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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의 급변하는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은 산문보다 시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시인들이 칼리프나 고급 관료들과 밀착하여 사치스럽고 풍요로운 도시 생활을 즐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기 시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페르시아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들은 2개의 언어 또는 문화에 익숙했다. 이러한 혼합적 환경 속에서 시의 주제·종류·문체와 운율 등에도 형태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 이민족 출신 시인들은 순수 아랍 혈통은 아니지만 유목민 출신의 아랍 시인들에 뒤지지 않는 표준 아랍어를 구사했다.
당시에는 언어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칼리프들은 자녀들이 정확한 아랍어를 익힐 수 있도록 저명한 언어학자들을 궁전으로 초청, 자녀들에게 시를 암송하게 하여 그 형태와 문체를 익히도록했다. 따라서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가 언어학자들에 의해 비평받음을 인식하고 언어학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도 정확한 아랍어로 된 좋은 시를 써야만 했다. 언어학자들은 카시다와 라자즈(정형단시)의 표준을 설정하고 시인들을 위해 파생형, 동사변화, 문법, 시의 음악성, 운율 등에 있어 언어학적 기준을 마련했다.
이것은 후일 '무활라둔 문체'라는 혁신된 문체를 탄생시키는데, 이 문체는 고대 문체에 새로운 감각을 가미한 문체로서 생소한 어휘가 많은 유목민의 언어와 진부한 어휘가 많이 섞인 일반인들의 언어 사이의 중간적인 문체라 할 수 있다.
시인들은 기존에 다루어졌던 칭송시·풍자시·사랑시 등에서 옛 주제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들은 아랍 시의 고전적 특징과 당시의 새로운 감각을 조화시켰는데, 특히 칭송시는 인간에게 부여된 덕목을 제시하는 도덕 및 윤리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고, 통치자들에게는 정치적 역할의 수행시 지켜야 할 이상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술이 시의 주제로 등장했으며, 대표적인 시인들로는 아부 누와스, 아부 알 아타히야 등이 있다. 아부 탐맘은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불행한 정치 현실을 개탄한 시를 쓰면서 세월에 대한 불평과 고통을 주제로 독립된 카시다를 지었는데, 후에 이븐 루미와 알 무타나비 등이 카시다 형식의 불평시를 쓰도록 영향을 주었다.
풍자시는 건전한 사회건설을 위해 버려야 할 개인적·사회적 악덕을 묘사함으로써 칭송시처럼 교훈적인 면을 지녔다. 대표적인 시인들로 우선 바슈샤르 이븐 부르드(714~784)는 우마이야 왕조의 말기와 아바스 왕조의 초기에 걸쳐 살았던 시인이다. 그는 무활라둔을 개척한 선구자로 유목민 방언의 독특함과 진보된 도시문화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혼합 묘사한 새로운 문체를 개발했다.
아부 누와스(762~813)는 바슈샤르의 시처럼 전통적인 면과 새로운 면을 지니고 있었는데 칭송시·풍자시·애도시·금욕시 등 아랍 시의 모든 종류들을 포함하는 다작가로 평가된다. 주로 칭송시와 애도시에서 전통적인 고전문체를 사용했고, 기타 시들에서는 새로운 개혁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특히 술을 주제로 한 '주시'를 시의 한 독립된 주제로 확립해 이 분야의 독보적인 시인이 되었다.
술에 대한 묘사는 자힐리야 시에서도 자주 나왔지만 그들의 술에 대한 묘사는 관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 시의 한 독립된 주제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아바스 왕조에 들어와 자유가 늘어나고 사치풍조가 만연되자, 시인들은 술집과 유흥장소 등에서 공개적으로 술을 찬미하는 시를 짓고는 했다. 아부 누와스는 술을 혼과 육이 있는 인간의 몸에 비유한 의인화된 내용의 시를 썼다. 말년에 들어 고통과 근심, 아쉬움 등을 주제로 한 슬픈 곡조의 '금욕시'를 지었는데, 분량은 적지만 그가 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시로 간주되며, 고대 아랍 음악시 중 가장 뛰어난 시로 평가된다.
아부 알 아타히야(748~825)는 금욕시를 주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사치하고 무절제한 방탕생활을 하는 부류에 반발해서 금욕과 절제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출현했는데, 바슈샤르나 아부 누와스의 금욕시들이 사람들에게 방탕과 술을 묘사하는 가운데 쾌락적인 생활을 장려했음에 반해 알 아타히야의 금욕시는 이들의 시들에 거부감을 느끼며 금욕, 현세에 대한 환멸, 죽음 등을 주제로 한 금욕시를 썼다.
그의 시는 비교적 자연스럽고 쉬운 어휘들을 선택해 단조로우면서 감미로운 운율로 당대의 뛰어난 시로 꼽힌다. 아부 탐맘(845 죽음)은 시인뿐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시모음집을 편찬한 편집가로 유명하다. 그의 칭송시는 전통적인 고전 형식에다 수사학적 미사여구와 논리적인 사고, 자부심 등의 개인적인 성향이 가미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후대에 들어 아랍 칭송시의 한 전형을 만들어낸 알 무타나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인위성이 없는 자연스러운 어휘와 감미로운 운율로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묘사했으나, 시 구성상의 균형과 조화와 결여로 인해 아랍 문학사에서 주목되는 시는 드물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를 시에 접목시킨 선구자로서 알 무타나비의 금언·격언시와 아부 알 알라의 지성시의 초석을 놓으며 아랍 서사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시기는 아랍 산문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인데 아랍화된 이민족들이 그들 고유의 관습과 전통조차 아랍어로 저술하면서 아랍 산문 발전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직업 서기관, 번역가, 신학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다양한 외래 문화의 수용으로 여러 종류의 산문이 출현했는데, 그중에서 연설·설교·이야기·서한문 등이 주를 이룬다.
특히 페르시아어로 된 정치 및 도덕관계 자료들이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아랍 문학 최초로 서한체를 개발한 아브드 알 하미드 알 카티브 이래 공적인 서한체가 발달하게 된다. 주요 산문 작가들로는 우선 페르시아 출신의 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724~759)를 들 수 있다. 그는 아바스 왕조에서는 겨우 10년을 살았고 대부분의 생애를 우마이야 왕조하에서 보냈다. 페르시아의 문학 작품과 정치 제도, 역사 등을 아랍어로 번역해 전하면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당시 사회의 많은 정치적 병폐와 부조리를 목격하고 글로서 개혁하고자 우화적인 이야기 〈칼릴라와 딤나〉를 번역했다. 이 작품은 동물이나 새를 의인화시켜 통치자의 그릇된 행실을 바로 잡는 우화적인 교훈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은 아랍인의 수사학과 페르시아의 과장법, 그리스의 논리학, 인도의 지혜가 혼합된 것으로, 형식보다는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둔 쉽고 간략한 문체를 사용했으며, 이전 작가들에 비해 가운을 적게 사용했다.
그는 번역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하면서 후대의 많은 문학가들뿐 아니라 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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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바스 왕조 제1기 이슬람 문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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