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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왜 스타는 연예 산업의 보험증서가 되었는가
스타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보통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면서 나름대로 즐기거나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별을 만지거나 가질 수는 없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연예인은 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다.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유명 연예인들을 일컬어 스타라고 부르는 건, 아마도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대중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타는 집단적 무의식의 심연에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Jr., 1917~2007)는 "영화가 미국의 상상력의 가장 강력한 표현 매체라고 하는 사실은 영화가 단지 겉모습만이 아닌 미국 생활의 신비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미국의 감정과 매우 중요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국가적 의식의 핵심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스타가 집단적 무의식의 심연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동시에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어떤 신화로 기능하든 그것은 철저한 상업적 계산이라는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즉, '집단적 무의식'의 변화에 따라 스타의 유형과 특성도 달라지겠지만, 그 유형과 특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스타의 제조와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계의 스타는 하늘의 별처럼 자연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스타는 만들어졌다. 원래 스타는 원시적인 형태나마 18세기의 연극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는 연극이 순회공연이나 부자의 자선에 의존하던 데에서 탈피하여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연극인이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직업인으로 등장한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연극의 재미를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만끽하고자 했다.
연극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연극이 주연급 배우를 만들어놓고 다른 배우들을 그 주연배우에 종속시키는 것을 개탄했지만, 연극의 상업적 생존과 발전은 대중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타는 두말할 필요 없이 대중의 큰 인기를 누리는 배우를 말한다. 그러나 연기라는 관점에선 배우 개인의 개성이 극 중 인물의 성격을 압도하거나 그 성격에 혼합되어 나타날 때 그 배우를 스타라고 말할 수 있다. 극의 내용과 연출의 장점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홍보를 해야 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스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스타 시스템은 1910년 중반부터 할리우드에 도입되었다. 1910년 이전에는 배우 이름이 영화의 자막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영화 제작자들이 배우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 경우, 그들이 높은 출연료를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좋아하는 배우에게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었다.
물론 영화사는 스타의 이름이 돈을 버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산업은 도박과 비슷했다. 영화가 성공하면 큰돈을 벌지만 실패하면 큰 손해를 봐야 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영화가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은 곧, 스타를 출연시키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 스타를 영화 산업의 보험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즉, 스타는 전통적으로 부침이 심한 영화 산업에 안정성을 가져다준 것이다. 당연히 영화사들은 보험증서로서의 스타를 적극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엔 할리우드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38년부터 1948년까지 10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미국 정부는 영화업자들이 극장까지 소유하는 수직적 통제가 상거래에 제약을 주고 독점화를 조장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얻어냈다. 이에 따라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1952년까지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극장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판결 이후 영화사들의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해 스타와의 관계에서 예전처럼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스타는 더욱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내걸고 스스로 인기를 관리하는 체제로 들어갔다. 이는 새로운 스타 시스템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스타 시스템은 스튜디오 체제에서 스타의 직접적인 관리 체제로 변화되어 스타 자신이 독립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스타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영화사와 스타의 공조 체제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 이유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개런티는 날로 치솟고 있다. 2002년 봄에 드디어 '2,500만 달러 클럽'이 탄생했다. 영화 한 편 출연료가 2,500만 달러라는 것이다. 이 클럽에 속한 스타는 짐 캐리, 톰 크루즈, 해리슨 포드, 멜 깁슨, 톰 행크스, 마이크 마이어스, 줄리아 로버츠, 애덤 샌들러, 브루스 윌리스 등이었다.
스타의 가치가 치솟으면서 투자자들이 스타를 직접 잡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메릴린치(증권사)가 톰 크루즈에게 5억 달러를 꽂았다." 2007년 6월 영화 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의 기사 제목이다. 할리우드의 대형 투자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을 더 키우기 위해 20세기 폭스, 워너 브라더스 등 메이저 제작사가 아니라 스타 배우와 감독에게 직접 투자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이름 없는 영화계 종사자들은 기본적인 생계 유지에도 허덕이는 반면, 스타들은 영화 한 편에 수천만 달러를 챙겨가는 건 영화를 도박으로, 영화 산업을 도박 산업으로 이해하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일까?각주1) 더욱 큰 문제는 그런 도박적인 양극화가 사회 전 분야로 파급된다는 데 있다. 이는 6장의 「왜 영화는 도박 산업이 되었나」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규모는 작을망정 한국도 다르지 않다. 관객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위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은 1960년대에 가장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연급 배우들이 동시에 서너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는 것은 예사였고, 신성일은 한때 12편의 영화에 동시 출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신성일은 해마다 최다 출연 기록을 갱신해나갔는데, 1962년 5편, 1963년 22편, 1965년 38편(국내 영화 총 제작 161편), 1967년엔 65편(국내 영화 총 제작 185편)을 기록했다. 그가 주연을 한 영화는 총 506편에 이르렀다.
오늘날 그런 겹치기 출연은 사라졌지만, 스타 파워는 건재하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2005년 충무로에선 스타가 없으면 신작 영화의 투자가 여간해선 성사되지 않는다며 "스타가 없으면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배급사의 인식, 스타가 없으면 다루지 않겠다는 언론의 관행, 스타가 없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관객의 습관이 합해져 지금 스타들의 몸값은 유례없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감독이 배우 한번 만나려고 3개월을 기다린다. 프로듀서는 '제발 배우에게 책(시나리오)을 전해달라'며 로드매니저에게 돈을 찔러줘야 할 때도 있다. 개런티로도 모자라 제작사 지분의 50퍼센트를 떼어주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는 배우도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영화의 스타 시스템을 물려받았다. 시청자의 리모컨 조작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승부가 나는 텔레비전은 영화에 비해 훨씬 소심하다. 행여 시청자가 채널을 돌리기 전 스타라는 '고정 상품'으로 시청자를 붙잡아야 할 필요가 텔레비전 쪽이 훨씬 큰 셈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텔레비전은 스타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다.
대중문화의 '스타의, 스타에 의한, 스타를 위한' 시스템은 언론 산업의 가세로 더욱 굳어진다. 오래전부터 할리우드에선 "가십을 지배하는 자가 할리우드를 지배한다"는 말이 통용되어왔다. 할리우드의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이 언론 매체의 "가십들은 부산물이 아니라, '스타 시스템'을 키우는 플랑크톤"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활자 매체가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해 더욱 스타를 판매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신문들은 날이 갈수록 연예 기사의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연예 기사는 주로 스타에게 집중되고 있다. 텔레비전도 스타를 중심으로 해 제작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규 뉴스 시간에마저 연예 뉴스라는 미명하에 스타 초대석을 마련해 스타의 자질구레한 사생활을 '뉴스'로 다루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터넷은 연예 뉴스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타에 관한 각종 기사들이 홍수 사태를 이루고 있다. 스타가 보험증서 수준을 넘어 모든 대중문화 산업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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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Robert C. Allen and Douglas Gomery,『Film History: Theory and Practice』(New York: Alfred A. Knopf, 1985), p.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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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가 모랭, 이상률 옮김, 『스타』(문예출판사, 1992), 119쪽,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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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왜 스타는 연예 산업의 보험증서가 되었는가 –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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