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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권민
직책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출생 연ㆍ월ㆍ일
1963년
경력
1998.7 아태평화위 베이징지부 참사 1999.6 아태평화위 참사
활동사항
1995년 김일성종합대 학생위원회 대표 1996.4.18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위원회 주최 제5회 코리아평화통일심포지엄 참석 1999.6 남북차관급회담 대표(베이징) 1999.8 남북 노동자축구대회 실무회담 참석(베이징) 2000.4 정상회담 비공개 특사접촉과 준비접촉 참가 2000.7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대표(서울) 2000.12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대표(평양)
프로필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지도원과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차세대 대화일꾼, 권 민이라는 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남북 정상회담(2000.6) 실천조치의 하나로 2000년 7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이때 권 민이라는 가명대신 처음 본명을 사용했다. 2개월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서울에 온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수행해 재차 서울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2000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준비접촉과 비료지원을 위한 베이징 차관급회담 북측대표의 한 사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또한 남북 차관급회담을 위한 3차례의 비공식 접촉에서도 대표인 전금진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수행해 막후 조정역할을 했다. 차관급회담과 비공식 접촉에서는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북측 창구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밖에 권 지도원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서경석 사무총장과 ‘합영을 통한 함경북도 농업지원 의향서 교환’ 실무협의(99.1)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대책 협의(99.4, 99.6) ▲남북 노동자축구대회 실무회담(99.8, 중국 베이징) 등 민간차원의 남북접촉에 단골멤버로 나서기도 했다. 권 지도원은 1996년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대표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1990년대 중반부터 남북관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아태평화위원회 베이징지부에 근거지를 두고 대남경협사업과 민간교류를 위한 남북접촉의 제1선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구체적인 경력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최근 그의 행보와 이력으로 미루어 볼 때 향후 그의 역할이나 활동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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