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대중문화의
겉과 속

PD는 쓸개가 없어야 성공할 있나

스타 파워 논쟁은 영화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회당 200만 원 선이던 텔레비전 드라마 주연급 개런티는 2005년경 최고 열 배 뛰어 회당 2,000만 원을 경신했으며, 심지어 회당 1억 원을 요구한 한류 스타까지 나타났다.

이벤트 업계도 스타 파워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한류 때문에 못해먹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루 행사 출연료로 10억 원을 요구하는 한류 스타가 있는가 하면, 한 시간짜리 팬 미팅을 하는 데에 출연료가 2억~3억 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류가 스타들을 버려놓는다는 말도 나왔다. 2005년 봄 홍콩 교민 사회에선 한류 스타를 한 명 초청해 행사를 하려고 했다가 무산된 일이 벌어졌다. 억대의 출연료 요구는 차치하고 "배용준 수준으로 공항 환영 인파와 호텔 방을 준비해 달라", "홍콩에서 가장 높은 행정 수반과의 만찬을 주선해달라" 등의 추가 요구 사항을 내세워 기겁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스타 파워 때문에 방송연예계의 기존 권력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백성호는 "드라마 PD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대부분의 연기자들에게 드라마 PD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다음 작품에 또 얼굴을 내밀려면 PD의 눈도장을 받아야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도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방송사들은 아예 '드라마 PD 수난시대'라고 입을 모은다. '스타 파워'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스타만 캐스팅하면 기본 시청률 15퍼센트는 깔고 간다'는 게 방송가에 떠도는 정설이다. 그러나 캐스팅부터 호락호락하지 않다. PD의 '삼고초려'는 필수가 됐다. 스타 연예인들의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결혼식은 물론이고 초상집을 찾아가 평소에도 꾸준히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

드라마 PD만 그런 수난을 겪는 건 아니다. 예능 PD도 똑같다. MBC 예능 PD 권석이 조연출 시절 쓸개 제거 수술을 받고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더니 부장이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너 PD 잘하겠다. 쓸개 빠져서." 권석은 실제로 예능 PD들은 간과 쓸개를 다 내놓고 일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섭외의 대표적인 방법이 진드기 작전이다. 한두 달은 기본이고 해를 넘기면서까지 공을 들인다. 섭외 기록일지를 만들어 매번 통화 내용을 기록하며 관계를 쌓아나간다. …… 감동 작전도 있다. 꽃다발을 보내고 선물 공세를 하고 당사자도 기억 못할 기념일을 챙겨준다. 스타가 군대에 있으면 면회를 가고 해외 유학 중이면 바다를 건너가 알현한다. …… 내가 잘 쓰는 섭외 비법도 있다. 바로 주변 사람 공략하기. 특히 가족이 효과적이다. 스타의 어머니나 아내를 먼저 꼬드기는 방법이다. 상품권을 준비해서 백이나 하나 새로 장만하시라고 매니저를 통해 찔러 넣는다. …… 이렇듯 섭외를 위한 분투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시청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PD가 고생한다면 괜찮겠지만, 스타의 높은 출연료로 인해 드라마 자체가 흔들린다는 게 문제다. 2007년 2월 <허준>, <대장금> 등을 연출한 PD 이병훈은 이렇게 개탄했다. "제작비의 80퍼센트가 주요 연기자들의 출연료로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기가 힘듭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최소한의 필요 인원이 있는데, 스타들 몸값을 채우다 보면 중견 연기자들이 캐스팅에서 제외되고, 연기자 두 명으로 30분을 끌고 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한국에서 50대 이상 연기자들이 어떻게 먹고사는가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비용에 허덕이다 보니 연출자고 작가고 '(극에서) 누굴 죽여야 하나' 고민하게 돼요. <주몽>이 왜 40명 데리고 전쟁 신을 찍겠습니까? 다 제작비 때문이에요."

<대장금>을 연출한 이병훈 PD는 제작비의 80퍼센트가 주요 연기자들의 출연료로 들어가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기 힘들다고 개탄했다.

ⓒ 인물과사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08년 12월 1일 한국PD연합회 산하 한국TV드라마PD협회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TV 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드라마 위기를 극복할 대안 모색에 나섰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MBC <에덴의 동쪽>의 국대화 회장은 엄청나게 큰 집에 혼자 산다. 가정부도, 운전사도, 집사도 없다. 이게 말이 되냐"면서 "드라마 제작비의 80퍼센트를 주연 배우들과 작가가 가져간다. 그러니 전투 장면에 50명만 나오고, 비가 오는데 카메라 앞에만 물이 떨어지는 황당무계한 설정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2년 들어 톱스타의 드라마 출연료는 장동건, 장근석, 송승헌 등이 회당 1억 원을 받았다. KBS 드라마국 한 PD는 "회당 배우 출연료 1억 원이면 드라마 회당 제작비 3분의 1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며 "결국 정해진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다른 배우를 적게 쓰거나 미술 등 드라마 제작 비용을 줄이고 과도한 PPL(간접광고)로 제작비를 맞추는 악순환이 이어져 작품 질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스타 연기자와 더불어 스타 작가들의 원고료도 치솟아 2010년 방송 드라마 작가 원고료가 처음으로 회당 5,000만 원 시대를 열었다. 주인공은 김수현 작가였다. 스타 작가 고료는 2000년대 초반 회당 최고 1,000만 원이었는데 불과 10년도 못 돼 4~5배 이상 뛴 것이다. 2012년 회당 3,000만 원 이상의 고료를 받는 이른바 A급 작가로는 <장밋빛 인생>, <조강지처클럽> 등을 쓴 문영남, <올인>, <주몽>, <아이리스 1>의 최완규, <자이언트>의 장영철,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박상연, <최고의 사랑>의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의 임성한 등이 꼽혔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작가료 폭등은 결국 톱스타의 몸값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 산업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연기자 5,000여 명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은 2009~2011년 3년간 조합원 70퍼센트의 연간 출연료 소득이 1,000만 원에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해, 한연노는 외주 제작사들이 모두 12억 7,400만 원을 주지 않았다며 2012년 11월부터 원청업체 격인 KBS 출연 거부에 나섰다.

지상파방송들의 드라마 외주 제작 비율은 70~80퍼센트에 이르는데, 방송사가 외주 제작사에 주는 회당 제작비는 5,000만~1억 4,000만 원 선이다. 여기에 스타급 남녀 연기자 두 명이 주연을 맡고, 작가에게 고료를 주면 남는 돈은 별로 없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PPL 등으로 추가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면 보조 연기자에게 줄 출연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외주 제작사 입장에서는 드라마를 팔 수 있는 보증수표인 톱스타의 캐스팅에 목을 매기 때문에 이런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방송실연자협회 이사장 김기복은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의 회당 출연료가 400만 엔(약 5,100만 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국내 스타들 출연료는 과다한 측면이 있다. 방송 광고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스타급 연기자들 출연료만 늘어나니 보조 연기자들의 어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추적자>처럼 톱스타 없이도 성공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와 톱스타 의존도가 줄거나, 방송사 자체 제작 비율을 높이는 식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톱스타 없이도 성공하는 드라마가 나올 순 있겠지만, 아무래도 많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최근의 셀럽(Celeb) 현상이 말해주듯이, 사회 전반이 유명인(Celebrity)에 열광하는 풍토 때문이다. 푸딩 얼굴 인식 어플리케이션 같은 '연예인 닮은꼴 찾기' 앱을 즐기는 사람들의 목표는 선망하는 연예인과의 '싱크로율 100퍼센트'를 기록하는 것이며, 일생에 단 한 번의 추억을 멋지게 만들겠다며 화려한 결혼식을 선호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도 유명인의 흉내를 내보겠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스튜디오라거나 셀카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셀카에 열광하는 것도 스타 현상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와도 '셀카 화면발 최고'를 내세우는 게 아닐까?

스타 파워는 우리 시대가 브랜드 시대임을 웅변해준다. 최근 스타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타 브랜드를 내세워 기업 경영에 뛰어드는 것도 브랜드라고 하는 상징 소비의 시대가 무르익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업계에서 브랜드 상징의 중앙 집중화가 일어나는 것과 스타 파워 현상은 매우 비슷하다. 스타에게 매니저가 있듯이, 브랜드를 관리하는 브랜드 매니저가 있는 것도 같다. 둘은 모든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12장의 「왜 브랜드는 종교가 되었나」 참고).

셀카 기능을 강조하는 카메라 광고. 셀카에 열광하는 것도 스타 현상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 인물과사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브랜드는 '집단적 환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중이 환상을 원하는 걸 어찌 하겠는가. 우리 시대에 환상에 빠지는 걸 누가 두려워하랴.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스타 파워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의외로 이념성이 강한 문제다. 그건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승자독식주의와 그에 따른 빈부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 양성희, 「높아진 스타파워 쩔쩔매는 제작사」, 『문화일보』, 2005년 6월 8일.
  • ・ 양성희, 「한류열풍에 소외된 한국팬」, 『문화일보』, 2005년 9월 6일, 22면.
  • ・ 이양수, 「한류 맥 짚어보기」, 『중앙일보』, 2005년 10월 28일, 35면.
  • ・ 백성호, 「드라마 PD "좋은 시절 다 갔네"」, 『중앙일보』, 2005년 2월 5일, 24면.
  • ・ 권석,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잘 마른 멸치 권석 PD의 방송일기 세상 읽기』(새녘, 2012), 207, 257~259쪽.
  • ・ 장은교, 「이병훈 PD의 쓴소리 "스타 몸값, 한류 거스른다"」, 『경향신문』, 2007년 2월 15일.
  • ・ 김고은, 「"출연료 상승, 드라마 질 저하·방송사 적자 불러": 'TV 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 세미나에서 주장」, 『PD저널』, 2008년 12월 3일.
  • ・ 고규대, 「〔출연료 1억 원 시대〕①남자 1억 여자 5천만, '억'소리 난다」, 『이데일리』, 2012년 10월 11일.
  • ・ 민병선 외, 「드라마 '해품달'-'뿌리깊은나무' 쓴 A급 작가들, 회당 얼마나 받을까」, 『동아일보』, 2012년 3월 14일.
  • ・ 남지은, 「인기작가 비싼 몸값 '문제는 외주제작 시스템'」, 『한겨레』, 2010년 4월 26일.
  • ・ 음성원, 「스타 쫓는 드라마 외주 '깊어진 그늘'」, 『한겨레』, 2012년 12월 26일.
  • ・ 김난도 외, 「Tell Me, Celeb: 스타에게 길을 묻다」, 『트렌드 코리아 2011』(미래의창, 2010), 311~326쪽.
  • ・ 조중현·이서정·이나리, 「왜 한국은 셀카 공화국이 되었나: 세계 각국의 셀카 문화」, 강준만 외, 『우리가 몰랐던 세계 문화』(인물과사상사, 2013), 184~197쪽.
  • ・ 박정현, 「"셀카 화면발 최고" 옵티머스G 놀라운 스펙」, 『조선일보』, 2013년 2월 18일.
  • ・ 나오미 클라인, 정현경·김효명 옮김, 『NO LOGO: 브랜드 파워의 진실』(중앙M&B, 2000/2002); 더그 헨우드, 이강국 옮김, 『신경제 이후』(필맥, 2004), 35쪽.

강준만 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출처

대중문화의 겉과 속
대중문화의 겉과 속 | 저자강준만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국인을 위한 최고의 대중문화 입문서로 최신 대중문화 현상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케이팝부터 웹툰까지 대중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문화 일반

문화 일반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왜 PD는 쓸개가 없어야 성공할 수 있나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