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712년 |
---|---|
사망 | 1793년 |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평생 베네치아에 머물며 베네치아의 풍경만을 그렸다. 초창기에는 사실주의적 풍경화를 그렸으나 이후 빛과 공기의 변화를 중시한 새로운 형태의 풍경화를 개척했다. 초기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색과 색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대신 부드럽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으나 점차 화려한 풍경화를 거쳐 공기와 빛의 미묘한 변화를 낭만주의적인 화풍으로 담아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생전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인상파 등장 이후 최초의 근대적 풍경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171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예술가 집안으로 아버지는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 지역의 하급 귀족 출신으로 베네치아에서 공방을 운영했고 과르디의 두 형도 화가로 활동했다. 과르디가 네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두 형이 아버지의 공방을 물려받았고 과르디는 형들과 함께 공방에서 활동했다.
1735년에 베네치아에서 뛰어난 풍경화가로 알려진 미켈레 마리에스키의 공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9년간 일했다. 3년 후에 그린 〈성체에 경배하는 성자〉는 그의 서명이 들어간 첫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의 초기작들은 처음으로 실외에서 풍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카날레토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베네치아의 풍경화가로 활약한 루카 칼레바리스의 영향을 받았다.
1763년에 그린 〈성 도미니크의 기적〉에서는 화려한 표현과 자연의 순간적인 변화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던 알레산드로 마냐스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사물의 왜곡과 과장된 표현이 특징인 표현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시기부터 긴밀한 구성과 세밀한 선의 묘사로 공기와 빛의 미묘한 변화를 묘사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날레토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화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강조하고 밝은 색의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 카날레토와 달리 과르디는 〈베네치아:카르본 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리알토 다리〉처럼 웅장한 모습은 강조하되 건물들이 깊은 호수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흐릿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베네치아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프랑스,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등의 열강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상태였다. 과르디는 이런 베네치아의 상황을 그림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782년 과르디는 베네치아 정부의 요청으로 러시아 대공 방문을 기념하는 그림을 제작했다. 같은 해 베네치아 순수 예술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추대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과르디는 그의 대표작 〈라구나〉에서 잘 드러나듯이 저녁 안개에 쌓인 베네치아에 황혼이 깃든 모습을 환상적으로 표현하는 등 화폭에 미묘한 빛의 변화를 표현하는 데 뛰어났다. 또한 자연의 순간적인 변화를 느슨한 붓질로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18세기 베네치아 최후의 풍경화가로 생전에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이 그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으며 비로소 최초의 근대 풍경화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었다. 평생 베네치아를 벗어나지 않고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93년 여든한 살의 일기로 사망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프란체스코 과르디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