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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소속 공훈배우
출생 연ㆍ월ㆍ일
1946년(재일동포출신)
경력
1992년 공훈배후 칭호 수여
활동사항
1980년 ‘이름없는 영웅들’(예술영화) 출연 1985년 ‘홍길동’(예술영화) 출연 1989년 ‘림꺽정’ 제3, 4, 5부(예술영화, 보선예술영화촬영소 왕재산창작단), ‘축하합니다’(예술영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대홍단창작단) 출연-그 이외에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이’, ‘돌아오지 않는 밀사’, ‘이름없는 영웅들’(예술영화)등 출연 2001.8.1 조선신보 인터뷰기사 소개
프로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영화배우.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 제1~2부, 6~10부(1992~93년)에서 북한 영화사상 처음으로 남쪽의 박 전 대통령 역을 맡아하면서 인기스타로 급부상,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역을 맡게 됐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에서 태어난 김씨는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4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고모집에서 살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가 될 꿈을 키워왔던 그는 가나가와조선고급중학교 재학중이던 1960년대 초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갔다. 재일교포들의 부정확한 발음과 억양은 영화배우에게 치명적인 것이어서 대부분 북송교포들이 음악이나 미술부문 등에서는 크게 성공한데 반해 영화분야에서는 거의 이름이 없었다. 근성을 갖고 화술연습을 꾸준히 해온 덕으로 6.25전쟁을 다룬 다부작 극영화 ‘이름없는 영웅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다가 뜻을 못이루고 자결한 이 준 열사를 형상한 극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주요 작품에서 점차 비중있는 조연을 맡기 시작. 그는 ‘민족과 운명’ 이후에도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사건’(1945.8)으로 불리는 일제 징용자 수장사건을 극화시킨 ‘살아있는 령혼들’ 등 여러 영화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북한판 타이태닉’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2001년 4월 북한에서 처음 개봉. 북한에서 흔히 사용하는 ‘박정희 괴뢰도당’, ‘박정희 역도’ 등의 표현 대신 ‘대통령 박정희’, ‘남조선 대통령 박정희’ 등으로 지칭했다. 무용수 출신 아내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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