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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다른 표기 언어 Amedeo Modigliani
요약 테이블
출생 1884년
사망 1920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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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조각가. 비대칭적 구성과 길게 늘여 놓은 얼굴과 몸이 특징인 근대적 스타일의 초상화와 누드로 유명하다.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항구 마을 리보르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가이고, 어머니는 스피노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마르세유의 명문가 출신이다. 모딜리아니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칠 즈음 모딜리아니가 태어난 덕분에 약간의 재산은 남길 수 있었다. 출산한 여인의 재산은 빼앗지 않는 풍습 덕분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어렸을 때부터 늑막염과 장티푸스로 고생했다. 몸이 약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에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는 모딜리아니를 일반적인 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그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1899년 어머니는 그의 바람대로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 선생 중 한 사람인 화가 구글리엘모 미켈리에게 보내 미술 공부를 시켰다. 그는 모딜리아니의 재능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모딜리아니 초기 작품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01년 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나폴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을 여행하며 많은 이탈리아 고전 예술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피렌체로 가서 그림과 조각을 공부했다. 이때 파리 예술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파리로 떠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베네치아에 있는 미술 학교에 등록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교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학교 교육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주로 카페와 술집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부터 술과 마약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아들의 방탕한 생활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그의 파리 행을 허락해 주었다.

1906년에 파리로 이주하여 시인이자 새로운 예술 운동을 주도했던 앙드레 살몽, 막스 자코브를 비롯해 피카소, 후앙 그리스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는 아직 모딜리아니 특유의 스타일이 탄생하기 이전으로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늘 쪼들렸던 그는 갈수록 약과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건강은 점점 나빠져 갔다. 1907년 의사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폴 알렉상드르와 친구가 되었다. 알렉상드르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구입해 주었다.

그는 회화 못지않게 조각에도 관심이 많았다. 1909년 특히 현대 조각의 시초로 평가 받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를 만나 그의 단순한 형태의 추상 조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브란쿠시의 조언을 따라 당시 파리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아프리카 조형 미술을 연구하고 그것을 모티브로 하는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약 5년간 25점의 조각 작품을 남겼는데 길고 좁은 타원 형태의 두상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때의 형태가 훗날 모딜리아니 특유의 스타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각 작업할 때 날리는 먼지 때문에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1915년부터는 조각을 완전히 그만두고 다시 회화에 전념했다.

1917년 모딜리아니의 동료 화가가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잔느 에뷔테른을 모델로 소개해주었다. 모딜리아니는 에뷔테른보다 열여섯 살 많았지만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에뷔테른의 가족들은 그녀가 술과 마약에 빠져 있는 모딜리아니와 교제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딜리아니는 에뷔테른과 함께 살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17년 겨울 최초이자 최후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누드 작품들이 외설 시비에 휘말려 몇 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모딜리아니는 죽기 전까지 성공을 맛보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실린 〈침대 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는 그가 전시회를 통해 공개했던 누드 작품들 중에 하나였다.

그는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형식이 유행하던 시절 어느 노선도 따르지 않았고, 미술사에서 어느 쪽으로도 분류될 수 없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살아 있을 당시에는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해 늘 가난하게 살았고, 생계를 위해 많은 작품을 말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았다. 그가 죽은 지 2년 뒤인 1922년 회고전을 계기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모딜리아니는 일관된 스타일이나, 서명, 제작 기록이 없는 작품들이 많아서 위작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모딜리아니의 위작이 천여 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모딜리아니 연구에 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모딜리아니 아카이브의 대표 크리스티앙 파리소마저도 스무 점이 넘는 모딜리아니 작품을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임신 9개월째였던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열흘 뒤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가족들은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을 비난했으나 10년 후 모딜리아니 옆에 묻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 36위. 〈침대 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아름다운 로마의 여인)〉
• 56위. 〈두상〉
• 89위.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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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집필자 소개

미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미술 시장에 대한 현장 경험을 동시에 갖춘 미술 전문가. 《조선일보》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아트 마케팅 회사인 이앤아트를 설립하여 미술 전시 기획과 홍보, 아트 마케..펼쳐보기

출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저자이규현 | cp명알프레드 도서 소개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전체목차
1.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위부터 100위까지! (2014년 기준) 1위.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2위. 파블로 피카소, 〈꿈〉 3위.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 초상 습작 삼부작〉 4위. 잭슨 폴록, 〈넘버 5〉 5위. 윌렘 드 쿠닝, 〈여인 3〉 6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7위. 에드바르 뭉크, 〈절규〉 8위. 재스퍼 존스, 〈깃발〉 9위. 파블로 피카소,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 10위. 앤디 워홀, 〈실버 카 크래시(이중 참사)〉 11위. 파블로 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12위.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남자 I〉 13위. 앤디 워홀, 〈여덟 개의 엘비스〉 14위. 파블로 피카소,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 15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I〉 16위. 마크 로스코, 〈오렌지, 레드, 옐로〉 17위. 프랜시스 베이컨, 〈삼부작〉 18위. 바넷 뉴먼, 〈블랙 파이어 I〉 19위. 빈센트 반 고흐, 〈가셰 의사의 초상〉 20위. 프랜시스 베이컨, 〈존 에드워즈 초상 습작 삼부작〉 21위.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22위. 재스퍼 존스, 〈부정 출발〉 23위. 앤디 워홀, 〈청록색 매릴린〉 24위. 파블로 피카소,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 25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디아나와 악타이온〉 26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27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유아 대학살〉 28위.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29위.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30위. 앤디 워홀, 〈그린 카 크래시(녹색의 불타는 자동차 I)〉 31위. 한스 홀바인, 〈다름슈타트의 성모(마이어 가족과 함께 있는 성모)〉 32위. 빈센트 반 고흐, 〈턱수염이 없는 자화상〉 33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디아나와 칼리스토〉 34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알폰소 다발로스 후작의 초상〉 35위. 치바이스, 〈송백고립도 전서사언련〉 36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침대 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아름다운 로마의 여인)〉 37위. 토머스 에이킨스, 〈그로스 박사의 임상 수업〉 38위. 마크 로스코, 〈무제〉 39위. 왕몽, 〈치천이거도〉 40위. 프랜시스 베이컨,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41위. 윌렘 드 쿠닝, 〈가제트 형사〉 42위. 앤디 워홀, 〈그녀의 남자들〉 43위. 앤디 워홀, 〈인종 폭동〉 44위. 클리퍼드 스틸, 〈1949-A-넘버 1(PH-89)〉 45위. 폴 세잔, 〈커튼, 주전자, 그리고 과일 그릇〉 46위.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회화〉 47위. 제프 쿤스, 〈풍선 개(오렌지색)〉 48위. 잭슨 폴록, 〈넘버 19〉 49위. 빈센트 반 고흐, 〈조제프 룰랭의 초상〉 50위. 앤디 워홀, 〈코카콜라(3)〉 51위.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52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꽃 모자를 쓴 여인〉 53위. 파블로 피카소,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 54위. 빈센트 반 고흐, 〈붓꽃〉 55위. 알베르토 자코메티, 〈크고 좁은 두상〉 56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두상〉 57위. 프랜시스 베이컨, 〈이노센트 10세 습작〉 58위. 프랜시스 베이컨, 〈삼부작〉 59위. 파블로 피카소, 〈피에레트의 결혼〉 60위. 파블로 피카소, 〈앙헬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 61위. 마크 로스코, 〈넘버 15〉 62위. 파블로 피카소, 〈정원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63위. 장-미셸 바스키아, 〈더스트헤즈〉 64위. 앙리 마티스, 〈후면 누드 4〉 65위. 라파엘로 산치오, 〈젊은 사도의 두상〉 66위. 파블로 피카소, 〈요, 피카소〉 67위. 빈센트 반 고흐, 〈밀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촌부〉 68위.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양손을 허리에 대고 있는 남자〉 69위. 라파엘로 산치오, 〈뮤즈〉 70위. 마크 로스코, 〈넘버 11〉 71위. 리커란, 〈만산홍편〉 72위. 앙리 마티스, 〈뻐꾸기, 푸른색과 분홍색의 카펫〉 73위. 프랜시스 베이컨, 〈투우 습작 1번 두 번째 버전〉 74위.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근대 로마:캄포 바치노〉 75위. 파블로 피카소, 〈검은 팔걸이의자에 누워 있는 누드〉 76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잠자는 여인〉 77위. 프랜시스 베이컨, 〈거울에 비친 글 쓰는 형상〉 78위. 파블로 피카소, 〈창가에 앉아 있는 여인〉 79위. 바넷 뉴먼, 〈원먼트 6〉 80위. 앤디 워홀, 〈1달러 지폐 200장〉 81위. 클로드 모네, 〈수련〉 82위. 앤디 워홀, 〈자유의 여신상〉 83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 84위. 프란체스코 과르디, 〈베네치아:카르본 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리알토 다리〉 85위.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86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아···알았어···〉 87위. 구스타프 클림트, 〈카소네의 교회(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 88위. 쉬베이훙, 〈세상이 평화로워 농사가 즐겁다〉 89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90위. 폴 세잔, 〈사과〉 91위. 파블로 피카소, 〈튤립이 있는 정물화〉 92위.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철도교〉 93위. 앤디 워홀, 〈흰색 매릴린〉 94위. 파블로 피카소, 〈라팽 아질에서〉 95위. 파블로 피카소, 〈책 읽는 여인〉 96위. 빈센트 반 고흐,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 97위. 에드워드 호퍼, 〈위호켄의 동풍〉 98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숫가의 리츨베르크〉 99위. 잭슨 폴록, 〈넘버 4〉 100위. 프란츠 클라인,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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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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