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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당했다면 조사를 받는 건 넘어야 할 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는 일이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두려워하거나 회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현실을 인정하자. 수사기관이 당신을 부른 것은 고소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이라면 죄가 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당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설사 죄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게 한 가지 희망을 주는 사실이 있다. 고소당한 이들 중에서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은 5명 중에 1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엔 무모한 고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고소사건에 관한 자세한 통계는 한 해 고소사건 얼마나 되나 참고) 만일 당신이 죄가 없다면 검사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할 것이며, 설사 기소되더라도 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날 길이 있다. 일단은 그렇게 믿자. 그러나 반대로 죄가 있다면 그때는 처벌을 피하거나 가벼운 형을 받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여력이 있다면 법률전문가에게 미리 도움을 받자. 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는 것도 혼자 맞부딪히는 편보다는 나으리라.

준비없이 조사받다가는 오히려 당한다

수사기관에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고소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 민사사건이라면 재판 전에 상대방의 서류를 보내주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할 여건이 된다. 하지만 형사사건은 다르다. 경찰서에 물어보아도 누가 무슨 죄로 고소를 했는지 정도밖에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 없이 수사기관의 소환에 응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만큼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고소인과 죄명에서 단서를 찾자. 고소인이 아는 사람이라면 무슨 내용으로 고소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돈거래를 했다거나, 동업을 하다가 다투었다거나, 몸싸움을 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단 정확한 사실관계를 정리해보고 경찰 조사에서 답변할 내용을 미리 준비한다. 고소 내용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나 증거(예를 들어, 금전문제로 고소당했다면 거래내역이나 영수증, 참고인 등)가 있다면 반드시 확보한다.

죄를 인정한다면 당사자와 합의가 상책

고소 내용이 만일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죄가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고소사건은 대개 금전문제에 집중된다. 쉬운 예로 돈을 제때 갚지 못했다거나 혹은 사업에 실패하여 빚쟁이들로부터 고소당했다고 치자. 이것이 범죄가 되기 위해선 처음부터 돈을 갚을 능력과 의사가 없었다거나 돈을 빼돌릴 생각으로 사업을 벌였어야 한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서 빚을 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반면 자기 재산도 없이 사업을 벌였다가(쉬운 예로 은행대출과 분양대금만으로 상가 분양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범죄(사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법률적인 문제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여력이 있다면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폭행을 했거나 명백한 사기거래를 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고소인과 합의를 보는 것이다.

범죄 중에는 마음씨 고운 피해자의 뜻에 따라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죄가 있으니 바로 친고죄, 반의사불벌죄이다.(친고죄 등에 관해서는 친고죄 ・ 반의사불벌죄 참고) 친고죄 등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재판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합의를 본다는 것은 다소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만 그러는 것이 평생 전과자가 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형사 피의자의 중요한 권리를 알고 가자

이제 경찰(또는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막상 조사를 받으면 긴장하게 되고,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A의 개인 경험을 이야기 해본다. 두 차례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모두 피해자 자격이었다. 경찰과 편안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조사 기간 내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그러니 죄를 지었다고 의심을 받는 '피의자'는 오죽 하겠는가.

그래서 제안한다. 가능하다면 나름대로 사실관계를 정리한 서류를 들고 가자. 기억력에 의존해서 답변을 했다가는 불리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고 진술이 오락가락 할 수 있다. 경찰의 질문에 서면을 보고 준비된 답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반드시 메모지와 펜을 준비하자. 조사 도중 중요한 사항이나 의문난 점은 반드시 적어둔다. 빈손으로 가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때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방어책을 마련하고 주변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피의자의 자격으로 경찰서에 간다면 형사 피의자의 권리를 알고 가는 것이 좋다.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변호사와 함께 조사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 중요한 권리로 진술거부권이 있다. 이것은 헌법상의 권리이다. 수사기관도 피의자를 조사하기 전에 "진술의 전부나 일부를 거부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려주게 되어 있다.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하라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때 어떻게 진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말한다면 유리한 내용은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불리하거나 불확실한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닥치면 어렵다. 범죄를 추궁하는 형사나 검사 앞에서 '계획된 진술'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앞에서 사전준비를 강조한 것이다.

경찰은 당신의 인적사항 등 사소한 사항부터 범죄에 관한 내용까지 질문할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고소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 중 증거가 명백하거나 드러난 사실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다. 증거가 명백한 것은 나중에 법률적인 부분에 대해 다툴 여지도 있다.

대신 당신에게 아주 불리한 내용이거나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준비되지 않았다면 답변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럴 때는 "더 확인하고 답변하겠다"거나 "이번에는 진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당신의 권리인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하라는 말이다. 절대로 즉흥적인 답변을 해서는 안된다. 한 번의 말실수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서 질문한 내용은 대부분 검찰에서 다시 물어보게 마련이다. 이러한 내용은 재판에서 다시 확인 과정을 거친다. 물론 경찰에서 한 진술은 검찰에서 번복할 수 있고, 법원에서 또 다른 진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꾸 진술이 바뀌면 결코 믿음을 줄 수 없다. 그러니 첫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 피의자의 진술은 서류로 남기게 되는데 이를 피의자 신문조서라고 한다. 이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의 확인을 거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조사를 잘 받았더라도 그 내용이 조서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피의자는 조서를 보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진술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은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형사소송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조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반드시 제대로 읽어보고 본인에게 불리한 내용은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수정이 되지 않는다면 이의를 제기한 근거를 조서에 남겨두어야 한다. 경찰이 난색을 표하더라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도장이 찍히고 나면 당신은 조서에 적힌 대로 말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죄가 없다면 당당하게 임하라

한 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경찰이나 검찰에 미리부터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의 사건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거나 시국사건이 아닌 이상 수사기관도 선입견을 갖고 당신을 대할 이유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법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불필요하게 경찰 조사를 거부하거나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기만족이 될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확실한 것은 당신을 법원에 기소하느냐 마느냐는 수사기관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일단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조사에는 협조하는 것이 현명하다.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은 당신이 재판에서 진 다음에, 그때 실컷 해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간단히 정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