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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인들의 정치 세력이 약화되고 투르크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계층의 사치와 쾌락은 계속되었으나 이러한 무절제한 삶에 대한 반발로 수피주의와 같은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이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시문학에서도 두드러져 시인 아부 탐맘에 의하여 이미 고대시의 기능성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특히 무슬림 이븐 알 왈리드(747~823)가 최초로 시도한 일종의 수사학적 기법인 미화법(Badi⁽)이 개발 채택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시인 이븐 알 무타즈(863~908)가 〈미화법〉이라는 저서에서 시의 수사학적 기교를 집대성하여 설명함으로써 시의 기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작가들은 학술적인 체계를 갖춘 아랍어의 미학적·음악적·문법적·언어학적 특성들을 수월하게 이해하고, 쉽게 시를 해독하거나 음미했다.
이 시기는 활발한 번역과 학술 발전의 결과 많은 문학가들이 여러 문화를 흡수·혼합하여 독특한 특성을 지닌 아랍의 독창적인 새 문화를 창출했다. 아부 알 자히즈는 이슬람 문화와 외래 문화를 조화시켰으며 이븐 쿠타이바는 아랍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의 혼합을 시도해서 사상과 학문이 혼합된 문학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순수 아랍 사상과 외래 사상과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결합은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븐 알 루미(835~896)는 시인들 중 외래 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국제 감각과 풍부한 지식으로 아랍시를 보다 이성적인 시로 만들었지만, 아랍시가 지닌 문체상의 전통적 특징은 그대로 간직하였다. 그는 무타질라 학파의 이성과 논리중심적 사고에 심취했는데, 그의 카시다는 무타질라 학자들의 대화법을 그대로 모방한 듯 매우 상세하고 부연적인 표현이 많다.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에 사상을 가미하기는 했으나 시의 근본적인 주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전 시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지던 주제들이 정식 주제들로 독립되기도 했는데 아흐마드 이븐 유세프가 칼리프 알 마문을 위해 지은 〈축하시〉가 많은 유행을 하기도 했다. 또한 제1기에 아부 탐맘과 같은 몇몇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불평의 묘사가 제2기에 들어 거의 모든 시에 보편화되었다. 신을 향한 심령의 갈구와 열정적 사랑, 신과의 합일을 이루고 싶은 갈망 등을 시로 묘사한 수피주의 시가 많이 씌어져 종래의 금욕시와 완전히 구별되었다.
이성과 논리를 중시한 그리스적 문체와 순수 아랍어의 문체를 잘 조화시킨 혼합 문체가 아바스 왕조 초에 나타난 이후 산문은 이 시기에 와서 더욱 번성했는데, 특히 문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아부 알 자히즈(775~868)가 대표적인 작가였다.
그는 적절한 어휘 선택을 강조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들리는 각운과 음의 분철을 도입했는데, 후에 이븐 알 무타즈가 〈미화법〉을 저술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아랍 산문에서 독특한 학파를 이끌어간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기존의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 대담성 있는 시작법을 구사해서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에 의해 서민들에게 더욱 익숙해진 아랍 산문은 여러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더욱 발전되었다. 또한 〈코란〉의 구절이나 하디스를 인용하여 수피주의의 독특한 용어로 해석하는 '무다키린'이라는 새로운 설교가들이 등장했는데, 보통 설교가들에 비해 더욱 철저했던 그들의 금욕과 절제 생활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알 자히즈를 제외한 다른 산문 작가들의 작품에는 각운 산문체가 도입되어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도 나타났으며 이러한 경향은 작가가 지닌 감정과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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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바스 왕조 제2기 이슬람 문학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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