성을 안다'면 봐도 괜찮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댈러스>는 네덜란드에서 전 인구의 52퍼센트가 시청했을 정도로 대인기를 누렸다. 이에 네덜란드의 여성학자 이엔 앙(Ien Ang)은 『댈러스 보기(Watching Dallas, 1982)』라는 책을 펴냈다. <댈러스>에 대한 네덜란드 여성 팬들의 반응을 조사한 책이다. 앙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여성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저는 TV 시리즈 <댈러스>를 즐겨 보지만 때로는 이상한 반발감도 느낍니다. 그걸 왜 보기 좋아하는지 또는 왜 싫어하는지, 어떤 분이라도 제게 그 이유를 써 보내줄 수 없을까요? 저는 이러한 반응들을 제 대학 논문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앙은 <댈러스>의 팬들과 안티 팬들 양측에서 받은 편지들을 연구에 활용했다. 이 연구에서 나온 한 가지 중요한 발견은 네덜란드 여성들이 <댈러스>를 통해 미국 부자들의 사랑에서도 여성은 항상 차별당하고 슬픔을 독차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앙은 이를 '정서적 리얼리즘(emotional realism)'이라고 불렀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많은 것 가운데 자신이 관심 있는 정서만을 골라서 시청하게 되고 그걸 통해서 현실감이나 사실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수용자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대중문화 이론가인 존 피스크(John Fiske)는 스타에 열광하는 10대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문화 상품에 의해 조종되는 생각 없는 꼭두각시'로 보는 태도를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팬들은 마돈나의 노래와 이미지를 통해 자신들 속에 내재된 특수한 경험을 밖으로 드러냅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남성들보다는 젊은 여성들이 마돈나에 더욱 열광하지요. 그 이유는 마돈나가 그동안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순종과 억압을 강요받아온 미국 여성들에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욕구 분출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남성들은 마돈나의 대담하고 가공할 만한 성적 매력에 오히려 위축당하고, 따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쪽이지요."
수용자의 능동성을 알게 된 건 대중문화를 다시 보게 되는 새로운 발견이었지만, 일부 학자는 그 능동성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대중에게 아첨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수용자의 능동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여러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대중문화는 소비자의 주머니를 겨냥해서 만들어지는 문화다. 그것도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용의주도한 마케팅 기법이 따라붙는 문화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가수가 10대 여학생들이 많이 사줄 것을 기대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게 음반을 만들었다 해도, 그 음반을 산 여학생들이 지불한 돈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만족을 얻는다면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다만 문제는 대중문화를 이용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늘 현명한 건 아니며 대중문화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점을 노릴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수용자가 현명하다면 퇴폐적인 저질 대중문화 상품이 큰 인기를 얻지 못해야 마땅하겠건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그 생산자의 건전한 양식과 수용자의 올바른 자세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매우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꼭 모든 게 유익해야만 하느냐"고 항변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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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조안 홀로우즈, 「대중문화이론과 정치경제」, 조안 홀로우즈·마크 얀코비치 엮음, 『왜 대중영화인가』(한울, 1995/1999), 54쪽.
- ・ 도날드 닷슨, 「포퓰러 컬처와 매스 컬처의 차이」, 강현두 엮음, 『현대 사회와 대중문화』(나남, 1998), 176쪽.
- ・ 존 톰린슨, 강대인 옮김, 『문화제국주의』(나남, 1991/1994), 94~95쪽.
- ・ 크리스 바커, 하종원·주은우 옮김, 『글로벌 텔레비전』(민음사, 2001), 196쪽.
- ・ Ien Ang, trans. Della Couling, 『Watching Dallas: Soap Opera and the Melodramatic Imagination』(London and New York: Methuen, 1985).
- ・ 존 스토리, 박만준 옮김, 『대중문화와 문화연구』(경문사, 2002), 179쪽.
- ・ 원용진, 『광고 문화 비평』(한나래, 1997), 25쪽.
- ・ 강경희, 「TV 문화이론가 존 피스크 교수 인터뷰」, 『조선일보』, 1993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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