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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당장 쫓아가서 카메라를 치우라고 따질 것이다. 그뿐인가. 상대방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당신과 관련된 사진을 삭제하게끔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쏘아붙인다.
"초상권 침해라고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초상권이라는 말은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법전 어디에도 초상권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초상권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조금 길지만 아래 [사례]에서 정부상 씨가 보험회사와 벌인 2차례의 소송 결과를 보자. 그 중 2차 소송에 답이 있다.
정부상(가명) 씨는 주말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동해안 나들이를 떠났다. 그는 승용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정 씨는 옆 차선에 있던 승용차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바람에 급정거를 했다. 이때 뒤따르던 트럭이 그만 정 씨 가족이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이 사고로 정 씨와 아내는 요추부(허리뼈)와 경추부(목뼈)에 부상을 입었다.
트럭이 가입한 보험회사는 정 씨 가족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이라며 소액의 합의금을 주는 선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정 씨와 정 씨 부인은 후유장해가 인정된다는 병원의 진단서를 제시하며 보험회사와 합의하는 대신 1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종합병원에 정 씨 부부의 신체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 역시 후유장해와 노동능력 상실이 예상된다는 감정이 나왔다. 1차 소송은 정 씨에게 유리하게 끝이 났다. 보험회사는 정 씨 등이 가짜 환자 행세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보험회사 쪽은 정 씨 가족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소송 중에 '뒷조사'를 했던 것이다. 보험회사는 직원을 시켜 정 씨를 따라다니며 몰래 사진을 촬영하게 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무려 8일 동안 정 씨가 출퇴근하거나 외출하는 장면, 자동차에 타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 또한 정 씨의 아내가 승용차로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장면과 허리와 목을 움직이는 장면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보험회사는 이 사진을 법원에 증거로 제시하면서 법원의 신체감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정 씨는 자신을 미행한 보험회사가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또다시 위자료 소송(2차 소송)을 제기했다.
진실발견 이익' VS '초상권 ・ 사생활 자유'
2차 소송에서 법원은 초상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람은 누구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초상권은 어디서 오는 권리일까. 법원은 헌법 제10조각주1) 와 헌법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이것을 인격권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도 인격권 안에 초상권이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판례를 통해 법원은 초상권의 내용에는 ▲함부로 얼굴을 촬영당하지 않을 권리(촬영거절권) ▲촬영된 초상사진의 이용을 거절할 권리(이용거절권) ▲초상의 이용에 대한 재산적 권리(재산권)가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초상권은 인격권뿐 아니라 재산권의 성격도 띤다는 말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보험회사가 8일 동안이나 정 씨 가족을 미행, 감시한 행위는 초상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보험회사는 공개된 장소에서 증거 수집을 했으며 소송에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소송에서 '진실발견 이익'과 '초상권 ・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충돌할 때는 어느 것이 중대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보험회사가 달성하려는 이익의 중대성, 필요성, 긴급성 등과 정 씨가 보호하려는 이익의 중대성과 피해 정도를 비교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보험회사의 이익이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사진을 촬영할 만큼 긴급하거나 중대하지는 않다고 보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객이나 소송 상대방의 뒷조사를 일삼던 보험회사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었다.
영세민(가명) 씨는 어느 날 청계천을 구경 왔다가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과거의 청계천 풍경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었는데 그 사진 중에 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영 씨는 수십 년 전 청계천이 복구되기 전 노점상으로 일해왔는데 그때의 경험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그런데 '청계천 노점상'이라는 제목을 단 사진을 통해 노점을 펼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으니 영 씨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영 씨는 초상권 침해행위라고 반발하며 소송을 냈다. 서울시는 "모멸감을 줄 의도로 사진을 게시한 것이 아닌 데다 사진전시회가 상업성이 없었으므로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 씨의 허락 없이 공공장소에 영 씨가 촬영된 작품을 전시한 것은 초상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또한 "사진 전시장소가 관광 명소가 된 곳이며, 사진이 보기에 따라서는 영 씨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며 영 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위자료를 물어줘야 했다.
그렇다고 초상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권리는 아니다.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의 사생활은 공적인 관심사가 되어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한다. 따라서 공적 인물은 일반인보다 초상권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침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침해로 인해 훼손되는 이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阻却, 물리치거나 방해함)될 수 있다. 하지만 공적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은밀한 사생활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퍼블리시티권
나 자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
유명 여배우 고운녀(가명) 씨는 A 건설회사와 아파트 광고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다. 고 씨는 1년간 TV ・ 신문 광고를 포함하여 각종 홍보물과 홈페이지 등에 A 사의 모델로 활동했다. 그런데 A 사는 계약 기간이 지났는데도 홈페이지와 분양사이트 등에 여전히 고 씨의 사진을 올려놓고 있었다.
A 사는 고 씨의 어떤 권리를 침해했을까? 답은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명, 초상이나 기타의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법원은 과거에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부터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6년 서울동부지법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점 ▲이런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점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권리보호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독립된 권리로 인정했다. 퍼블리시티권은 주로 연예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들이 성명, 사진, 초상, 기타 개인의 이미지를 상품 등에 이용하는 경우 인정되는 추세다.
퍼블리시티권은 초상권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퍼블리시티권의 대상이 초상일 경우 재산권으로써의 초상권과 겹친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이 재산권임에 반해 초상권은 인격권과 재산권의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초상권이 더 넓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퍼블리시티권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7년 1월 현재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도 아직 없다. 2015년 이후 최근 들어 퍼블리시티권을 부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법원은 2015년 싸이 인형 사건각주2) 과 수지 모자 사건각주3) 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권리인 초상권, 성명권 등이 인정되므로 퍼블리시티권을 독자적 권리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병원에서 연예인의 사진과 이름을 무단으로 광고에 사용한 사건에서 인정된 사례가 몇 차례 있을 뿐이다. 대다수 하급심 판결에선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법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퍼블리시티권과 유사한 권리인 초상권 ・ 성명권 등이 이미 인정되고 있는 반면, 관련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독자적인 권리로 인정하는데 법원이 부담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퍼블리시티권은 민사사건의 쟁점으로 계속 부각되고 있고 최근 연예, 스포츠 산업, 광고 산업 등의 발달로 관련 분쟁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법률 제정 검토와 대법원의 교통정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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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책에 나오는 판례, 법령 등과 자료는 2017년 1월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법이 바뀌거나 판례가 변경되면 책을 증쇄할 때마다 곧바로 새로운 사항을 반영하겠습니다.
글
출처
2010년 출간 이후 분야 베스트셀러《생활법률 상식사전》, 전면 개정판 출간! 구급상자 챙겨두듯 한 가정에 한 권은 꼭 갖춰야 할 ‘국민 생활법률 상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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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초상권은 어디서 나온 권리일까 – 생활법률 상식사전(2017년 개정 법률 반영), 김용국,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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