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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9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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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 $140,000,000(1468억 8000만 원)각주1) |
작가 |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
“무질서가 아니라고, 젠장!”
-잭슨 폴록
잭슨 폴록의 〈넘버 5〉는 세계 미술 시장이 아주 호황이던 2006년에 드림웍스의 공동 설립자인 데이비드 게펜이 다른 개인 컬렉터에게 1억 4000만 달러(1468억 8000만 원)에 판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개인 거래라도 중간에 딜러를 끼고 하게 마련인데, 이 거래는 소더비의 최고 스타 경매사인 토비어스 마이어가 중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게펜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음반, 영화, 공연 사업계의 거물이다. 미술 컬렉터로도 유명한데 특히 폴록, 드 쿠닝, 로스코 같은 추상 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많이 갖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폴 심멜이 “게펜보다 좋은 추상 표현주의 컬렉션을 찾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이 그림 바로 뒤에 이어지는 드 쿠닝의 〈여인 3〉도 데이비드 게펜이 다른 개인 컬렉터에게 1억 3750만 달러(1442억 6000만 원)에 판 것이다.
폴록을 비롯해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열다섯 점이나 등장한다. 추상 표현주의는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일까? 무엇보다 추상 표현주의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승전국인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탄생한, 아주 미국적인 미술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끔찍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세상이 파괴되는 것을 직접 겪은 뒤 유럽과 미국의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예전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전쟁 전에 그리던 유럽의 풍경화와 정물화는 평화롭고 장식적이고 안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전쟁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가치관도 흔들린 상태에서 작가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재현하는 것에는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느낌’과 ‘경험’을 뿜어내는 게 예술이라는 생각이 아티스트들 마음속에 자연히 들어섰다.
전반적으로 예술가들의 생각이 바뀐 데다 미국에서는 승전국으로서의 분위기가 더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강국이 됐다. 1947년에 미국은 전 세계 철강의 57퍼센트, 자동차의 80퍼센트를 생산했다. 국민 총생산(GNP)이 1933년에는 550억 달러(57조 7000억 원)였지만 1950년에는 2840억 달러(298조 원)가 되었다. 게다가 1930년대 초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이룬 발전이기에 이 나라가 느끼는 기쁨은 더 컸다. 예술가들과 평론가들도 나라의 이런 분위기를 한껏 전해 줄 만한 예술을 원하고 있었다. 이 속에서 마침내 그 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그들만의 예술 경향이 나오게 되었으니, 바로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다.
1940년대에 나타난 이 미국 화가들의 그림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추상화 앵포르멜(Informel)과도 다르고, 근대 유럽 작가들의 초현실주의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초현실주의와도 또 달랐다. 한마디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미술 경향, 미국만의 것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안 그래도 기가 살아난 미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뒤질 것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추상 표현주의가 여기에 큰 힘을 보탠 것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예술이다 보니 당시 미국에서는 작가, 미술 평론가, 언론 등이 힘을 합해 추상 표현주의를 키웠다. 추상 표현주의 스타일이 완전히 무르익은 1958년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이 ‘새로운 미국 미술(The New American Painting Exhibition)’이라는 제목으로 스위스 바젤,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마드리드,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벨기에 브뤼셀,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 여덟 곳을 순회하는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경제적인 번영으로 미국 컬렉터들의 돈이 많아지던 20세기 후반, 미국 작가들, 그중에서도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문화적으로 강국이 되었다고 입증하는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 작품 가격이 올라간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컬렉터들은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친숙한 그림을 구매하는데 돈을 더 쓰게 마련이다. 미국 컬렉터들은 미국 그림에 돈을 더 쓰고, 중국 컬렉터들은 중국 그림에 돈을 더 쓰는 법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폴록의 대표작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최상위권에 속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추상 표현주의가 미국에서도 특히 뉴욕에서 발생한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추상 표현주의 작가 대부분이 뉴욕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뉴욕 스쿨(New York School)’이라고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은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던 예술의 중심가였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문학, 영화 등 모든 예술인의 중심지였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 20세기 초반까지는 파리로 모여들었으나 이제는 뉴욕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도시 뉴욕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의지할 데 없는 예술가나 이민자들은 끼니를 잇기도 어려울 만큼 하루하루 고된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추상 표현주의는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노가 어려 있는 것 같은 그림들은 전후의 시대상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예술이다.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물감을 통째로 흩뿌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하면 그림과 더 친밀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이 그림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이라고 하는 그의 스타일은 ‘추상 표현주의’ 중에서도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분류된다. 드 쿠닝, 클라인도 대표적인 액션 페인팅 화가다.
반면, 격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색과 면으로만 표현한 그림을 ‘컬러 필드 페인팅(Color Field Painting)’, 즉 색면 추상이라고 한다. 로스코, 라인하르트, 뉴먼, 스틸 등이 색면 추상 화가로 불린다.
폴록의 그림이라고 모두 초고가에 거래되지는 않는다. 드립 페인팅의 경우에만 기록을 깰 정도로 비싸게 팔린다. 그가 처음부터 이런 스타일로 그린 것은 아니었다. 폴록의 스승은 193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지역주의 작가인 토머스 하트 벤턴이었다. 지역주의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미국인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미술 경향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미국의 생활 방식을 보여 주는 남부 지역에서 미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며 사는 건강한 모습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림 안에 스토리가 들어 있어서 삽화적인 면이 있다.
폴록도 초기에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자연과 카우보이 등 전통 소재를 가지고 미국인들의 삶을 구상화로 그렸다. 하지만 1940년대 말 이후 스타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림에서 지역주의의 삽화적 요소를 차츰 없앤 것이다. 폴록의 캔버스는 점점 더 자유로워졌다. 마침내 1948년 지금과 같은 그의 대표적 스타일이 나왔다. 이런 스타일이 완전히 무르익은 것은 1950년 무렵이었다. 1950년에 폴록은 세계적인 화랑 밀집 거리인 뉴욕 57번가의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드립 페인팅을 가지고 개인전을 했는데, 그의 새로운 스타일을 확실하게 알리는 중요한 전시였다.
베티 파슨스 갤러리는 미국 현대 미술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베티 파슨스는 딜러이자 컬렉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1946년에 뉴욕의 럭셔리 갤러리 스트리트인 57번가에 자신의 갤러리를 열었다. 그 당시에는 추상 표현주의에 관심을 갖는 갤러리가 거의 없었다. 파슨스가 거의 유일하게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팔았다. 특히 1950년에 열린 폴록의 개인전과 1948년에 열린 색면 추상 화가 뉴먼의 첫 개인전은 유명하다.
이 그림은 이렇게 미국 미술이 서양 미술사의 중심으로 들어서던 시기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작품 너머의 가치 또한 크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은 시각 예술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다.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에서 크게 유행한 추상화 경향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인, 음악가, 무용가, 영화인, 미술인 등 예술인을 통틀어 ‘뉴욕 스쿨’이라고 부르는데, 이 뉴욕 스쿨에 속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이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말까지 주도한 미술 경향이 바로 ‘추상 표현주의’다. 폴록은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사방으로 움직이며 물감을 떨어뜨렸는데, 이처럼 작가의 내면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한 새로운 경향의 추상화가 추상 표현주의다. 이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하던 미술이 장식적이고 여성적이던 것에 비해 추상 표현주의 미술은 남성적이고 진취적인 것으로 여겨져,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로 자신감에 차 있던 미국의 정신을 보여 준 미술로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30년대부터 유럽에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더 가깝게는 고키의 즉흥적인 추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추상 표현주의는 폴록, 드 쿠닝 등의 액션 페인팅 경향과 뉴먼, 로스코, 스틸, 라인하르트, 로버트 머더웰 등의 색면 추상 경향으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조각가 중에서는 데이비드 스미스가 추상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추상 표현주의는 1950년대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현대 미술에 영향을 끼쳐 서양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경향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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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원화 환산 환율은 외환은행에서 제공하는 2014년 1월 1일~6월 30일의 평균환율(고시 회차 최종, 매매 기준 환율)을 따랐습니다.
참고문헌
- ・ Carol Vogel, ‘A Pollock Is Sold, Possibly for a Record Price’, The New York Times, 2006년 11월 2일
- ・ ‘Faces of the Week’, BBC News, 2007년 2월 23일
- ・ Erika Doss, Twentieth-Century American Art,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p.125-128
글
출처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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